노무현 정부와 재계 순위 1위 삼성의 ‘따뜻해 보이는 관계’에 재계의 관심이 높다.
재계 순위 3위인 SK가 검찰수사로 오너인 최태현 회장이 구속되고 편법상속, 분식회계가 밝혀져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전락한 반면, 삼성에선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들의 경우와 달리 정권 초기 노무현 정부와 삼성은 여러 면에서 ‘전략적 협력’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도약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서 일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인수위 경제2분과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삼성측은 외부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삼성 관계자는 “3명 정도의 삼성측 전문가가 인수위를 오가며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2월 중순 인수위는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계획을 앞서 발표했다. 당초 재정경제부 안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2002년 10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남덕우 전 총리 저)라는 자체 발간 책자를 통해 제안한 것이었다.
3월18일 청와대는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백서’를 발간했다.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는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백서 253∼259쪽에 담겨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전무는 “인수위의 동북아 프로젝트와 우리측 연구안과는 결과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인수위 초기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는 물류-금융-서비스산업 중심으로 하자는 기존의 재정경제부 안과 정보기술(IT)-제조업 위주로 하자는 인수위 시각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측은 항구인 부산 광양 인천은 제조-서비스-물류 중심지로, IT 관련 경량제품 수송이 용이한 인천국제공항 주변은 IT 중심지로, 인천 배후의 서울은 금융 중심지로 삼자는 절충안을 내놓고 있었다. 인수위 백서에 따르면 결국 이 절충안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의 뼈대가 됐다.
현 정부는 인천 송도를 ‘민간기업의 연구개발(R&D) 중심지’로 육성할 예정이다. 당초 송도 밸리를 종합제조업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수정된 것이다. 송도 R&D 구상은 2002년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현 정보통신부 장관)이 “급부상하는 중국 과학기술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이다. 삼성측은 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가 완성되기까지 상당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진대제 장관 끝까지 감싸나
삼성은 실질적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송도 R&D는 국내 기업의 우선 참여가 성공의 필수요건. 삼성측은 2003년 2월 중순 ‘기흥연구소’송도 이전을 약속해 현 정부에 힘을 실어주었다. 삼성은 현재까지 노무현 정부가 정권의 ‘성패’를 걸고 추진하겠다는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를 음으로 양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기업인 것이다.
노대통령이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에 IT를 접목한 장본인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정통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향후 이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경우 정부측과 삼성측의 협력이 더 공고해질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진장관은 삼성의 차세대 리더인 이재용씨의 핵심측근이다. 게다가 진장관과 같이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천방훈 상무는 노대통령 측근인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동생이며, 대선 때 노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원했던 IT전문가 모임인 ‘현정포럼’(노무현을 사랑하는 정보통신 전문가 포럼) 회원이다. 현정포럼 관계자는 “천상무는 진장관 추천과 전혀 관계 없다”고 말하지만, 노대통령과 진장관은 이처럼 여러 맥락에서 ‘코드’가 통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게 청와대 주변의 해석이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진장관 임명엔 노대통령 본인의 의사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후 아들의 이중국적, 병역면제 등 진장관 관련 의혹이 빗발쳐도 노대통령의 신임은 현재까지 변함없다.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3월4일 노대통령은 “장관직에서 물러날 정도는 아니다”라고 일찌감치 못박았고, 이틀 뒤엔 각료 중 진장관만 따로 청와대로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진장관 사수’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
SK에 대한 ‘초고강도 수사’로 검찰의 재벌 추가 수사 여부가 재계의 관심사가 된 가운데 사시 18회 홍석조 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발탁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3월 검찰간부 인사에 서열파괴가 두드러지긴 했지만 홍 신임 국장의 경우는 두 계단을 뛴 파격 인사였다. 검찰국장은 검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요직으로, 홍국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처남이다.
참여연대가 이재용씨 편법상속 의혹문제를 검찰에 고발한 것과 관련, 향후 검찰의 수사 착수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의 경우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으로, 노대통령과의 친분이 대선 이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이사장측은 “노대통령과는 교류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최근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이 “대선 과정에서 SK가 10억원을 후원했다”고 공개하자, 삼성 등 다른 대기업은 얼마나 했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요즘 노무현 정부와 재벌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인수위 초기 “노무현 인수위는 사회주의” “인수위 정책은 친노동자적” 등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관계자의 발언으로 전경련은 인수위와 갈등 관계였다. 그러나 2월 중순 현명관 삼성그룹 일본 담당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오면서 갈등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전경련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협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 삼성은 2003년 초 이재용 상무보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이는 같은 시기 현대 기아차 그룹이 정몽구 회장의 아들 의선씨를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발탁해 경영승계에 들어간 것과 대비됐다. 재벌세습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노정권측 기류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SK 조사 이후인 3월12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노대통령의 재벌정책은 탄압이 아니며,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삼성그룹이 2003년 상반기 중 주5일 근무제를 전격 시행하기로 한 것도 노정부의 경제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내심 현 정부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이건희 회장이 조만간 장남(이재용)의 후계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노정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노정권 내에선 하이닉스반도체를 삼성이 인수하기를 바라는 기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민간기업 경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불편한 입장을 밝혔다.
2002년 135조원 매출, 15조원 순이익 등 사상 최대 성과를 거둔 삼성그룹과 노무현 정부가 현재와 같은 ‘공생의 분위기’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지 관심거리다.
재계 순위 3위인 SK가 검찰수사로 오너인 최태현 회장이 구속되고 편법상속, 분식회계가 밝혀져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전락한 반면, 삼성에선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들의 경우와 달리 정권 초기 노무현 정부와 삼성은 여러 면에서 ‘전략적 협력’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도약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서 일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인수위 경제2분과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삼성측은 외부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삼성 관계자는 “3명 정도의 삼성측 전문가가 인수위를 오가며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2월 중순 인수위는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계획을 앞서 발표했다. 당초 재정경제부 안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2002년 10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남덕우 전 총리 저)라는 자체 발간 책자를 통해 제안한 것이었다.
3월18일 청와대는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백서’를 발간했다.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는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백서 253∼259쪽에 담겨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전무는 “인수위의 동북아 프로젝트와 우리측 연구안과는 결과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인수위 초기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는 물류-금융-서비스산업 중심으로 하자는 기존의 재정경제부 안과 정보기술(IT)-제조업 위주로 하자는 인수위 시각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측은 항구인 부산 광양 인천은 제조-서비스-물류 중심지로, IT 관련 경량제품 수송이 용이한 인천국제공항 주변은 IT 중심지로, 인천 배후의 서울은 금융 중심지로 삼자는 절충안을 내놓고 있었다. 인수위 백서에 따르면 결국 이 절충안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의 뼈대가 됐다.
현 정부는 인천 송도를 ‘민간기업의 연구개발(R&D) 중심지’로 육성할 예정이다. 당초 송도 밸리를 종합제조업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수정된 것이다. 송도 R&D 구상은 2002년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현 정보통신부 장관)이 “급부상하는 중국 과학기술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이다. 삼성측은 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가 완성되기까지 상당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진대제 장관 끝까지 감싸나
삼성은 실질적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송도 R&D는 국내 기업의 우선 참여가 성공의 필수요건. 삼성측은 2003년 2월 중순 ‘기흥연구소’송도 이전을 약속해 현 정부에 힘을 실어주었다. 삼성은 현재까지 노무현 정부가 정권의 ‘성패’를 걸고 추진하겠다는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를 음으로 양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기업인 것이다.
노대통령이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에 IT를 접목한 장본인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정통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향후 이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경우 정부측과 삼성측의 협력이 더 공고해질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진장관은 삼성의 차세대 리더인 이재용씨의 핵심측근이다. 게다가 진장관과 같이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천방훈 상무는 노대통령 측근인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동생이며, 대선 때 노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원했던 IT전문가 모임인 ‘현정포럼’(노무현을 사랑하는 정보통신 전문가 포럼) 회원이다. 현정포럼 관계자는 “천상무는 진장관 추천과 전혀 관계 없다”고 말하지만, 노대통령과 진장관은 이처럼 여러 맥락에서 ‘코드’가 통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게 청와대 주변의 해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SK에 대한 ‘초고강도 수사’로 검찰의 재벌 추가 수사 여부가 재계의 관심사가 된 가운데 사시 18회 홍석조 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발탁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3월 검찰간부 인사에 서열파괴가 두드러지긴 했지만 홍 신임 국장의 경우는 두 계단을 뛴 파격 인사였다. 검찰국장은 검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요직으로, 홍국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처남이다.
참여연대가 이재용씨 편법상속 의혹문제를 검찰에 고발한 것과 관련, 향후 검찰의 수사 착수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의 경우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으로, 노대통령과의 친분이 대선 이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이사장측은 “노대통령과는 교류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최근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이 “대선 과정에서 SK가 10억원을 후원했다”고 공개하자, 삼성 등 다른 대기업은 얼마나 했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요즘 노무현 정부와 재벌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인수위 초기 “노무현 인수위는 사회주의” “인수위 정책은 친노동자적” 등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관계자의 발언으로 전경련은 인수위와 갈등 관계였다. 그러나 2월 중순 현명관 삼성그룹 일본 담당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오면서 갈등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전경련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협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 삼성은 2003년 초 이재용 상무보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이는 같은 시기 현대 기아차 그룹이 정몽구 회장의 아들 의선씨를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발탁해 경영승계에 들어간 것과 대비됐다. 재벌세습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노정권측 기류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SK 조사 이후인 3월12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노대통령의 재벌정책은 탄압이 아니며,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삼성그룹이 2003년 상반기 중 주5일 근무제를 전격 시행하기로 한 것도 노정부의 경제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내심 현 정부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이건희 회장이 조만간 장남(이재용)의 후계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노정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노정권 내에선 하이닉스반도체를 삼성이 인수하기를 바라는 기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민간기업 경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불편한 입장을 밝혔다.
2002년 135조원 매출, 15조원 순이익 등 사상 최대 성과를 거둔 삼성그룹과 노무현 정부가 현재와 같은 ‘공생의 분위기’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