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7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강금실 법무장관(왼쪽)과 김각영 검찰총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서울지검이 당시 김의원을 불구속 기소해 뒷말을 낳았다. 김의원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기소된 대양상호신용금고 실소유주 김영준씨측으로부터 기업 인수 로비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2월4일 수원지검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박영관 특수1부장은 “공소 유지를 위해 구체적인 얘기는 할 수 없지만 불구속 기소할 만한 분명한 사유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관계자와 박영관 부장의 설명대로라면 김방림 의원 사건과 관련, 심장관에게 전달된 정치권의 요구는 어느 쪽도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의원 사건은 ‘정치권력’이 법무장관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역대 정권의 법무장관은 대부분 여권을 비롯한 권력 쪽의 요구를 검찰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장관의 이런 역할은 법으로도 보장돼 있다. 현행 검찰청법 8조에는 ‘법무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 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평검사들의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 법무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할 때는 기록으로 남기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도 법무장관의 이런 역할에 대한 견제 차원으로 풀이된다.
검찰 “한편으론 떨떠름 다른 한편으론 잘 됐다”
검찰에서는 강금실 법무장관이 적어도 과거와 같은 역할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장관의 입각에 대해 한편으로는 떨떠름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됐다”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한 중견 검사는 “강장관은 스스로 권력의 요구를 과감히 뿌리칠 분이지만 설사 강장관이 권력의 요구를 검찰에 전달한다고 해도 사시 기수로 훨씬 선배인 검찰 수뇌부가 쉽게 들어주겠느냐”고 반문했다.
강장관 본인도 검찰 수사 불간섭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강장관은 임명 직후 ‘주간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장관이 검찰 수사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앞으로는 검찰이 소신껏 수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검찰의 수사 관행이나 내용에 반인권적인 부분이 있을 경우에 한해 장관으로서 제동을 걸겠다고 덧붙였다.
검찰 일각에서는 강장관의 이런 소신과 원칙 때문에 법무부 검찰국이 대폭 축소 내지는 폐지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검찰국은 법무장관이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참모조직.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검찰1과 외에 전국 검찰청의 주요 수사사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검찰2·3과(2과는 특수사건, 3과는 공안사건을 담당)가 핵심이다. 장관은 검찰국을 통해 가만히 앉아서도 전국 검찰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사사건을 훤히 꿰고 있는 셈이다.
민정수석실도 변화의 중심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인적 구성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재야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수석은 말할 것도 없고 민정1·2비서관, 법무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사정비서관에 현직 검사가 한 명도 없는 것은 과거 정권과 크게 다른 점. 이는 “검찰과의 고리를 끊으라”는 노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적어도 청와대가 주도하는 정치권 사정은 없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내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2월26일 문재인 민정수석이 SK그룹 수사 등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왼쪽).2월24일 대검찰청 관계자가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과거엔 재벌 총수 구속 대통령 재가 얻는 게 관행
민정수석실의 이런 역할 때문에 과거 정권에서는 민정수석실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위한 ‘기획사정’ 지휘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정수석실의 역할에 정통한 정치권의 한 인사는 “대통령이 국정원이나 경찰 등 정보기관이 경쟁하게 하면 이들 기관은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야당 의원 관련 첩보를 집중적으로 올리는 등 충성 경쟁을 하게 된다”면서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의 이런 정보를 이용,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까지 노무현 정권의 ‘실질적인’ 첫 거물급 인사 구속이라고 할 수 있는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를 보면 당시 노대통령 당선자측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대통령도 2월27일 각료 인선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SK에 대한 수사 사실은 신문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 SK 관계자들도 나름대로 탐문, 최회장 구속을 검찰의 독자적인 작품으로 판단하고 ‘그나마’ 안도하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최회장과 같은 재벌 총수의 구속은 검찰이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게 관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권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9년 한진그룹 세무조사 때 검찰에서는 최근 작고한 조중훈 당시 회장을 구속하는 안과 구속하지 않는 안 두 가지를 올렸으나 대통령 재가 과정에서 조중훈 회장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두 번째 안이 채택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유능한 특수부 검사 출신의 양인석 사정비서관 직속으로 사정팀을 신설하겠다는 방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월24일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박희태 대표대행, 김영일 사무총장과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이 벌인 신경전에서도 이런 반응을 읽을 수 있다.
박희태 대행 : “나도 김영삼 정부 때 법무부장관을 했는데….사람 잡는 사정을 개혁으로 생각하는 폐단이 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죠?”문희상 실장 : “그건 개혁이 아니라 ‘개핵’이고….”김영일 총장 : “공권력인 검찰이 중립화하는 것이 개혁입니다.”문실장 : “당선자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이런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중립화하겠다는 노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노대통령의 이런 실험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회의론도 없지 않다. 역대 정권이 시도하지 않았던 민정수석 및 법무장관을 통한 검찰 장악을 과감히 포기한 노대통령의 실험에 대한 평가를 뒤로 미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