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만화페스티벌이 열린 앙굴렘시 전경.
이에 따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인하대 성완경 교수(미술교육)를 위원장으로, 청강문화산업대 박인하 교수(만화창작)와 만화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김낙호씨를 큐레이터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준비위측은 한국만화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줄 ‘오늘의 만화-19인의 작가전’과 ‘한국만화 역사전’(상자기사 참조)을 축으로 한국만화특별전을 꾸몄다.
박인하 교수는 “이미 일본만화에 익숙한 유럽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고민했다”며 “일본의 아류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고 선정 기준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2003년 세계 만화시장에서 한국만화의 현실과 미래를 보여줄 젊은 작가 19인은 누구인가. 준비위는 ‘욕망하는 만화’ ‘일상의 발견’ ‘만화의 확장’이라는 세 가지를 전시 컨셉으로 정했다. 성적 욕망, 일상의 욕망을 통해 분출하는 시대적 욕구를 담아낸 작가로 윤태호, 이유정, 양영순, 권가야, 박흥용을 꼽는다. 윤태호는 허영만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한 지 10년 만에 SF만화 ‘야후’로 주목받았고 노인들의 일상과 성을 풍자한 ‘로망스’로 우리에게 발칙한 웃음을 선사했다.
상업성 배제한 젊은 작가 19명 선정
2003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공식 포스터.양영순 ‘백댄서’.최인선 ‘월광’.권윤주 ‘스노우캣’.이애림 ‘판타지’.(시계방향)
양영순의 ‘누들누드’는 기발한 성적 상상력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지하철 무임 승차자로 골치를 앓던 역무원이 여성의 엉덩이 형태로 검표기를 만들어놓자 검표기를 통과하지 못해 안달하는 남자들, 검표기를 열자 정액 묻은 표가 한가득 나오는데…
권가야는 95년 ‘해와 달’로 데뷔, ‘남자 이야기’로 99년 문화관광부 선정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남자 이야기’에 대해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피가 들끓어 견딜 수 없는 남자들의 무협만화”라고 평했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의 주인공 박흥용은 80년대 최고의 만화가로 꼽히며 90년대에도 여전히 주목받는 중견작가다. 정지되어 있는 그림에 속도감을 주는 연출은 박흥용표 만화미학으로 평가된다.
90년대 후반 한국만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상의 발견’이다. 탄탄한 미술적 기반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 솔직한 자신의 삶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박인하 교수는 “60년대 이후 한국만화는 어려웠던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할 모험과 웃음, 로맨틱 등 일종의 ‘뻥’ 만화로 성장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잔잔한 일상을 담은 만화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해 말 한국만화특별전 준비 관계로 앙굴렘에 다녀온 김낙호씨는 “자전적 일상을 그린 만화는 한국적 특징이 아니라 이미 세계적인 경향으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군에는 70년대 명랑만화를 계승한 홍승우의 육아일기 ‘비빔툰’, 민중미술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여주는 최호철의 ‘을지로 순환선’, 순정만화의 동화적 스타일을 고수하나 삶과 사랑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현실과 환상을 능청스럽게 교차시키는 이강주의 ‘캥거루를 위하여’ 등이 있고 ‘도날드 닭’의 이우일, 시시만화가 고경일이 이 그룹에 동참했다.
최호철 ‘을지로순환선’(왼쪽). 한국만화특별전 큐레이터 김낙호(오른쪽 사진 왼쪽), 박인하씨.
이 가운데 이애림, 최인선, 이향우, 아이완은 2002년 여름 화제를 모았던 ‘젊은 만화의 힘, 무한 상상의 자유 판타지’에서 만화 전시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당시 보여주었던 입체만화, 실사와 일러스트를 결합한 설치만화 등이 앙굴렘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인터넷 상에서 ‘귀차니즘을 퍼뜨린 권윤주의 ‘스노우캣’도 앙굴렘에 간다.
돈벌이와는 담을 쌓은 예술만화 혹은 인디만화, 일본식 상업만화, 만화방을 통해 유통되는 B급만화, 온라인 만화, 모바일 만화 등 한국만화의 다양한 활동공간과 많은 작가군(현직 작가 500여명에 아마추어 동아리만 2000여개)에 세계는 놀라고 있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은 한국만화의 역동성을 세계에 알리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