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안쪽이 랴오시 지역. BC 2400년경 청동기 문화인 하가점 하층문화가 출현한 지역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중심지였느니, 아니니 하면서 지금도 역사학자들 사이에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지는 장소다. 그 논쟁의 시간대는 기원전 2400년 무렵 홍산문화(紅山文化)라는 신석기시대 후기 문화가 붕괴하면서 청동기 문화라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던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고고학적 용어로 하가점(下家店) 하층문화가 출현한 시기다.
7년간 현지서 고고학 발굴 참여
이와 비슷한 때 황하 중상류 지역에서는 이른바 중원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원문화는 하·은·주 및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한 시대 이후까지 포함해 현재의 중국이 그 역사적·문화적 뿌리를 찾는 곳이다. 중원문화, 즉 황하문화는 그 주변문화를 ‘정복’하고 최후의 승자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중국 학자들은 중원문화 이외의 문화는 그 하위 범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랴오시 지역 또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황하유역과 동북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 중원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화주의적 문명사관은 랴오시 지역에서 속속 발굴된 유물들에 의해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곳에서 발굴된 청동제 유물들이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설 뿐 아니라, 그 세련된 기술도 중원문화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 지역에서 출토된 채회도(彩灰陶)의 경우 중원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는 것.
과연 랴오시 지역에서 선진 청동기 문화를 꽃피운 주체 세력은 누구일까. 이와 관련해 ‘요서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연구’(백산자료원)라는 한 연구논문이 처음 발표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논문의 주인공은 중국 동북지역인 랴오닝대와 지린(吉林)대에서 중국 고고학을 전공한 복기대 박사(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학예연구원). 1992년 중국으로 들어가 7년간 현지에서 발굴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 복박사는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최근 ‘조심스레’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랴오시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물을 연구한 결과 그동안 중원지역과 관계가 깊다는 주장과는 달리 자생적이며 독특한 청동기 문화를 형성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원전 24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이어진 랴오시 지역의 문화는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중원문화를 받아들여 왔다.”
복박사가 연구한 분야는 하가점 하층문화부터 시작해 약 2000년에 걸쳐 하가점 상층문화(기원전 14세기∼기원전 7세기) 위영자문화(魏營子文化, 기원전 14세기∼서주 중기) 능하문화(凌河文化, 기원전 10세기∼기원전 4세기)로 발전해간 랴오시 지역 전체 문화다. 그는 “하가점 하층문화는 기원전 15세기경에 사라지고 노노아호 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의 고원지대에서는 하가점 상층문화로 발전했으며 동쪽인 평원지대에서는 위영자·능하 문화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서쪽의 하가점 상층문화는 중원식 용기나 북방계통의 청동기 등 각양각색의 문화요소를 수용하면서 발전한 흔적이 많이 보이지만 능하문화의 청동기는 독특한 면을 보인다는 점. 특히 능하문화에서 발굴된 비파형동검이나 청동기들은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지역에서 출토된 고조선 유물들과 매우 비슷해 거시적으로는 한 문화권으로 보인다는 게 복박사의 설명이다.
이 문화를 건설한 주체 세력도 중원문화의 주인공들과 차이가 난다고 한다. 랴오시 지역에서 발굴된 인골(人骨)들을 체질 인류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중원문화의 주체들과 다르다는 얘기다.
“체질 인류학적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요나라 시기까지 이 지역에서 나온 유골을 계측해보면 고동북형(古東北形)이 주류를 이루고, 고화북형(古華北形)은 부수적으로 나온다. 중원문화의 주류인 고화북형은 머리뼈가 높으며 얼굴이 좁고비교적 평평한 특징이 있다면, 고동북형은 머리뼈가 조금 높으며 얼굴이 약간 넓고 매우 평평한 특징이 있는 전형적인 동북아시아 계통이다.”
복기대 박사. 고조선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비파형동검과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꺽창. 특히 길이가 80.3cm에 이르는 꺽창은 중원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다. 능하문화 시기의 청동기인 잔줄무늬 거울.하가점 하층문화 시기의 세발솥. 랴오시 지역에서 출토된 채회도는 중원문화보다 세련된 솜씨를 보인다. (왼쪽부터)
즉 랴오시 문화의 주류인 고동북형은 한민족 계통이라는 게 복박사의 설명이다. 실제 랴오시 지역에서 발전된 청동기 문화를 꾸려온 고동북형 세력은 한국이나 중국의 문헌 기록에 의하면 단군조선(고조선) 외에 달리 찾아볼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세력이 상당한 정도의 국가 체제를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랴오시 지역에서는 영금하(英金河)와 음하(陰河) 같은 강 주변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70여개의 성곽이 발견됐다. 모두 하가점 하층문화 시대에 속하는 이들 성곽이 자리잡고 있는 형태를 보면 3만평 정도 되는 큰 성을 중심으로 그보다 규모가 작은 성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이러한 성 구조는 강력한 권력구조를 갖춘 체제이며 또한 중원문화 양식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있다.” 복박사의 설명이다.
인류학에서는 권력의 발생 혹은 국가(state) 발생의 중요한 징표로 성곽을 꼽는다. 그렇다면 기원전 24세기에 개막해 기원전 15세기까지 번성한 하가점 하층문화 시대에 강력한 국가 체제를 형성했던 집단이 바로 우리 상고사의 수수께끼인 고조선이었다는 말일까. 복박사는 “문헌 기록이 부실해 100%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귀띔했다.
“중국학자들 사이에서 랴오시 지역이 중원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어떤 이는 개인적으로 고조선 문화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또 중원문화가 랴오시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랴오시 문화가 중원문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중국학자들은 이런 류의 논문을 정식으로 발표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중국학자들이 아니라 한국의 학문 풍토다. 아무도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하려 들지도 않고, 심지어는 애써 외면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기 때문.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우리 상고사를 탐구하는 연구소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아무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학계를 포함해 사상 처음으로 랴오시 지역 문화를 총체적으로 연구한 복박사의 연구논문은 현재 학계에서 학문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이미 학계를 한 차례 놀라게 한 바 있다. 한국 상고사의 또 하나의 쟁점인 ‘한사군’ 문제에서 그가 결정적 유물을 제시한 것. 한사군은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기원전 108년 설치했다는 낙랑·임둔·현도·진번의 4군을 가리키는데, 그 위치가 어디냐를 놓고 ‘만주 존재설’과 ‘평양 중심설’이 부딪혀 끊임없는 논란이 벌어져왔다.
이에 복박사는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臨屯(임둔)’이라는 글자가 적힌, 중국 요서지역에서 출토된 봉니(封泥·공문서 등을 봉할 때 사용한 진흙덩이로 직인이 찍혀 있는 형태임) 유물을 제시함으로써 위만조선의 통치강역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라는 학계 통설을 전면으로 뒤집었던 것. 이는 복박사가 ‘글방 서생’에 멈추지 않고 7년간 중국 현지를 도는 등 발품을 팔았기 때문에 얻어낼 수 있었던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