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업체와 지방의 신흥 건설업체가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문제의 서울빌라.
‘알 박기’란 건설업계에서 일반화된 말로, 아파트 건설사업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특정 사업자의 사업 부지 내 일부를 미리 사놓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상 아파트 건설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대상 부지를 모두 사들여야(최소한 해당 부지 소유자들로부터 사용 승낙서는 받아야 한다) 하기 때문에 아파트 사업 추진 업체로서는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값을 주더라도 이를 사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의 지역은 목동아파트 인근 지역이어서 많은 건설업체들이 눈독을 들였던 곳. 그동안 주민들이 재개발조합을 구성, Y건설 H건설 D산업 등을 시공사로 내세워 아파트 건설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는 지난해 9월 이 사업에 뛰어든 D토건측이 사업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 D토건측은 “900억원을 투입해 현재 빌라 한 채만을 제외하고 대상 부지 매입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D토건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D산업과 D토건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D산업측은 자신들이 먼저 사업을 추진했으나 D토건측이 세 군데 ‘알을 박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D토건측은 “D산업측과 계약을 해제한 주민들의 요청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면서 때가 되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도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D토건측이 아직 매입하지 못한 신정3동 764의 18번지 서울빌라 202호의 현 소유자는 이모씨(여). D토건측은 이전 소유자인 또 다른 이모씨와 접촉, 매입을 추진했으나 이씨가 자신은 실소유자가 아니니 근저당권자인 송모씨를 만나보라고 하는 등 시간을 끌어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중 9월6일 현 소유자에게 등기 이전됐다는 것.
소유자 남편 “사유재산, 왈가왈부 말라”
현 소유자 이씨의 남편 손모씨는 D산업측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A산업은 D산업이 추진하는 아파트 사업의 ‘시행자’로 나선 적이 있기 때문. 대형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비밀 유지’를 위해 부지 매입 단계까지는 A산업과 같은 소형 회사를 내세우는 게 보통이다.
손씨가 서울빌라 202호 매각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을 두고 D토건측이 D산업측의 ‘알 박기’라고 의심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D토건측 관계자는 “11월 중순 D산업 관계자를 만났을 때 D산업 관계자가 분명히 ‘손씨에게 넘기라고 말하겠다’고 했으나 손씨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면서 “D산업측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D산업측은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서울빌라 건은 어디까지나 손씨의 일이고,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 D산업 관계자는 “우리도 D토건측 요청을 받고 손씨에게 웬만하면 서울빌라를 D토건측에 넘기라고 ‘종용’하긴 했지만 손씨의 개인 재산인 만큼 최종 결정은 손씨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손씨가 자신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업자라는 사실은 인정했다.
손씨는 “남의 사유재산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한마디만 한 후 더 이상 전화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손씨와 동업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모씨 역시 “개인 재산을 가지고 왜 언론이 나서는지 모르겠다”면서 “먼저 감정을 상하게 한 D토건측의 행태가 문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서울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을 수 있는 부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두 회사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경위나 과정이야 어찌 됐든 아파트 건설사업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이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만이 결국 두 회사 모두에게 득이 되는 ‘윈-윈’ 게임이 된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