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문학이라는 대접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작품은 최인호의 ‘상도’였다. 5권짜리 장편 ‘상도’가 출간 7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그는 여세를 몰아 1963년 문단 데뷔 이래 작품들을 모은 ‘최인호 전집’을 출간했다. 단 두 시간 만에 썼다는 단편 ‘술꾼’(1970년)부터 대표작 ‘깊고 푸른 밤’, 새롭게 수록한 중편 ‘산문’ ‘몽유도원도’ 등을 선보이며 그는 여전히 ‘달콤한 인생’(작품집 제목)을 구가하고 있다.
문단의 찬사와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원로 유명작가들. 박완서,조정래,최인호,이문열(왼쪽부터)
요즘 출판계 화제는 단연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전 2권)의 약진이다. ‘황제를 위하여’는 1982년 이문열씨가 ‘금시조’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던 해 출간한 장편. 이 소설로 그는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 목록에 추가해 다시 출간했다. 20년 묵은 이 소설이 5월 들어 갑자기 매일 수백질씩 주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출판사측도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민음사의 박맹호 사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다만 이문열 선생 작품들이 대학 논술 준비용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문학판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작가들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면 황석영씨와 조정래씨가 내년에 나란히 회갑을 맞는 1943년생이고, 최인호씨는 두 살 아래인 1945년생. 박완서씨가 1931년생으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연배가 위지만 마흔에 등단했기 때문에 문학판 이력은 오히려 짧은 편이다. 황석영씨는 19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입석 부근)을 받으며 데뷔했고, 최인호씨는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작가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 고등학생 시절에 등단했다. 조정래씨는 스물일곱, 비교적 늦게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지만 동국대 국문과 재학시절 이미 문재를 인정받은 케이스다.
필력 30~40년을 헤아리는 원로작가들이 문단의 찬사와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문단에서는 은희경 신경숙 등 90년대 스타 작가들의 부진과 ‘주목할 만한’ 신인의 부재가 한국 문단의 동맥경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당장 올 여름 창간한 문예지들조차 신인 발굴에 실패했다. 시공사가 펴낸 계간지 ‘문학인’은 “역량 있는 문학인을 발굴하고 적극 지원함으로써 문학의 빈터를 채우겠다”고 약속했지만 창간호다운 기획의 참신함이나 기성문단을 향한 도발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계간지의 꽃인 소설을 보면 김원일 양귀자씨 등 중견작가들 틈에 1977년생 이숙현씨(2000년 제2회 사이버 신춘문예 소설 당선)의 ‘서울플라자, 12時’가 간신히 자리잡고 있는 정도다.
90년대 스타작가들은 '소설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박상우,신경숙,은희경,이순원,윤대녕(왼쪽부터)
그러나 편집위원들의 의욕과 달리, 작품을 게재한 소설가들을 보면 채영주 박성원 정이현으로 공교롭게 모두 ‘문학과사회’ 출신들이다. 그래서 중견과 신인의 구색 맞추기에다 ‘문학과사회’의 아류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그나마 두 계간지가 창간과 함께 마련한 ‘신인문학상’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 ‘문학인’ 편집위원인 강상희 교수(경기대·문학평론가)는 “창간작업 내내 새로운 작가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막상 작품을 받고 보면 함량 미달이어서 포기했다. 특히 최근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원고 가운데 실망스러운 게 많았다”며 창간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문학판에서 ‘젊은 피’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과 동시에 최근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의 고령화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올해 소설 당선자 가운데 40대가 동아일보 서문경(44·중편소설), 대한매일 정희일(41), 한국일보 가백현(40) 등 3명, 30대가 조선일보 권정현(32)과 경향신문 김계환(30)으로 2명인 반면, 신춘문예의 주축세력이었던 20대는 세계일보 신현대(26), 문화일보 김지현(27) 등 2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서른 넘어 등단하면 으레 ‘늦깎이’라 부르는 관례가 민망할 정도다.
물론 등단 연령의 고령화가 반드시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소설가 윤후명씨는 “20대에 데뷔하지 못하면 아예 문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해 문단의 조로현상이 심각했다”면서 “늦은 나이까지 포기하지 않고 문학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20대의 눈높이에서 동시대를 이야기해 줄 문학 생산자가 없다는 것은 분명 우리 문학의 비극이다. 90년대 ‘신세대 문학 논쟁’의 중심에는 ‘아담이 눈뜰 때’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선보인 장정일이 있었고, 90년대 소비사회의 상징인 압구정동에 서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고 노래한 시인 유하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40줄에 접어들었다.
사실 90년대 들어 대학들이 인기 없는 어문계열 학과를 폐지하고 유행처럼 문예창작과(전문대 포함 40군데)를 개설하면서 매년 1000명이 넘는 예비 작가가 양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문단은 ‘주목할 신인’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서 대학 문예창작 교육의 맹점이 드러난다.
중앙대 이승하 교수(시인)는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는 대신 등단용 작품만 쓰게 하는 문예창작과의 수공업적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서울예대 박기동 교수(소설가)도 “대학의 문학교육이 얼치기 문학도를 양산한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강상희 교수는 “문예창작과에서도 시나리오나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겠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면서 “그중에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독서 체험을 가지고 작가가 되겠다는 의욕만 있는 학생이 많다”고 꼬집었다. 결국 등단에는 성공하더라도 작품활동이 지속적이지 못한, 호흡 짧은 작가들만 양산되면서 문단의 조로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민음사의 박상순 주간은 원로작가들의 장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조정래나 이문열, 박완서 선생과 같은 시대의 이야기꾼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그들의 작품을 ‘체언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90년대 작가들은 ‘관형어의 문학’을 했다. 지금 90년대 작가들이 부진한 것은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독서 취향을 너무 무시하지 않는 소설이 생명력이 길다.”
최인호씨는 1963년 데뷔 이래 중·단편에 주력할 때는 100m를 숨 한번 쉬지 않고 달리는 스프린터처럼 살았다고 회고했다. 장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1만m 중거리주자가 되었다가 호흡이 긴 장편을 쓸 때는 마라토너가 되기도 했다. 이제 그는 남은 인생을 눈부신 속도의 스프린터처럼 뛰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순(耳順)에 접어든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한 번도 전속력으로 달려보지 않고 출발선에서 기권하는 신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