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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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앙숙 ‘미-월’ 또 티격태격

미국이 베트남 난민 정착 허용하자 “내정 개입 불순한 의도” 강력 반발

  • < 이강우/ 하노이 통신원 > lkwvn@yahoo.co.kr

    입력2004-09-21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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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앙숙 ‘미-월’ 또 티격태격
    베트남은 54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총인구 7800만명 중 89%를 차지하는 경족(베트남족)이 정치, 경제, 문화를 주도한다. 베트남을 구성하는 나머지 53개 소수민족은 사회 중심에서 밀려나 비주류로 남아 있다. 하지만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이들 소수민족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학이나 정부 기관의 주요 직위 중 일정 비율을 할애하도록 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이들 소수민족을 적극 배려하는 이유는 국가 대통합이라는 명분 외에, 이들 소수민족의 거주지역이 주변 인접국과 분쟁 소지가 있는 국경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민족은 인접한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 산악지역에 거주하면서 국적에 상관없이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과 영토분쟁이 발생하면 이들 소수민족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지도의 경계선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베트남 정부를 괴롭히는 소수민족 관련 사건이 일어났다. 더욱이 이 사건에는 불필요한 마찰을 원치 않는 미국까지 개입돼 있다.

    토지 반환·종교 자유 요구하며 폭동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적으로 커피값이 폭락해 생계를 위협받자, 자라이와 닥락 등 베트남 고산지역 소수민족은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하여 자신들의 토지를 반환해 줄 것과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관공서에 난입하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베트남 중부 국경 산악지대에서 거주하던 소수 고산족들은 베트남전이 끝난 75년 이후 정부의 강력한 토지 국유화 정책과 집단농장화 정책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잃고 주변부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측에 가담했고 종전 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온 기독교인들로 베트남 공산당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군부대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하고 이 지역을 봉쇄하는 등 강경진압으로 대응했다. 결국 1000여명의 소수민족은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가 난민신청을 했다. 당시 베트남 국내 언론은 아무런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고 일부 외신 보도를 통해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 후 캄보디아는 유엔 난민구제고등판무관(UNHCR)과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경 인근의 반룽과 몬둘커리 두 곳에 베트남 소수민족을 위한 난민 수용소를 운영했다. 그러다가 지난 1월21일 베트남 캄보디아 유엔은 이들 소수민족의 처리 문제를 놓고 3자협상을 벌인 끝에 이들을 본국에 송환하기로 하는 협정에 서명했고, 그중 일부는 본국으로 송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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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소수민족이 본국 송환을 거부했고, 본국 송환 소수민족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유엔 조사단이 베트남에 들어가려 했으나 입국조차 거부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지난 3월 중순에는 이들 소수민족의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베트남인 400여명이 난민 수용소에 난입해 유엔 직원들과 난민들을 위협한 채 베트남으로 귀환할 것을 종용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3월25일 UNHCR의 루드 러브스 판무관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측의 비협조로 더 이상 난민송환 문제를 합의에 따라 진행할 수 없으며, 난민들이 본국으로 귀환할지 제3국으로 떠날지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자유 의사에 달렸다”고 발표해 3자간 협상의 공식 파기를 선언했다.

    미국은 ‘당연히’ 이들 소수민족을 난민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미국 정착을 허용했다. 그런 한편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송환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3월26일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베트남은 이들 난민의 미국 정착 여부에 대해 언급할 권리가 없다. 이들은 이미 베트남 땅을 벗어나 있으며, 만약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할 경우 베트남 국내법에 따라 처벌받게 되므로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미국 정착을 캄보디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베트남측은 유엔이 캄보디아 내 난민 수용소에 있는 베트남 소수민족의 베트남 송환 결정을 철회하는 것은 국제적 합의와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판 투이 타잉 베트남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국제 협정을 자의적으로 철회해 이들을 난민으로 처리하는 배경에는 베트남 내정에 개입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베트남이 이렇게 날카롭게 대립하자 답답한 것은 정작 캄보디아다. 베트남측의 후원을 받고 있는 캄보디아의 실권자 훈 센 총리는 이번 캄보디아 내 베트남 소수민족 처리 문제로 매우 난감해하고 있다. 당초 베트남 소수민족의 본국 귀환으로 무난히 합의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던 캄보디아는 문제가 엉뚱하게 불거지자 지난 3월26일 베트남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 900여명의 미국 이주를 승인했다. 훈 센 총리는 “캄보디아 정부는 베트남 난민들이 베트남으로 귀환하든 미국으로 이주하든 본인들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며 미국이 제시한 베트남 난민 수용안을 수락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주 캄보디아 미국 대사관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베트남 소수민족을 수용했던 2개의 난민 수용소는 모두 폐쇄됐고 미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905명의 소수민족은 프놈펜 근교로 옮겨져 한 달 가량의 행정절차를 마친 뒤 미국으로 갈 예정이다.

    지금까지 100여명의 귀환자를 받아들인 베트남도 이들을 환영하는 행사와 지역 주민에 대한 포상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는 동시에 군과 경찰 간부들을 대거 현지에 파견해 공산당 기구를 정비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섰다. 또한 베트남 혁명의 본산인 북부 타이빙성 주민 4만명을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중부 산악지역에 이주시키는 계획을 마련하는 등 국민 대통합과 사상적 안정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75년 베트남을 떠난 이후 미국은 다양한 형태의 대(對)베트남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지금도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베트남의 인권·종교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베트남은 미국 내 유색인종 차별 문제와 이라크, 코소보 폭격, 중동 문제 등을 언급하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과 미국. 이 두 나라에 남은 현대사의 상처는 2000년 12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역사적인 베트남 방문과 지난해 말 양국간 무역협정 발효를 통한 관계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아직도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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