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의 소설에는 온갖 변태성욕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근친상간·집단성교·동성애·수간….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은 미소년들을 납치해 포르노그래피를 찍고 살해한 후 암매장하는 한창림·박태자 부부의 이야기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은 백민석의 데뷔작이며 이후 장편소설로 개작한 ‘내가 사랑한 캔디’(96년)에서 벌거벗고 누워 포르노를 보면서 대사를 따라 외우던 주인공 커플(나와 캔디)이 성장해 직접 포르노를 연출하는 한창림·박태자 부부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온갖 변태성욕에 납치·폭행·고문·살인·강간과 같은 갖가지 악행들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는 악취를 풍기는 것이 ‘목화밭 엽기전’이다.
백민석은 4권의 장편소설과 1권의 작품집으로 1970년대생 신세대 작가 중에서도 ‘가장 21세기적인 문제작가’로 떠올랐다. 심각한 조로현상을 겪는 국내 문단이 백민석의 다음 작품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두 번째 작품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 택한 주제는 유령이다. 그는 전작 ‘목화밭 엽기전’에서 보여준 선혈이 낭자한 표현들을 거두고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는 음습하게 덮쳐오는 공포를 선사한다. 그가 선택한 ‘유령’ 코드는 우리가 잊고자 한 모든 기억들이다.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과거가 잔잔한 머릿속에 불쑥, 그것도 눈에 보이듯 뚜렷하게 떠올랐을 때 백민석식 유령파티가 시작된다.
나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다. 학교 가는 대신 날마다 장원으로 출근해 샘물을 받고 부엌 쓰레기를 버리고, 오리나무 주변 엉겅퀴를 뜯는 것이 나의 일이다.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도련님 aw(백민석은 등장인물을 모두 알파벳 기호로 표시했다)의 놀이상대가 되는 것이다. 탐날 정도로 하얀 얼굴, 결코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닿지 않는 사뿐한 걸음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 오른쪽 끝을 살짝 올리는 얄따란 웃음. 나는 도련님의 표정과 걸음걸이와 언어까지도 모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aw는 소년이 자신을 훔쳐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한다. “가르쳐 주고 싶다. 심부름꾼 아이 너에게는 나만한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읽어도 나와 똑같은 언어를 구사할 순 없다는 것을. 너는 영혼이 텅 빈 아이라는 것을.”
그러나 19년 만에 찾아간 장원에서 나는 aw가 죽었음을 알게 된다. 여자친구 xp에게 돌아와 장원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이야기하면 할수록 나는 사라지고 aw만 남는다. 내가 그의 영혼을 훔친 것인가, 그가 나의 육체를 훔친 것인가.
두 번째 단편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 이어 한 호흡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장원이나 저택은 호러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주변 풍경 묘사는 구체적이지만 분위기는 비현실적이다. 소설에서 나는 우체국 통장으로 돈을 넣어준 후원자가 살던 저택으로 초대 받는다(후원자는 이미 죽었다). ‘죽은 사람의 손님’이라는 묘한 입장에서 그를 맞아준 것은 후원자의 아들 wt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늘어뜨리는 wt의 자세는 갈고리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갈고리라고 생각하면서 저택의 손님들을 다락으로 불러 발가벗기고 캔버스에 하나씩 그들을 그려 넣는다. 내가 저택에 머물면서 먹은 정체불명의 고기요리는 바로 캔버스에 남겨진 사람의 발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끝없이 토하는 나.
8편 가운데 자전소설 ‘이 친구를 보라’를 빼고는 모두 유령 이야기다. 그러나 눈치 빠른 독자라면 금세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97년)을 떠올릴 것이다.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하루키의 소설집에서 표제작 ‘렉싱턴의 유령’은 워싱턴의 외딴 마을에서 빈 집을 지키는 주인공과 유령들의 파티 이야기다. 백민석의 유령이 그리 신선한 코드가 아니라는 데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의 발상은 늘 발칙하고 그로테스크한 문학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301쪽/ 8000원
백민석은 4권의 장편소설과 1권의 작품집으로 1970년대생 신세대 작가 중에서도 ‘가장 21세기적인 문제작가’로 떠올랐다. 심각한 조로현상을 겪는 국내 문단이 백민석의 다음 작품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두 번째 작품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 택한 주제는 유령이다. 그는 전작 ‘목화밭 엽기전’에서 보여준 선혈이 낭자한 표현들을 거두고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는 음습하게 덮쳐오는 공포를 선사한다. 그가 선택한 ‘유령’ 코드는 우리가 잊고자 한 모든 기억들이다.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과거가 잔잔한 머릿속에 불쑥, 그것도 눈에 보이듯 뚜렷하게 떠올랐을 때 백민석식 유령파티가 시작된다.
나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다. 학교 가는 대신 날마다 장원으로 출근해 샘물을 받고 부엌 쓰레기를 버리고, 오리나무 주변 엉겅퀴를 뜯는 것이 나의 일이다.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도련님 aw(백민석은 등장인물을 모두 알파벳 기호로 표시했다)의 놀이상대가 되는 것이다. 탐날 정도로 하얀 얼굴, 결코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닿지 않는 사뿐한 걸음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 오른쪽 끝을 살짝 올리는 얄따란 웃음. 나는 도련님의 표정과 걸음걸이와 언어까지도 모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aw는 소년이 자신을 훔쳐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한다. “가르쳐 주고 싶다. 심부름꾼 아이 너에게는 나만한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읽어도 나와 똑같은 언어를 구사할 순 없다는 것을. 너는 영혼이 텅 빈 아이라는 것을.”
그러나 19년 만에 찾아간 장원에서 나는 aw가 죽었음을 알게 된다. 여자친구 xp에게 돌아와 장원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이야기하면 할수록 나는 사라지고 aw만 남는다. 내가 그의 영혼을 훔친 것인가, 그가 나의 육체를 훔친 것인가.
두 번째 단편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 이어 한 호흡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장원이나 저택은 호러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주변 풍경 묘사는 구체적이지만 분위기는 비현실적이다. 소설에서 나는 우체국 통장으로 돈을 넣어준 후원자가 살던 저택으로 초대 받는다(후원자는 이미 죽었다). ‘죽은 사람의 손님’이라는 묘한 입장에서 그를 맞아준 것은 후원자의 아들 wt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늘어뜨리는 wt의 자세는 갈고리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갈고리라고 생각하면서 저택의 손님들을 다락으로 불러 발가벗기고 캔버스에 하나씩 그들을 그려 넣는다. 내가 저택에 머물면서 먹은 정체불명의 고기요리는 바로 캔버스에 남겨진 사람의 발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끝없이 토하는 나.
8편 가운데 자전소설 ‘이 친구를 보라’를 빼고는 모두 유령 이야기다. 그러나 눈치 빠른 독자라면 금세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97년)을 떠올릴 것이다.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하루키의 소설집에서 표제작 ‘렉싱턴의 유령’은 워싱턴의 외딴 마을에서 빈 집을 지키는 주인공과 유령들의 파티 이야기다. 백민석의 유령이 그리 신선한 코드가 아니라는 데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의 발상은 늘 발칙하고 그로테스크한 문학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301쪽/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