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첫 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3권)는 먹고 노는 것에 치우쳤던 한국인의 여행문화를 바꿔놓을 만큼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창 해외여행이 붐을 이루던 시기에 ‘답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책으로 기억된다.
조상이 물려준 문화유산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책이 대히트했다. 유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보다 1년 앞서 출간된 위치우위(余秋雨)의 ‘중국문화답사기’(원제는 文化苦旅)가 그 주인공. 이 책은 중국 대만 홍콩을 아우르는 베스트셀러로 상복도 많아서 상하이 제2회 문학우수성과상, 92년 대만 연합신문사 선정 최우수서적상, 상하이 출판 1등상 등을 휩쓸었다.
이 책의 성공에는 저자의 인기도 한몫 했다. 예술평론가, 문화사학자, 수필가로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위치우위(54)는 상해희극학원 원장 겸 교통대학, 화동사범대학 교수라는 공식직함으로 중국 내에서 ‘국가에 뛰어난 공헌을 한 학자’ ‘상하이시 10대 교수’로 선정될 만큼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행복한 작가다. 때로는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루쉰에 비견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저자의 지명도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우리의 궁금증은 왜 위치우위의 ‘중국문화답사기’가 유독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있다.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책을 뒤적이다 보면 위치우위가 둔황 막고굴을 여행하던 중 어스름 저녁 산자락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기는 부분에 이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인도의 산치 대탑 또는 고대 로마의 격투장 유적지와 비교해 볼 때, 중국의 수많은 유적지에는 역사가 겹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유적지는 일반적으로 한 시대에 건설되어 그 시대를 풍미하다가 순수한 그 시대의 유물로 후세 사람들의 관람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예를 들어, 만리장성은 수세대에 걸쳐 건설되고 증축됐다. 장성은 이렇듯 공간이 늘어나면서 시간의 연속과 묘한 대응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역사 유적지들은 항상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각 시대마다 독특한 품격을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위치우위는 1000년의 역사를 품은 거대한 둔황석굴(벽화를 전부 연결하면 3만m에 달한다고 한다)을 그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뿜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관광객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유적 그 자체가 아닌 거기에 담긴 중국 정신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비애와 한탄을 섞어가며 여행을 기록한다.
그래서 이 책의 ‘돈황 막고굴’ 편에서 석굴이 지닌 예술적-종교적 가치를 설명하는 대신 석굴의 벽화와 조각들을 닭 한 마리, 채소 한 바구니, 은전 몇 푼에 팔아먹은 왕도사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유산이 약탈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을 두고 “정말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부분에 이르러서 독자는 저자와 손을 부여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중국문화답사기’에 읽는 맛을 더해주는 것은 위치우위의 탁월한 표현력이다. 그는 “그대여! 다시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게나. 서쪽으로 양관을 넘으면 그대 못 볼 것을”이라는 왕유의 ‘위성곡’을 읊으며 황무지나 다름없는 양관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멀리 나무가 보인다. 급히 달려가 보니 나무 아래 물이 흐르고 모래 둔덕도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져 있다. 언덕에 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산봉우리 누런 흙으로 이루어진 둥근 둔덕이 보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곳이 바로 양관이라고 확신했다.”
중국의 문화유적에 대한 교과서 같은 지식을 원한다면 이 책이 불만스러울 것이다. 때로는 허물어져가는 유적 앞에서의 넋두리 같은 감상주의가 성미 급한 독자를 짜증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독자들은 밋밋한 강의조의 글보다 유려한 문장으로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풀어놓는 위치우위의 글에 매료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중국인의 몸 속에 들어가 중국여행을 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남덕현 교수(부산대·중문학)는 영원한 고전 소설 ‘삼국지’(원제는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문화유적지 48곳을 둘러보는 새로운 여행을 시도해 ‘삼국지문화답사기’를 출간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황건적 토벌, 원소와 조조의 관도대전, 조자룡과 장비가 활약한 장판파 전투, 유비 손권의 연합군과 조조의 적벽대전, 형주를 둘러싼 동오와 서촉의 싸움은 소설 속의 한 장면이기 전에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와 유비가 천하의 영웅에 대해 토론했다는 허창 지역의 ‘청매정’(靑梅亭), 5만의 군사를 거느린 제갈량이 화공(火攻)으로 40만 조조군을 대파했다는 ‘적벽대전’의 현장도 실재한다. 당시 활활 타오르던 불이 장강 남쪽 강변의 절벽을 붉게 비추었다 해서 이 절벽을 ‘적벽’(赤壁)이라 부르고 그 산을 적벽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 속의 영웅과 그 무대가 실제로 존재할까라는 독자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여행은 중국에 뿌리내린 ‘삼국지’ 문화를 확인하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짓는다. 여행 도중에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소설적 허구를 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 여행기에 몰두하다 보면 슬그머니 ‘삼국지’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중국문화답사기/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미래M&B 펴냄/ 520쪽/ 1만5000원
삼국지문화답사기/ 남덕현 지음/ 미래M&B 펴냄/ 384쪽/ 1만5000원
조상이 물려준 문화유산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책이 대히트했다. 유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보다 1년 앞서 출간된 위치우위(余秋雨)의 ‘중국문화답사기’(원제는 文化苦旅)가 그 주인공. 이 책은 중국 대만 홍콩을 아우르는 베스트셀러로 상복도 많아서 상하이 제2회 문학우수성과상, 92년 대만 연합신문사 선정 최우수서적상, 상하이 출판 1등상 등을 휩쓸었다.
이 책의 성공에는 저자의 인기도 한몫 했다. 예술평론가, 문화사학자, 수필가로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위치우위(54)는 상해희극학원 원장 겸 교통대학, 화동사범대학 교수라는 공식직함으로 중국 내에서 ‘국가에 뛰어난 공헌을 한 학자’ ‘상하이시 10대 교수’로 선정될 만큼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행복한 작가다. 때로는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루쉰에 비견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저자의 지명도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우리의 궁금증은 왜 위치우위의 ‘중국문화답사기’가 유독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있다.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책을 뒤적이다 보면 위치우위가 둔황 막고굴을 여행하던 중 어스름 저녁 산자락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기는 부분에 이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인도의 산치 대탑 또는 고대 로마의 격투장 유적지와 비교해 볼 때, 중국의 수많은 유적지에는 역사가 겹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유적지는 일반적으로 한 시대에 건설되어 그 시대를 풍미하다가 순수한 그 시대의 유물로 후세 사람들의 관람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예를 들어, 만리장성은 수세대에 걸쳐 건설되고 증축됐다. 장성은 이렇듯 공간이 늘어나면서 시간의 연속과 묘한 대응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역사 유적지들은 항상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각 시대마다 독특한 품격을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위치우위는 1000년의 역사를 품은 거대한 둔황석굴(벽화를 전부 연결하면 3만m에 달한다고 한다)을 그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뿜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관광객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유적 그 자체가 아닌 거기에 담긴 중국 정신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비애와 한탄을 섞어가며 여행을 기록한다.
그래서 이 책의 ‘돈황 막고굴’ 편에서 석굴이 지닌 예술적-종교적 가치를 설명하는 대신 석굴의 벽화와 조각들을 닭 한 마리, 채소 한 바구니, 은전 몇 푼에 팔아먹은 왕도사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유산이 약탈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을 두고 “정말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부분에 이르러서 독자는 저자와 손을 부여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중국문화답사기’에 읽는 맛을 더해주는 것은 위치우위의 탁월한 표현력이다. 그는 “그대여! 다시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게나. 서쪽으로 양관을 넘으면 그대 못 볼 것을”이라는 왕유의 ‘위성곡’을 읊으며 황무지나 다름없는 양관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멀리 나무가 보인다. 급히 달려가 보니 나무 아래 물이 흐르고 모래 둔덕도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져 있다. 언덕에 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산봉우리 누런 흙으로 이루어진 둥근 둔덕이 보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곳이 바로 양관이라고 확신했다.”
중국의 문화유적에 대한 교과서 같은 지식을 원한다면 이 책이 불만스러울 것이다. 때로는 허물어져가는 유적 앞에서의 넋두리 같은 감상주의가 성미 급한 독자를 짜증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독자들은 밋밋한 강의조의 글보다 유려한 문장으로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풀어놓는 위치우위의 글에 매료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중국인의 몸 속에 들어가 중국여행을 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남덕현 교수(부산대·중문학)는 영원한 고전 소설 ‘삼국지’(원제는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문화유적지 48곳을 둘러보는 새로운 여행을 시도해 ‘삼국지문화답사기’를 출간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황건적 토벌, 원소와 조조의 관도대전, 조자룡과 장비가 활약한 장판파 전투, 유비 손권의 연합군과 조조의 적벽대전, 형주를 둘러싼 동오와 서촉의 싸움은 소설 속의 한 장면이기 전에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와 유비가 천하의 영웅에 대해 토론했다는 허창 지역의 ‘청매정’(靑梅亭), 5만의 군사를 거느린 제갈량이 화공(火攻)으로 40만 조조군을 대파했다는 ‘적벽대전’의 현장도 실재한다. 당시 활활 타오르던 불이 장강 남쪽 강변의 절벽을 붉게 비추었다 해서 이 절벽을 ‘적벽’(赤壁)이라 부르고 그 산을 적벽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 속의 영웅과 그 무대가 실제로 존재할까라는 독자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여행은 중국에 뿌리내린 ‘삼국지’ 문화를 확인하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짓는다. 여행 도중에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소설적 허구를 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 여행기에 몰두하다 보면 슬그머니 ‘삼국지’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중국문화답사기/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미래M&B 펴냄/ 520쪽/ 1만5000원
삼국지문화답사기/ 남덕현 지음/ 미래M&B 펴냄/ 384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