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력지원 문제가 2001년 남북관계를 결정짓는 최대 돌출변수로 불거진 가운데 정부가 대북 전력지원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음이 문서로 확인되었다. 또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지난해 3월 베를린 선언 직후 한전에 전력협력준비팀을 구성해 대북 전력지원 방안을 준비해왔고, 특히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력지원을 공식 요청한 이후 11개 대북 전력협력사업을 골자로 한 ‘가상 시나리오별 협력방안’을 짜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협력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북한의 전체 전력설비를 정상화하는데 10년간 6조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년간 투입액 6조원 이상 추정
이와 같은 내용은 ‘주간동아’가 입수한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이란 제목의 대외비 문건에서 확인되었다. 16쪽 분량의 이 대외비 문건은 지난해 10월 한전 전력협력준비팀이 작성한 것이다. 그동안 이 대외비 문건 제목과 그 내용이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언론에 간헐적으로 보도되었지만, 문건 전문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 문건은 한전의 대외비 문건일 뿐이지 정부의 확정된 전력지원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건 자체가 산자부의 요청으로 작성되었고, 정부가 이 문건을 토대로 부처간 검토-협의를 거쳐 북측의 전력지원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북 전력지원은 궁극적으로 이 11개 사업 중 하나 혹은 복수 형태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은 크게 △남북한 전력현황 비교 △전력분야 협력사업 특징 △가상 시나리오별 협력방안 △개성 전용공단 전력협력방안(별첨)의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중 주목할 대목은 11개 전력협력사업을 예시한 가상 시나리오별 협력방안과 개성공단 전력협력방안이다. 문건에 따르면 남한측이 전력분야에서 상정하고 있는 11개 사업은 △발전용 무연탄 지원 △발전용 중유 지원 △발전설비 긴급보수 지원 △노후 발전소 성능 복구 △유휴 발전기 이설 △소용량 발전소 긴급 건설 △대용량 화력발전소 건설 △노후 송배전설비 보강 △남측 송-배전선로 연장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 연장 건설 △남북 전력계통 연계기반 구축 등이다(표 참조).
이 가운데 극심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측의 요구조건과 남측의 여론 및 현실적 제약 조건 등을 감안하면 현재 유력한 방안은 △발전용 무연탄 지원 △발전설비 긴급보수 지원 △남측 송-배전선로 연장 등이다.
무연탄 지원사업은 북한 전력난의 상당 부분이 발전용 연료 부족에 의한 발전량 저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해 정부의 비축 무연탄(120만t)과 산지의 재고 무연탄을 지원해 북한의 전력 생산량을 증대하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석탄 수요가 줄어 무연탄 재고가 1000만t에 달하는데 북한은 석탄 부족으로 화력발전소 가동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방안은 정부 비축물량의 수송비(120만t×수송비 3만5000원/t=420억원) 외에는 별도의 재원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으나 북한의 전력 요구수준(50만kW 송전)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원 비용은 마그네사이트 같은 북한의 광물자원으로 지급받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안영근 의원(한나라·인천 남을)도 지난해 10월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아직 북한의 공식요청은 없지만, 산자부와 한전의 내부문건을 열람하고 정부의 준비상황을 종합 검토해본 결과 무연탄 지원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안의원은 구체적으로 강원도 도계에 있는 정부 비축분을 묵호항에서 청진항으로 수송할 경우 1t당 선적비 2만6922원, 3급탄가 6만8990원으로 총 9만5812원이 소요되고, 경의선을 통해 수송할 경우 1km/t에 35원이 소요되는데 결정만 되면 바로 시행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발전설비 긴급보수 지원사업은, 북한의 전력난이 발전소 부족보다는 발전소 노후 및 보수용 자재 부족으로 정상 가동되지 못해 발생하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남측 기술진이 북한 발전소의 취약설비를 분해 점검해 교체하는 데 1년 정도가 소요되는 이 사업은 현실적으로 가장 단기간에 최소비용(10만kW급 2기 기준 80억원)으로 전력난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현재 30% 이하인 북한 발전소의 이용률을 60%로 향상했을 경우 이 사업은 연간 5억kW 정도의 발전량 확충 효과가 기대된다.
남측 송-배전선로 연장사업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경의선 복원 및 도로 연결사업과 병행할 수 있는 데다가 전기로 남북을 잇는 화해협력의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방안이다. 이 방안은 남한의 전력 비수기나 심야의 전력 수요가 낮을 때 여유 발전설비를 가동해 북한의 일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향후 남북간 전력계통을 단일화할 때 연계선로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업방식은 남측 지역은 한전 주도로 시공하되, 북측 지역은 협상결과에 따라 한전이 시공을 주도하거나 아니면 남한이 자재를 공급하고 시공은 북측이 주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방식에 의한 전력지원을 준비해왔다. 한전은 문산(공급변전소)∼남천(수전변전소)을 잇는 154kV 송전선로 사업(20만kW 공급)에 400억원, 문산(공급변전소)∼개성(수전변전소)을 잇는 22.9kV 배전선로 사업(1만kW 공급)에 4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와 같은 규모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연간 400억원 정도의 발전비용이 소요되는 이 사업의 전력공급 기대효과는 연 11억kW쯤이다. 사업기간은 배전선로의 경우 6개월, 송전선로의 경우 34개월이 소요된다.
이 사업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시선을 끄는 것은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 문건에 별첨한 ‘개성 전용공단 전력협력방안’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현대가 1999년 1월 우리 회사(한전)에 제시한 공단의 전력수요는 50만kW”라고 전제하고 “양질의 전기품질 확보를 위해 북한의 전력계통과 분리 운전”하되 “남한계통과 연계하거나 자체 발전소를 건설”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문산변전소에서 154kV 송전선로를 건설해 공급하되 △공단의 전력수요 증가로 송전선로 용량이 부족할 때는 발전설비(4만kW급 내연발전소 또는 10만∼20만kW급 화력발전소)를 연차적으로 추가건설하며 △전력공급이 긴급히 요청될 경우에는 북제주 내연발전기(유휴설비)를 이설하거나 문산변전소에서 배전선로 연결로 대처한다는 방안이다.
전력문제가 최대 쟁점이 된 4차 장관급회담(12월12일∼16일)과 남북경협추진위 1차회의에서 북한이 남측에 요구한 방안도 바로 이 방안이다. 그런데 북측은 당초 남측에 200만kW급 화력발전소 건설을 요구했었으나 4차 장관급회담에서는 처음으로 “우선 50만kW의 전력을 송전 방식으로 조속히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북측이 구체적으로 50만kW의 전력지원을 송전방식으로 요구한 것은 남측이 구상하고 있는 개성공단 전력공급방안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측의 요구가 너무 긴박하다는 점이다. 국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북한측이 광복 이후 남측도 북측의 수풍발전소(발전용량 70만kW) 전기를 끌어다 쓰지 않았느냐면서 전력지원을 막무가내로 요청하는 바람에 이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즉 그때는 남북한 전력계통이 일제에 의해 건설된 단일 계통설비였기에 선만 이으면 되었지만 분단 이후로는 남북한이 서로 다른 방식의 전력계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측이 요구하는 송전방식에 의한 전력지원을 하려면 먼저 북측의 발전설비 및 송-배전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으나, 북측은 남측 언론에 보도된 산술적인 전력예비율만 내세우며 ‘남는 전기 좀 달라는데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재촉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전력지원이라는 장기적 협력과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와 남측의 정치-사회 시스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절박한 북한의 전력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1월중에 북측의 전력실태를 공동조사하기로 합의한 남북경협추진위 1차회의에서도 북측 인사들은 ‘베를린 선언’의 실천을 강조하며 남측이 즉시 대북 전력지원에 나설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난해 3월 김대통령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당국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베를린 선언’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중요한 전기(轉機)였음을 감안하면 북측의 주장이 억지만은 아니다.
게다가 전력지원은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한 사안이다. 따라서 실태조사 등의 사정으로 전력지원이 늦춰질 경우 북측은 베를린 선언의 약속을 위반한 것이며 김정일 위원장의 ‘체면이 깎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이미 남북이 합의한 남북관계 일정도 흐트러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북측이 전력실태 공동조사에 합의한 만큼 1월 중으로 전력 실태를 조사한 뒤에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 문건도 북측의 현실적 요구 및 전력설비에 대한 실상 파악이 어려운 점을 들어 “북측에 대한 실태조사 없이는 효과적 협력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고 우리측에서 제시 가능한 협력사업의 사전 선정이 곤란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태조사에 합의한 만큼 일단 고비는 넘긴 셈이다.
문제는 남측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여론이다.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 문건 또한 “전력분야 협력 사업을 통한 상호이익 실현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며 그 근거로 △북한의 열악한 전력사정에 비추어 호혜적 협력사업이 전무하기 때문에 북한 전력설비 정상화 위주의 시혜성 협력이 불가피하고 △정상화 이후에는 상호협력이 가능하나 거기에는 장기간의 시일이 소요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건은 따라서 “10년간 6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투자재원 확보를 위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력이 ‘전략물자’임을 들어 지원을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층의 반대도 정부에는 부담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전력산업 분할매각에 동의한 한나라당이 전력이 ‘전략물자’임을 주장해 반대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지원 전력의 군사용 전환을 우려하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요청한 송전방식에 의한 전력지원은 북한으로서도 ‘위험부담‘을 감수한 것이다. 군사용 전환이 확실할 때는 전력공급을 중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서의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전력지원에 대해 이러저러한 우려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력이 우리에게 ‘전략물자’이면 북측에도 ‘전략물자’다. 6·25 전쟁 전에 북측이 남측에 전력을 공급해온 수풍발전소의 전기를 일방적으로 끊는 바람에 남한은 큰 혼란에 빠졌다.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 규모였던 수풍발전소의 발전용량이 70만kW이고, 거기에서 남한에 공급한 전력이 5만kW였다. 지금 북측이 요구한 50kW는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카드’다. 북측도 그런 위험부담을 알지만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전력지원을 요청해온 것이다.”
국정원 대북전략 부서의 한 고위관계자도 “전력은 경우에 따라서 북한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전략카드’다. 다만 지금은 국내 여론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우리측 회담대표들이 시간이 필요하다며 북측을 설득했다”고 말해 내부적으로는 전력지원 방침이 섰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아직 전력지원에 대한 구체적 일정이나 방안이 확정된 바는 없고 북측이 나름대로 입장을 정리해 오면 문서교환 협의방식으로 확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한 문서교환 협의방식은 정상회담 준비접촉 당시 남북한이 같은 방식으로 합의한 전례가 있다. 이는 곧 남북한 당국이 전력지원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마치고 실무적 절차 합의만을 남겨두었음을 의미한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남북관계 전반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 “전력을 주고 이산가족 면회소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대의 돌출변수로 등장한 전력지원 문제가 면회소 설치와 맞바꾸는 식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10년간 투입액 6조원 이상 추정
이와 같은 내용은 ‘주간동아’가 입수한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이란 제목의 대외비 문건에서 확인되었다. 16쪽 분량의 이 대외비 문건은 지난해 10월 한전 전력협력준비팀이 작성한 것이다. 그동안 이 대외비 문건 제목과 그 내용이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언론에 간헐적으로 보도되었지만, 문건 전문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 문건은 한전의 대외비 문건일 뿐이지 정부의 확정된 전력지원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건 자체가 산자부의 요청으로 작성되었고, 정부가 이 문건을 토대로 부처간 검토-협의를 거쳐 북측의 전력지원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북 전력지원은 궁극적으로 이 11개 사업 중 하나 혹은 복수 형태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은 크게 △남북한 전력현황 비교 △전력분야 협력사업 특징 △가상 시나리오별 협력방안 △개성 전용공단 전력협력방안(별첨)의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중 주목할 대목은 11개 전력협력사업을 예시한 가상 시나리오별 협력방안과 개성공단 전력협력방안이다. 문건에 따르면 남한측이 전력분야에서 상정하고 있는 11개 사업은 △발전용 무연탄 지원 △발전용 중유 지원 △발전설비 긴급보수 지원 △노후 발전소 성능 복구 △유휴 발전기 이설 △소용량 발전소 긴급 건설 △대용량 화력발전소 건설 △노후 송배전설비 보강 △남측 송-배전선로 연장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 연장 건설 △남북 전력계통 연계기반 구축 등이다(표 참조).
이 가운데 극심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측의 요구조건과 남측의 여론 및 현실적 제약 조건 등을 감안하면 현재 유력한 방안은 △발전용 무연탄 지원 △발전설비 긴급보수 지원 △남측 송-배전선로 연장 등이다.
무연탄 지원사업은 북한 전력난의 상당 부분이 발전용 연료 부족에 의한 발전량 저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해 정부의 비축 무연탄(120만t)과 산지의 재고 무연탄을 지원해 북한의 전력 생산량을 증대하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석탄 수요가 줄어 무연탄 재고가 1000만t에 달하는데 북한은 석탄 부족으로 화력발전소 가동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방안은 정부 비축물량의 수송비(120만t×수송비 3만5000원/t=420억원) 외에는 별도의 재원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으나 북한의 전력 요구수준(50만kW 송전)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원 비용은 마그네사이트 같은 북한의 광물자원으로 지급받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안영근 의원(한나라·인천 남을)도 지난해 10월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아직 북한의 공식요청은 없지만, 산자부와 한전의 내부문건을 열람하고 정부의 준비상황을 종합 검토해본 결과 무연탄 지원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안의원은 구체적으로 강원도 도계에 있는 정부 비축분을 묵호항에서 청진항으로 수송할 경우 1t당 선적비 2만6922원, 3급탄가 6만8990원으로 총 9만5812원이 소요되고, 경의선을 통해 수송할 경우 1km/t에 35원이 소요되는데 결정만 되면 바로 시행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발전설비 긴급보수 지원사업은, 북한의 전력난이 발전소 부족보다는 발전소 노후 및 보수용 자재 부족으로 정상 가동되지 못해 발생하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남측 기술진이 북한 발전소의 취약설비를 분해 점검해 교체하는 데 1년 정도가 소요되는 이 사업은 현실적으로 가장 단기간에 최소비용(10만kW급 2기 기준 80억원)으로 전력난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현재 30% 이하인 북한 발전소의 이용률을 60%로 향상했을 경우 이 사업은 연간 5억kW 정도의 발전량 확충 효과가 기대된다.
남측 송-배전선로 연장사업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경의선 복원 및 도로 연결사업과 병행할 수 있는 데다가 전기로 남북을 잇는 화해협력의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방안이다. 이 방안은 남한의 전력 비수기나 심야의 전력 수요가 낮을 때 여유 발전설비를 가동해 북한의 일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향후 남북간 전력계통을 단일화할 때 연계선로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업방식은 남측 지역은 한전 주도로 시공하되, 북측 지역은 협상결과에 따라 한전이 시공을 주도하거나 아니면 남한이 자재를 공급하고 시공은 북측이 주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방식에 의한 전력지원을 준비해왔다. 한전은 문산(공급변전소)∼남천(수전변전소)을 잇는 154kV 송전선로 사업(20만kW 공급)에 400억원, 문산(공급변전소)∼개성(수전변전소)을 잇는 22.9kV 배전선로 사업(1만kW 공급)에 4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와 같은 규모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연간 400억원 정도의 발전비용이 소요되는 이 사업의 전력공급 기대효과는 연 11억kW쯤이다. 사업기간은 배전선로의 경우 6개월, 송전선로의 경우 34개월이 소요된다.
이 사업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시선을 끄는 것은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 문건에 별첨한 ‘개성 전용공단 전력협력방안’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현대가 1999년 1월 우리 회사(한전)에 제시한 공단의 전력수요는 50만kW”라고 전제하고 “양질의 전기품질 확보를 위해 북한의 전력계통과 분리 운전”하되 “남한계통과 연계하거나 자체 발전소를 건설”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문산변전소에서 154kV 송전선로를 건설해 공급하되 △공단의 전력수요 증가로 송전선로 용량이 부족할 때는 발전설비(4만kW급 내연발전소 또는 10만∼20만kW급 화력발전소)를 연차적으로 추가건설하며 △전력공급이 긴급히 요청될 경우에는 북제주 내연발전기(유휴설비)를 이설하거나 문산변전소에서 배전선로 연결로 대처한다는 방안이다.
전력문제가 최대 쟁점이 된 4차 장관급회담(12월12일∼16일)과 남북경협추진위 1차회의에서 북한이 남측에 요구한 방안도 바로 이 방안이다. 그런데 북측은 당초 남측에 200만kW급 화력발전소 건설을 요구했었으나 4차 장관급회담에서는 처음으로 “우선 50만kW의 전력을 송전 방식으로 조속히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북측이 구체적으로 50만kW의 전력지원을 송전방식으로 요구한 것은 남측이 구상하고 있는 개성공단 전력공급방안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측의 요구가 너무 긴박하다는 점이다. 국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북한측이 광복 이후 남측도 북측의 수풍발전소(발전용량 70만kW) 전기를 끌어다 쓰지 않았느냐면서 전력지원을 막무가내로 요청하는 바람에 이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즉 그때는 남북한 전력계통이 일제에 의해 건설된 단일 계통설비였기에 선만 이으면 되었지만 분단 이후로는 남북한이 서로 다른 방식의 전력계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측이 요구하는 송전방식에 의한 전력지원을 하려면 먼저 북측의 발전설비 및 송-배전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으나, 북측은 남측 언론에 보도된 산술적인 전력예비율만 내세우며 ‘남는 전기 좀 달라는데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재촉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전력지원이라는 장기적 협력과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와 남측의 정치-사회 시스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절박한 북한의 전력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1월중에 북측의 전력실태를 공동조사하기로 합의한 남북경협추진위 1차회의에서도 북측 인사들은 ‘베를린 선언’의 실천을 강조하며 남측이 즉시 대북 전력지원에 나설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난해 3월 김대통령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당국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베를린 선언’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중요한 전기(轉機)였음을 감안하면 북측의 주장이 억지만은 아니다.
게다가 전력지원은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한 사안이다. 따라서 실태조사 등의 사정으로 전력지원이 늦춰질 경우 북측은 베를린 선언의 약속을 위반한 것이며 김정일 위원장의 ‘체면이 깎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이미 남북이 합의한 남북관계 일정도 흐트러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북측이 전력실태 공동조사에 합의한 만큼 1월 중으로 전력 실태를 조사한 뒤에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 문건도 북측의 현실적 요구 및 전력설비에 대한 실상 파악이 어려운 점을 들어 “북측에 대한 실태조사 없이는 효과적 협력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고 우리측에서 제시 가능한 협력사업의 사전 선정이 곤란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태조사에 합의한 만큼 일단 고비는 넘긴 셈이다.
문제는 남측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여론이다. ‘남북 전력분야 협력방안’ 문건 또한 “전력분야 협력 사업을 통한 상호이익 실현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며 그 근거로 △북한의 열악한 전력사정에 비추어 호혜적 협력사업이 전무하기 때문에 북한 전력설비 정상화 위주의 시혜성 협력이 불가피하고 △정상화 이후에는 상호협력이 가능하나 거기에는 장기간의 시일이 소요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건은 따라서 “10년간 6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투자재원 확보를 위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력이 ‘전략물자’임을 들어 지원을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층의 반대도 정부에는 부담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전력산업 분할매각에 동의한 한나라당이 전력이 ‘전략물자’임을 주장해 반대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지원 전력의 군사용 전환을 우려하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요청한 송전방식에 의한 전력지원은 북한으로서도 ‘위험부담‘을 감수한 것이다. 군사용 전환이 확실할 때는 전력공급을 중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서의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전력지원에 대해 이러저러한 우려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력이 우리에게 ‘전략물자’이면 북측에도 ‘전략물자’다. 6·25 전쟁 전에 북측이 남측에 전력을 공급해온 수풍발전소의 전기를 일방적으로 끊는 바람에 남한은 큰 혼란에 빠졌다.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 규모였던 수풍발전소의 발전용량이 70만kW이고, 거기에서 남한에 공급한 전력이 5만kW였다. 지금 북측이 요구한 50kW는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카드’다. 북측도 그런 위험부담을 알지만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전력지원을 요청해온 것이다.”
국정원 대북전략 부서의 한 고위관계자도 “전력은 경우에 따라서 북한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전략카드’다. 다만 지금은 국내 여론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우리측 회담대표들이 시간이 필요하다며 북측을 설득했다”고 말해 내부적으로는 전력지원 방침이 섰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아직 전력지원에 대한 구체적 일정이나 방안이 확정된 바는 없고 북측이 나름대로 입장을 정리해 오면 문서교환 협의방식으로 확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한 문서교환 협의방식은 정상회담 준비접촉 당시 남북한이 같은 방식으로 합의한 전례가 있다. 이는 곧 남북한 당국이 전력지원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마치고 실무적 절차 합의만을 남겨두었음을 의미한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남북관계 전반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 “전력을 주고 이산가족 면회소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대의 돌출변수로 등장한 전력지원 문제가 면회소 설치와 맞바꾸는 식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