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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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가 넘지 못한 전인권의 벽

  • 입력2005-05-27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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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규가 넘지 못한 전인권의 벽
    밴드 ‘부활’의 4대 보컬리스트였던 박완규의 두번째 솔로앨범 ‘엽기발랄(獵奇潑剌)’은 전혀 ‘엽기’적이거나 ‘발랄’하지 않다. 그러나 무려 열여섯 트랙을 통해 직진하는 록의 에너지와 한국의 수용자들이 선호하는 중간템포의 발라드 넘버까지 균형 있게 갖춘, 비용산출 효과(cost performance)가 높은 올가을 수작이다.

    특히 이 앨범은 록 보컬리스트들의 퇴조현상이 두드러진 한국 대중음악계에 반전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솔로 데뷔 앨범 ‘천년지애(千年之愛)’로 대중적 기반과 미래의 가능성을 예약했던 박완규가 단숨에 솟아오를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그의 로큰롤은 랩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90년대 주류인 얼터너티브 혹은 슬래시 메탈, 최근 서태지로 인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하드코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름다운 선율을 중시했던 70~80년대의 복고적인 요소가 강하다. 곧 당시 청년 세대들이 열광했던 팝록(pop rock)이 그의 승부수인 것이다.

    유해준과 김기환을 위시해 그의 앨범에 참여한 작곡가 진영은 이와 같은 박완규의 노선을 충실하게 지켜준다. 특히 ‘TV&16’을 제공한 김기환의 시원한 템포감, ‘눈물 없는 이별’의 유해준이 제공한 애절한 클라이맥스는 이 앨범의 뼈대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히, 이 앨범엔 80년대의 사자후 전인권이 부른 ‘사랑한 후에’가 리메이크돼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마치 나탈리 콜이 그와 아버지인 냇 킹 콜과 듀오를 이루었던 방식과 비슷하다. 즉 전인권의 88년 오리지널 녹음이 그대로 들리다가 박완규가 사이에 끼여들고 마침내 둘이 듀오를 이루는 형식이다. 박완규는 이 불후의 트랙을 통해 앞 시대의 거장에 대한 경의와 자신의 음악적 계보를 은연중에 증빙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전인권은 박완규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너무 힘겨운 준봉이다. 들국화 시절은 생략하더라도 예지로 충만한 88년 솔로앨범 전반부 ‘돌고 돌고 돌고’와 ‘사랑한 후에’ ‘돛배를 찾아서’로 이어지는 신들린 폭발성과 짙디짙은 호소력, 무엇보다도 서구의 록문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독창성의 높이 앞에서 이 젊은 후배의 패기는 아직 중과부적이다.

    전인권은 많은 작품을 쓰진 못했지만 그의 작곡은 그 앞의 어떤 레퍼런스도 허용하지 않으며, 더욱이 멀리 블루스로부터 계시를 받고 로큰롤의 힘을 탑재하며 봉건시대 가객의 떠도는 노래 혼을 점지받은 듯, 그의 장엄한 보컬은 거칠 것 없던 80년대 청년들의 기상을 대변했다.

    전인권은 또한 외국 록 음악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홀리스의 ‘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를 부를 때조차 그것을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인 자기 해석을 더함으로써 원곡보다 더 뛰어난 퍼포먼스의 마술을 이루어낸다.

    박완규는 더욱 깊은 음악의 본질로 침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성마른 보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곡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이 싱어송라이터를 선호하는 것은 그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모든 예술의 근원적인 힘인 ‘그만의 진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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