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1

..

연해주는 한민족의 ‘엘도라도’

남, 북, 조선족, 고려인 새삶의 터전…“좌절의 땅에서 기회의 땅으로”

  • 입력2005-06-16 14: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연해주는 한민족의 ‘엘도라도’
    한(韓)민족이 ‘프리모리’(러시아 연해주)로 달려가고 있다. 고려인 원주민,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고려인, 중국 조선족, 북한 노동자, 남한의 농부와 기업인 등 다섯 부류의 ‘코리안’들이 ‘오색 꿈’을 꾸며 이곳에서 새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있다.

    한국의 농부들은 연해주가 ‘통일한국’을 먹여살릴 식량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기업가들은 시베리아 철도와 연계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만주의 조선족은 “가자, 원동(遠東·연해주의 고려인식 표현)으로, 해삼(海蔘·블라디보스토크의 고려인식 표현)으로”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프리모리 드림’의 반대편에선 수많은 코리안들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주간동아’는 연해주에 일고 있는 ‘코리안 러시’의 명암을 현지 취재했다.

    조선족 대규모 이주… 코리안 수십만 거주 추정

    8월18일 우수리스크시 한 공연장에서 ‘평양예술단’의 공연이 열렸다. 자리를 꽉 메운 ‘다국적’ 코리안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이 터져나왔다. 이날의 평양예술단 공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프리모리 방문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로, 이곳에서 일고 있는 ‘코리안 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프리모리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된 고려인 수는 3만63명이다(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97년 조사). 그러나 우수리스크 사범대를 졸업한 고려인 김샤샤씨(23)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이 알려진 것보다 많아 최소 8만명 이상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3년째 우수리스크 사범대 한국어강사로 있는 김승력씨(33·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연해주 담당)는 “프리모리에는 조선족이 고려인보다 훨씬 더 많다. 이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씨에 따르면 여기에 북한인과 남한인을 합할 경우 프리모리 거주 전체 코리안의 숫자는 그동안 한국언론에 알려진 3만명 내외를 뛰어넘어 수십만명에 이른다는 것. 총인구가 220만에 불과한 프리모리에서 코리안의 비중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프리모리에 들어온 코리안들은 성공적으로 현지에 정착하고 있을까. 연해주 아리랑농장의 조선족 김듄옥씨는 “우리는 만주벌판의 잡초와 같다”고 말했다. “수십만명의 조선족이 국경을 넘어 물밀듯 밀려왔다가 빈털터리가 돼 돌아가는가 하면, 그만큼의 수가 다시 밀려와 돈을 벌어간다.” 한농복구회 이정식 국장에 따르면 프리모리에서 조선족의 대량 이주는 ‘기정 사실화’된 ‘사회현상’이 됐다.

    스파스크의 대농장 경영인인 이병욱씨는 “한국언론에 의해 세 가지 중요한 현지사정이 왜곡됐다”는 다소 뜻밖의 얘기를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고려인 정착촌은 낙후된 마을인 것처럼, 한국 업체는 현지적응을 잘하는 선진화된 기업인 것처럼, 한민족 공동체 구성은 무조건 좋은 것처럼 비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농업전문학교의 프리모리 연수생 정동용씨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고려인 정착촌인 ‘체르니콥스크’(93년 건설)와 ‘크레모어’(98년 건설)를 비교했다. 체르니콥스크 농장은 올해 수박 양배추를 재배해 고려인 1인당 500만원을 벌었다. 교사 연봉이 50여만원인 연해주에선 엄청난 고소득이다. 이 농장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을 고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 고려인 ‘에릭’은 “남한에서 방문객이 오면 개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군수 등 지역 유력 인사들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체르니콥스크의 고려인들은 이주 8년 만에 프리모리의 ‘최상류사회’에 편입된 것이다.

    크레모어는 ‘연해주고려인재활기금’의 지원을 받는 6개 정착촌 중 하나다. 30년 만에 닥친 폭우로 농사가 엉망이 돼 절대빈곤의 상태에 빠졌다. 기금 지원을 받고 있는 다른 정착촌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고려인 정착촌이면서 왜 이렇게 결과가 달라졌을까.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전에 온 고려인들은 자본이 있었다. 좋은 땅, 좋은 비료, 좋은 품종을 얻어 시작했다. 반면 후발 고려인들은 빈손으로 왔다. 하는 수 없이 중앙아시아에서 해오던 농사를 여기서도 똑같이 했다.”(크레모어 주민 리그레고리) 정동용씨는 “고려인 정착촌에 대해 너무 감상적으로 접근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한 고려인 정착촌을 먼저 연구한 뒤 이를 토대로 후발 정착촌에 ‘자립할 수 있는 수단’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프리모리에 진출한 한국기업, 그중 농업분야 업체들도 지금껏 국내에 알려진 바와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은 “3, 4년 뒤면 프리모리 진출은 ‘대실패’로 끝나 모두 퇴출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8월27일 프리모리 남부지방의 2000ha 규모 한국 단독법인 농장. 지난해 수확한 콩이 창고 속에 꽉차 있었다. 판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엔 밀 보리를 재배했는데 폭우로 작황이 예년의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농장관리를 맡은 김범헌 팀장은 “프리모리의 16개 한국계 대형 농장이 모두 비슷한 사정”이라고 말했다. 한 업체는 10억원을 투자해 방대한 땅을 농지로 만들어 놨으나 막상 심을 작물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업체들이 현지사정을 너무 모르고 뛰어들었기 때문. 러시아는 밀과 육류 등 식품의 84%를 원조 등의 형식으로 서방세계에 의존하고 있어 수출금지 농산물이 많다는 점, 프리모리 220만 인구의 자체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 그나마 중국산 농산물에 많이 잠식돼 있다는 점, 국내 업체는 현지 농산물 유통사정에 어둡다는 점, WTO에 가입돼 있지 않아 유통망이 더욱 좁아진다는 점, 현지인을 내세운 합작투자 형태는 사기당할 위험이 크다는 점, 그렇다고 외국 단독법인으로 사업하면 수익의 무려 60%가 각종 세금으로 나간다는 점 등 막상 사업을 해보니 부딪히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리랑농장의 조선족 남정로 사장은 그 해법으로 자본은 남한인이, 법적 문제는 고려인이, 농장관리와 판매는 조선족이, 노동은 북한인이 맡는 ‘한민족 협업방식’을 제안한다. 실제로 아리랑농장에선 조선족이 농사와 경영을, 고려인이 대외문제를 맡아 올해 10만 달러의 순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지나친 ‘민족주의’는 오히려 현지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A농장은 노동자를 전원 러시아인으로 뒀다. 기존 러시아농부들이 부근 고려인 마을과 사이가 좋지 않자 고려인 채용계획을 탄력적으로 연기한 것이다. 8월30일 이 농장을 찾은 기자에게 러시아인 농장장(58)은 돼지고기와 보드카를 대접했다. 그는 “유즈늬까레이쯔(남한인)는 함께 일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B농장은 노동자 전원을 고려인으로 채용하고 고려인 전용마을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B농장은 관할군청이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바람에 건축허가를 받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농장 관계자는 “같은 러시아인인데 왜 고려인만 도와주느냐고 러시아인들이 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그는 코리안의 진출이 타민족에게 배타적인 일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프리모리엔 무역 제조 호텔 여행 식당 운송 통신 건설업종 등에 걸쳐 36개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블라디보스토크무역관 김성수 과장은 “한국 봉제업이 미국수출 쿼터 적용을 안 받는 프리모리에 최근 진출하면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지사정에 맞게 들어와 성공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시베리아 철도와의 연계문제도 섣부른 기대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KOTRA측은 설명한다. “한반도와 철도로 연결되면 프리모리의 항구들이 침체기에 빠질 수 있다. 북한정보 수집창구로서의 프리모리의 가치도 떨어질 것이다.”(김성수 과장)

    프리모리의 코리안들에게도 차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농장주들은 요즘 북한에 곡물을 보내는 길을 열어달라고 연해주 정부에 로비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국에서 진출한 12개 봉제업체들은 상호 인력 빼가기 자제, 애로사항 해결에 공동 노력하기로 신사협약을 체결했다.

    8월29일 기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국경도시 ‘핫산’에 도착했다. 키보다 높은 수풀을 헤치고 언덕에 오르자 한반도의 경원선이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되는 ‘두만강철교’가 보였다. 기차 한 대 다니지 않는 황량한 종착역과 위태롭게 서 있는 철교는 연해주가 아직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곳임을 상징하는 듯했다.

    ‘항카 & 코리아’ 이영일 전무는 “프리모리에 대한 ‘장밋빛 스케치’는 이제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연해주에서 벌어지는 코리안들의 ‘생존게임’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것은 한반도가 대륙으로 연결되는 ‘한반도 시대’의 가능성이 치열하게 모색되는 ‘최일선’의 현장입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