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6월25일 찬반 투표를 거쳐 폐업 철회를 결정함으로써 의사들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의료대란도 일단 ‘휴전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대부분의 난제들은 아직 적절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7월 중 약사법 개정으로 인해 또 한차례의 ‘대란’이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6월24일 있은 김대중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전격적인 청와대 ‘의약회담’에선 7월 임시국회 회기 중 약사법 개정만 약속했을 뿐 개정의 방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의약분업이 시행됐어도 이들 양측의 불신은 살얼음판의 휴전을 금새라도 깰 수 있는 ‘화약고’로 작용하고 있다.
의사들은 약사회와의 협상 여지를 배제시킨 채 “약사법 개정이 자신들의 요구에 못 미칠 경우 또 한번의 의료대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약사들 또한 “약사법 개정 자체가 의약분업 합의의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강행된 의료계 폐업 ‘7일 전쟁’이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의료대란 기간 보건복지부와 의사회의 극한 대립을 지켜본 국민은 의약분업의 최대 장애물이 약사법 개정을 둘러싼 문구의 첨삭 문제가 아니라 이들 서로간의 ‘해묵은 불신’임을 확인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앞에서 가운을 벗어 던졌던 의사들에겐 아직 보건복지부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가득하고,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며 낙담하고 있다. 결국 이번 의료대란은 정부와 의사회, 약사회 이 3자에 치유하기 어려운 불신의 상처를 또 한번 깊이 남겼다고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회 사이 불신의 역사는 지난해 5월10일 의약분업안 합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합의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분란의 싹은 이미 정부, 시민단체, 의사회, 약사회간에 이루어진 의약분업안 4자 합의 자체에서 잉태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임의조제, 대체조제 금지에 대한 대원칙만 서둘러 합의하고 각론을 명확하게 규정짓지 못한 채 애매모호하게 사인한 합의안 자체가 문제였던 것.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금지는 ‘진료권 확보’의 핵심이자 이번 의료대란에서 의사들이 말하는 ‘자존심’의 보루다.
의약분업안 합의 이후인 지난해 9월 의사회는 복지부가 약사에 의한 일반의약품의 PTP(눌러 빼먹는 약), 포일(찢어서 먹는 약) 포장약의 낱알 판매를 인정하려 하자 발끈하고 나섰다. 이는 명백하게 임의조제(혼합판매)를 인정하는 것이고 ‘5·10 합의’의 임의조제, 대체조제 근절이라는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5·10 합의’ 당시 대한의협 회장이었던 유성희씨는 “합의 때는 일반 의약품의 낱알 단위 판매를 인정한다는 조항은 없었고, 다만 원칙적인 4개안에 합의했을 따름이다. 약사법 개정을 위한 실무 회담이 진행되자 임의조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고, 의사회는 합의안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의사회 내부에서는 보건복지부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고, 분업안 합의는 의사회에 의해서 파기됐다(99년 9월). 그러나 의사들의 반대에도 불구, 복지부는 올 1월 혼합판매를 인정한 약사법 39조 2항을 국회에 상정했고 보건복지위 의원들은 격론 끝에 이를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의사회의 대정부 투쟁은 진료비와 처방료 인상을 위한 의보재정 확보 투쟁에서 진료권 확보 투쟁으로 급선회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뒤 ‘분업하려면 똑바로 하자’는 것으로 투쟁의 근거를 바꾸었던 것. 의사회는 의-약이 완벽하게 분리된 미국식 의약분업의 예를 들며 임의조제, 대체조제를 근절하지 않는 한 의약분업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의사회의 이런 움직임은 개인 의원의 수입보전 차원을 벗어나 의약분업의 본질 문제로 인정받았으며, 전공의와 의대교수 등 전체 의사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었다. ‘올바른 의약분업’을 하자는 의사회의 주장에 보건복지부는 대응논리를 찾지 못했다. “합의를 파기한 쪽은 의사회였으니까 모든 책임은 의사회가 져야 한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지난해 ‘5·10 합의’와 관련해 경실련 이윤경간사는 “국민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조치였지 어떤 한 집단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임의조제를 근절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도무지 믿지 않았다. 더 이상의 대안은 없고,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의 3월 상경투쟁과 4월 파업, 6월 의료대란을 거치면서 수도 없이 말을 바꿔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 “의약분업으로 당장 환자의 추가 부담은 없다”에서 “당장의 추가부담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으로, “주사제도 약품의 한 종류로 절대 제외시킬 수 없다”에서 “국민의 불편을 고려해 분업 대상에서 제외키로…”, “지역 의료보험의 재정 50% 지원 약속”에서 “점차적으로 재정 형편을 봐가며…” 등등 말 바꾸기의 예는 많다.
국회 보건복지위 심재철의원은 “올 1월 약사법 개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 더욱 큰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관료적 발상에 젖어 소신과 책임을 다해 의사회와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이라고 지적한다. 심의원은 “복지부는 ‘파업기간 의협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전화를 했더니 연결이 안돼서 못 갔다’고 답변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6월25일 폐업 철회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가진 신상진 의쟁투위원장이 “정부가 약사법 개정 약속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키지 않거나 변형되면, 강경하게 투쟁하거나 조직을 발휘할 것임을 밝혀둔다”며 또 한 차례의 대란 여지를 남겨둔 것만 봐도 의사협의 대정부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김유호 공동대표도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는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환경 개선이며, 이를 위해 의약계와 정부간 형성된 불신을 허무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부의 관료주의적 고자세가 이번 의료대란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런 이유들이 의사협의 대정부 강경방침을 불러일으켰다면 국민으로서는 정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더 내놓도록 해야만 한다. 당장 연 3조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국민 사이에 깊이 새겨진 불신의 상처는 과연 누가 치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7월 중 약사법 개정으로 인해 또 한차례의 ‘대란’이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6월24일 있은 김대중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전격적인 청와대 ‘의약회담’에선 7월 임시국회 회기 중 약사법 개정만 약속했을 뿐 개정의 방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의약분업이 시행됐어도 이들 양측의 불신은 살얼음판의 휴전을 금새라도 깰 수 있는 ‘화약고’로 작용하고 있다.
의사들은 약사회와의 협상 여지를 배제시킨 채 “약사법 개정이 자신들의 요구에 못 미칠 경우 또 한번의 의료대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약사들 또한 “약사법 개정 자체가 의약분업 합의의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강행된 의료계 폐업 ‘7일 전쟁’이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의료대란 기간 보건복지부와 의사회의 극한 대립을 지켜본 국민은 의약분업의 최대 장애물이 약사법 개정을 둘러싼 문구의 첨삭 문제가 아니라 이들 서로간의 ‘해묵은 불신’임을 확인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앞에서 가운을 벗어 던졌던 의사들에겐 아직 보건복지부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가득하고,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며 낙담하고 있다. 결국 이번 의료대란은 정부와 의사회, 약사회 이 3자에 치유하기 어려운 불신의 상처를 또 한번 깊이 남겼다고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회 사이 불신의 역사는 지난해 5월10일 의약분업안 합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합의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분란의 싹은 이미 정부, 시민단체, 의사회, 약사회간에 이루어진 의약분업안 4자 합의 자체에서 잉태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임의조제, 대체조제 금지에 대한 대원칙만 서둘러 합의하고 각론을 명확하게 규정짓지 못한 채 애매모호하게 사인한 합의안 자체가 문제였던 것.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금지는 ‘진료권 확보’의 핵심이자 이번 의료대란에서 의사들이 말하는 ‘자존심’의 보루다.
의약분업안 합의 이후인 지난해 9월 의사회는 복지부가 약사에 의한 일반의약품의 PTP(눌러 빼먹는 약), 포일(찢어서 먹는 약) 포장약의 낱알 판매를 인정하려 하자 발끈하고 나섰다. 이는 명백하게 임의조제(혼합판매)를 인정하는 것이고 ‘5·10 합의’의 임의조제, 대체조제 근절이라는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5·10 합의’ 당시 대한의협 회장이었던 유성희씨는 “합의 때는 일반 의약품의 낱알 단위 판매를 인정한다는 조항은 없었고, 다만 원칙적인 4개안에 합의했을 따름이다. 약사법 개정을 위한 실무 회담이 진행되자 임의조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고, 의사회는 합의안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의사회 내부에서는 보건복지부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고, 분업안 합의는 의사회에 의해서 파기됐다(99년 9월). 그러나 의사들의 반대에도 불구, 복지부는 올 1월 혼합판매를 인정한 약사법 39조 2항을 국회에 상정했고 보건복지위 의원들은 격론 끝에 이를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의사회의 대정부 투쟁은 진료비와 처방료 인상을 위한 의보재정 확보 투쟁에서 진료권 확보 투쟁으로 급선회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뒤 ‘분업하려면 똑바로 하자’는 것으로 투쟁의 근거를 바꾸었던 것. 의사회는 의-약이 완벽하게 분리된 미국식 의약분업의 예를 들며 임의조제, 대체조제를 근절하지 않는 한 의약분업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의사회의 이런 움직임은 개인 의원의 수입보전 차원을 벗어나 의약분업의 본질 문제로 인정받았으며, 전공의와 의대교수 등 전체 의사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었다. ‘올바른 의약분업’을 하자는 의사회의 주장에 보건복지부는 대응논리를 찾지 못했다. “합의를 파기한 쪽은 의사회였으니까 모든 책임은 의사회가 져야 한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지난해 ‘5·10 합의’와 관련해 경실련 이윤경간사는 “국민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조치였지 어떤 한 집단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임의조제를 근절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도무지 믿지 않았다. 더 이상의 대안은 없고,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의 3월 상경투쟁과 4월 파업, 6월 의료대란을 거치면서 수도 없이 말을 바꿔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 “의약분업으로 당장 환자의 추가 부담은 없다”에서 “당장의 추가부담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으로, “주사제도 약품의 한 종류로 절대 제외시킬 수 없다”에서 “국민의 불편을 고려해 분업 대상에서 제외키로…”, “지역 의료보험의 재정 50% 지원 약속”에서 “점차적으로 재정 형편을 봐가며…” 등등 말 바꾸기의 예는 많다.
국회 보건복지위 심재철의원은 “올 1월 약사법 개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 더욱 큰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관료적 발상에 젖어 소신과 책임을 다해 의사회와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이라고 지적한다. 심의원은 “복지부는 ‘파업기간 의협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전화를 했더니 연결이 안돼서 못 갔다’고 답변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6월25일 폐업 철회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가진 신상진 의쟁투위원장이 “정부가 약사법 개정 약속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키지 않거나 변형되면, 강경하게 투쟁하거나 조직을 발휘할 것임을 밝혀둔다”며 또 한 차례의 대란 여지를 남겨둔 것만 봐도 의사협의 대정부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김유호 공동대표도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는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환경 개선이며, 이를 위해 의약계와 정부간 형성된 불신을 허무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부의 관료주의적 고자세가 이번 의료대란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런 이유들이 의사협의 대정부 강경방침을 불러일으켰다면 국민으로서는 정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더 내놓도록 해야만 한다. 당장 연 3조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국민 사이에 깊이 새겨진 불신의 상처는 과연 누가 치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