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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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 집사’ 장학로가 움직인다

일주일에 4일 정도 ‘민산’ 사무실 출근…특유의 친화력으로 조직 재건에 ‘윤활유’ 역할

  • 입력2005-12-26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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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동 집사’ 장학로가 움직인다
    민주산악회(약칭 민산·회장 오경의 전마사회장)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여의도 금영빌딩 10층. 30평 규모의 사무실은 오후가 되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학로 전청와대 제1부속실장.

    장학로씨는 15대 총선을 앞둔 96년 3월, 정가를 뒤흔들어 놓은 ‘장학로 수뢰사건’ 당사자다. 장씨는 이 사건으로 96년 9월 징역 4년형 확정→ 96년 11월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 98년 3월13일 김대중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형집행면제조치 등의 길을 걸었다. 자유의 몸이 된 뒤에는 지병을 치료하며 목동 자택에서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그가 민산 재건을 계기로 활동을 재개했다. 장 전실장은 요즘 일주일에 4일 가량 민산 사무실에 얼굴을 비친다. 가장 열심히 나온다는 오경의회장과 비슷한 출석률이다. 현재 장씨가 민산과 관련해 갖고 있는 직함은 없다. 그러나 20여 명의 운영위원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다. 민산 이문배총무는 “민산이 상도동 사람들의 친목조직 성격이 강해 장 전실장이 자주 얼굴을 보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연말 ‘얼굴이나 보자’며 합류

    장씨가 여의도 사무실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연말쯤부터. ‘상도동 사람’들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산동지회(99년 4월 결성·초대회장 김용각 전마사회 부회장) 2대 회장에 오경의씨가 취임(99년 11월)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오회장이 적극적으로 상도동 사람들을 엮어내자 사람이 그리웠던 장씨도 “얼굴이나 보자”며 합류했다는 것. 오후 2시쯤 민산 사무실에 나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오후 6시쯤 돌아가는 것이 그의 일과다. 기분이 내키면 회원들과 술자리를 함께할 때도 있다.



    다 아는 대로 민산은 1981년 6월 발족했다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을 탄생시킨 뒤 해체된 ‘상도동 사조직’이다. 상도동계 인사들은 지난해 4월 민산 대신 도산동지회를 만들면서 상도동세력을 서서히 재조직화해 왔다. 그러다가 오경의씨가 도산동지회를 맡으면서 민산 재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원들 사이에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 등을 위해 원래 이름으로 돌아가자”는 여론이 일었던 것. 오회장은 지난 5월15일 상도동을 방문, “민산을 재건해 보라”는 YS의 지시를 받고 이틀 뒤인 5월17일 북한산에서 총회를 열어 이름을 다시 ‘민주산악회’로 바꿨다.

    민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민산이 순수한 친목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YS가 공공연히 “다음 대선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결집력이 어떤 식으로든 특정 후보에게 몰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정치조직화할 수 있는 것이 이 모임의 특성이다.

    한때 200만 회원을 자랑했던 민산은 현재 2000여 명 정도의 본부 회원으로 꾸려가고 있는 상태. 아직 결성된 지부는 없으나 올 연말까지 지부를 결성하고 50만명의 회원을 확보, 전국조직을 만들 예정이다. 특히 변호사나 벤처사업가 등 전문가 집단에 대한 영입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 1월부터 한달에 두 번씩 꼬박 산행도 하고 있다. 산행에는 적게는 200여 명에서 많게는 500여 명씩 참석한다. 7월부터는 자체 소식지도 발간할 계획이다.

    장씨가 민산 결속 작업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가 이른바 ‘상도동 집사’로 상도동과 관련된 사람은 모르는 이가 없는 ‘마당발’이라는 점이다. 장씨가 김영삼 전대통령(YS)을 처음 만난 것은 1971년, 중앙대 3학년 때다. 군에서 제대한 뒤 77년 상도동 비서로 들어간 그는 이후 20여 년간 상도동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5공 초기 김 전대통령이 가택연금을 당할 때는 주민등록까지 상도동으로 옮길 정도였다. 상도동을 드나들던 사람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제일 나중에 배웅한 사람이 장씨였다.

    민산 회원들 사이의 친목을 다지는 데는 사실 장씨 같은 인물이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중평이다. 장씨 특유의 친화력이 한몫을 한다는 것. 그는 매우 성실하고 붙임성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민산의 한 관계자는 “소외감을 느끼는 회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장 전실장이 적합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뢰사건으로 문민정부의 도덕성에 먹칠을 했던 장씨가 YS와 관계 회복을 했는지도 관심사다. 민산 한 관계자는 “원만해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YS의 한 측근 인사도 “장씨가 돈을 받은 것은 집권한 다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선거 때였다”면서 “선거 자금으로 쓰고 남은 돈이었다는 사실을 김 전대통령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목동아파트에 살고 있는 장씨는 지병인 근육소실증 때문에 한방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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