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마후라 여주인공 말이에요.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한번 그런 데로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법이죠.”
5월25일 서울 신촌에서 여의도로 가는 택시 안. 쭛쭛택시 소속 정모 기사는 기자에게 남고생과 여중생의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담긴 ‘빨간마후라’ 비디오 여주인공이 윤락녀로 전락한 과정을 마치 수사경찰이나 된 것처럼 설명했다.
“그 비디오를 찍은 뒤 여자주인공은 남자를 만나 강원도 철원에서 같이 살게 됐습니다. 그러나 돈 벌기 위해 서울로 와서 윤락녀가 된 거죠. 접대부로 일하다가 포주 잘못 만나서 당한 거구요. 택시 영업하다 보면 그런 애들 많이 봐요.”
9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빨간마후라가 다시 돌아왔다. 정씨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주인공 최양(82년 생)의 일대기를 술술 꿰고 있다. 잘못 알려진 부분도 더러 있지만 사람들은 “빨간마후라 여주인공이 결국 윤락녀가 됐다”는 사실에 우선 주목한다. 온 국민이 지금 그녀를 향해 혀를 ‘끌끌’ 차거나, 혹은 ‘따지고 보면 안됐다’며 동정을 보내고 있다. 최양의 일은 문란한 10대의 성문화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녀는 17세의 미성년자에다 피해자 신분이다. 그럼에도 보호받아야 될 사적인 비밀들이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전국적으로 낱낱이 공개돼 버렸다.
5월19일. 이 날은 최양에겐 악몽 그 자체였다. 이 날 언론은 일제히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 윤락녀 전락하다”라는 보도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얘기가 보도된다는 사실을 하루 전 경찰서측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TV도 끄고 신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최양은 매우 우연한 기회로 수사기관에 포착됐다. 그후 그녀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엔 관심도 없었다. 그녀를 벌벌 떨게 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매스컴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쳤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러한 그녀의 노력은 한편으론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빨간마후라 비디오 사건이 있은 뒤 최양은 소년원에서 4개월간 있다가 한 남자를 만나 강원도 철원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 남자는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 그 남자가 서울에 직장을 구하자 최양도 서울로 왔다. 그녀의 불행은 지난 3월2일 친구 A양(17)과 함께 서울 서초동 K 단란주점에 종업원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5월4일 오후 9시 ‘K 단란주점 지배인이 마약을 복용한다’는 제보를 받은 경찰이 주점에 들이닥쳤다. 이때 최양은 이 가게에서 운영하는 승합차에서 막 내리려 하고 있었다. 최양도 결국 단란주점 관계자들과 휩쓸려 경찰서로 가게 됐다. 지배인은 경찰서에서 실시된 대마에 대한 시약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그에겐 대마관리법위반 혐의가 주어졌다. 그러나 수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서울지역 모든 경찰서는 미성년자 매춘행위에 대한 일제 기획수사를 하던 중이었다. 어려 보이는 최양으로 경찰의 추궁이 옮겨졌다. 더구나 이 주점은 간판도 걸지 않은 채 ‘삐끼’로 호객행위를 하며 무허가영업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경찰의 신원조회에서 최양은 주민등록번호를 거짓으로 댔다가 더욱 곤경에 빠졌다. 최양과 A양은 결국 자신들이 이 단란주점에 고용된 종업원이라고 털어놨다. 지배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7회에 걸쳐 손님들과 윤락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최양과 A양이 업주의 집에 사실상 감금당한 상태로 있었으며 화대는 모두 갈취당하고 있었다. 위조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준다는 명목으로 50만원을 빼앗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노예매춘’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최양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가족과, 2년여 동안 동거하고 있던 남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녀는 “미성년인 나를 가족이 아닌 오빠(동거남)에게 인계시켜 달라. 술집에서 당했던 일은 절대로 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경찰에 당부했다. 그녀는 부탁을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신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까지 경찰에 얘기해 줬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담당 수사관 부인의 배려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최양은 경찰서에서 나갈 수 있었다. 가족과 남자친구는 아무도 지난 일을 몰랐다. 일은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수사가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고 말았다. 이 경찰서 관계자는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봤다. “경찰은 최양에게 ‘피해내용을 부모에게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또한 성적인 피해를 본 미성년 여성의 신분은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언론도 이를 수긍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보도되고 말았다. 최양에게 안타깝고 미안하다.”
최양의 어머니 Y씨는 18일 딸이 이번엔 윤락녀가 됐다는 보도가 나간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기절했다고 한다.
며칠 뒤 최양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땐 자신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상태. 최양의 조사과정에 많은 사람들의 흥미가 쏠렸다고 한 수사관계자는 전했다. 최양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 때문에 조사받는 내내 울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기자는 5월22부터 26일까지 5일에 걸쳐 최양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최양은 보도 후 휴대폰을 정지시키고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있었다. 최양의 어머니 Y씨와는 수차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Y씨는 “딸이 지금 너무 큰 충격에 빠져 있어서 기자를 만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5월24일 밤 기자는 최양이 머물고 있는 서울의 부모 집을 방문했다. 최양의 집은 5층으로 된 15평 규모 아파트의 4층에 있었다. Y씨와 얘기를 나누던 도중 방안에서 마루로 최양이 뛰쳐나왔다. 최양은 큰 키에 예쁜 얼굴이었지만 피로와 불안감이 역력했다. 최양은 손을 휘저으며 “인터뷰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언론에 상당한 반감을 드러내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아래 위층의 주민들까지 나와서 구경했다. 최양의 아파트 주민들은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주인공인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도 최양은 ‘될 대로 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대 기자가 오히려 그녀를 말려야 했다. 이날 최양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여서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인터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다음날부터 최양과의 연락이 끊겼다. 대신 어머니 Y씨로부터 이 사건에 관한 최양측의 입장에 대해 들었다.
Y씨는 “다른 애들 많지 않으냐. 그런데 왜 우리 애만 갖고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최양이 이번엔 마치 ‘10대 소녀가 윤락녀로 되어 가는 전형’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빨간마후라 사건이 터진 지난 97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일을 겪으면서 Y씨 역시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딸이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그 벌을 받고 있는 거다. 그건 인정한다. 그러나 그 벌이 너무 가혹하다. 이제 남들이 내 딸에 대해 뭐라고 하든 상관 안한다. 내 딸의 인생은 끝났다.”
전문가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할 가치가 있는 담론일지라도 미성년자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다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세심한 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김정기교수).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소장은 “최양의 인권은 우리 사회의 ‘선정주의’에 의해 두 번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최소장의 얘기. “최양은 성폭력피해를 당한 미성년자다. 사생활은 당연히 보호돼야 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는 것은 그녀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돼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 신원과 피해내용, 사생활이 너무 상세히 세상에 알려졌다.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 최모양’이라고 하면 그게 익명처리가 된 것이냐. 주변사람과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별칭은 오히려 실명보다 더 크게 당사자의 명예와 인권을 손상시킬 수 있다.”
최양이 한때 빨간마후라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공개될 가치가 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최소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3년 전 그 비디오에 출연했던 것과 지금 어른들이 휘두른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것과는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 여성단체들은 악덕포주에 의해 노예매춘을 강요당한 다른 미성년 여성들 중 최양을 제외하곤 아무도 신원이나 시시콜콜한 과거사가 공개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최양은 빨간마후라 비디오 촬영 전 성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소장은 “그러나 그때 우리 사회는 최양을 그저 ‘방탕한 15세 소녀’로 몰고 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번에 빨간마후라 여주인공을 드러내 놓고 ‘동정’하는 이면에도 ‘가십거리 찾기’식 ‘선정주의’가 엿보인다. 최양을 돕는 것인가, 희생시키는 것인가.”(최소장)
5월25일 서울 신촌에서 여의도로 가는 택시 안. 쭛쭛택시 소속 정모 기사는 기자에게 남고생과 여중생의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담긴 ‘빨간마후라’ 비디오 여주인공이 윤락녀로 전락한 과정을 마치 수사경찰이나 된 것처럼 설명했다.
“그 비디오를 찍은 뒤 여자주인공은 남자를 만나 강원도 철원에서 같이 살게 됐습니다. 그러나 돈 벌기 위해 서울로 와서 윤락녀가 된 거죠. 접대부로 일하다가 포주 잘못 만나서 당한 거구요. 택시 영업하다 보면 그런 애들 많이 봐요.”
9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빨간마후라가 다시 돌아왔다. 정씨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주인공 최양(82년 생)의 일대기를 술술 꿰고 있다. 잘못 알려진 부분도 더러 있지만 사람들은 “빨간마후라 여주인공이 결국 윤락녀가 됐다”는 사실에 우선 주목한다. 온 국민이 지금 그녀를 향해 혀를 ‘끌끌’ 차거나, 혹은 ‘따지고 보면 안됐다’며 동정을 보내고 있다. 최양의 일은 문란한 10대의 성문화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녀는 17세의 미성년자에다 피해자 신분이다. 그럼에도 보호받아야 될 사적인 비밀들이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전국적으로 낱낱이 공개돼 버렸다.
5월19일. 이 날은 최양에겐 악몽 그 자체였다. 이 날 언론은 일제히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 윤락녀 전락하다”라는 보도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얘기가 보도된다는 사실을 하루 전 경찰서측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TV도 끄고 신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최양은 매우 우연한 기회로 수사기관에 포착됐다. 그후 그녀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엔 관심도 없었다. 그녀를 벌벌 떨게 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매스컴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쳤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러한 그녀의 노력은 한편으론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빨간마후라 비디오 사건이 있은 뒤 최양은 소년원에서 4개월간 있다가 한 남자를 만나 강원도 철원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 남자는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 그 남자가 서울에 직장을 구하자 최양도 서울로 왔다. 그녀의 불행은 지난 3월2일 친구 A양(17)과 함께 서울 서초동 K 단란주점에 종업원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5월4일 오후 9시 ‘K 단란주점 지배인이 마약을 복용한다’는 제보를 받은 경찰이 주점에 들이닥쳤다. 이때 최양은 이 가게에서 운영하는 승합차에서 막 내리려 하고 있었다. 최양도 결국 단란주점 관계자들과 휩쓸려 경찰서로 가게 됐다. 지배인은 경찰서에서 실시된 대마에 대한 시약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그에겐 대마관리법위반 혐의가 주어졌다. 그러나 수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서울지역 모든 경찰서는 미성년자 매춘행위에 대한 일제 기획수사를 하던 중이었다. 어려 보이는 최양으로 경찰의 추궁이 옮겨졌다. 더구나 이 주점은 간판도 걸지 않은 채 ‘삐끼’로 호객행위를 하며 무허가영업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경찰의 신원조회에서 최양은 주민등록번호를 거짓으로 댔다가 더욱 곤경에 빠졌다. 최양과 A양은 결국 자신들이 이 단란주점에 고용된 종업원이라고 털어놨다. 지배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7회에 걸쳐 손님들과 윤락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최양과 A양이 업주의 집에 사실상 감금당한 상태로 있었으며 화대는 모두 갈취당하고 있었다. 위조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준다는 명목으로 50만원을 빼앗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노예매춘’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최양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가족과, 2년여 동안 동거하고 있던 남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녀는 “미성년인 나를 가족이 아닌 오빠(동거남)에게 인계시켜 달라. 술집에서 당했던 일은 절대로 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경찰에 당부했다. 그녀는 부탁을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신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까지 경찰에 얘기해 줬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담당 수사관 부인의 배려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최양은 경찰서에서 나갈 수 있었다. 가족과 남자친구는 아무도 지난 일을 몰랐다. 일은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수사가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고 말았다. 이 경찰서 관계자는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봤다. “경찰은 최양에게 ‘피해내용을 부모에게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또한 성적인 피해를 본 미성년 여성의 신분은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언론도 이를 수긍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보도되고 말았다. 최양에게 안타깝고 미안하다.”
최양의 어머니 Y씨는 18일 딸이 이번엔 윤락녀가 됐다는 보도가 나간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기절했다고 한다.
며칠 뒤 최양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땐 자신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상태. 최양의 조사과정에 많은 사람들의 흥미가 쏠렸다고 한 수사관계자는 전했다. 최양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 때문에 조사받는 내내 울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기자는 5월22부터 26일까지 5일에 걸쳐 최양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최양은 보도 후 휴대폰을 정지시키고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있었다. 최양의 어머니 Y씨와는 수차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Y씨는 “딸이 지금 너무 큰 충격에 빠져 있어서 기자를 만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5월24일 밤 기자는 최양이 머물고 있는 서울의 부모 집을 방문했다. 최양의 집은 5층으로 된 15평 규모 아파트의 4층에 있었다. Y씨와 얘기를 나누던 도중 방안에서 마루로 최양이 뛰쳐나왔다. 최양은 큰 키에 예쁜 얼굴이었지만 피로와 불안감이 역력했다. 최양은 손을 휘저으며 “인터뷰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언론에 상당한 반감을 드러내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아래 위층의 주민들까지 나와서 구경했다. 최양의 아파트 주민들은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주인공인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도 최양은 ‘될 대로 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대 기자가 오히려 그녀를 말려야 했다. 이날 최양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여서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인터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다음날부터 최양과의 연락이 끊겼다. 대신 어머니 Y씨로부터 이 사건에 관한 최양측의 입장에 대해 들었다.
Y씨는 “다른 애들 많지 않으냐. 그런데 왜 우리 애만 갖고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최양이 이번엔 마치 ‘10대 소녀가 윤락녀로 되어 가는 전형’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빨간마후라 사건이 터진 지난 97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일을 겪으면서 Y씨 역시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딸이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그 벌을 받고 있는 거다. 그건 인정한다. 그러나 그 벌이 너무 가혹하다. 이제 남들이 내 딸에 대해 뭐라고 하든 상관 안한다. 내 딸의 인생은 끝났다.”
전문가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할 가치가 있는 담론일지라도 미성년자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다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세심한 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김정기교수).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소장은 “최양의 인권은 우리 사회의 ‘선정주의’에 의해 두 번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최소장의 얘기. “최양은 성폭력피해를 당한 미성년자다. 사생활은 당연히 보호돼야 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는 것은 그녀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돼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 신원과 피해내용, 사생활이 너무 상세히 세상에 알려졌다.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 최모양’이라고 하면 그게 익명처리가 된 것이냐. 주변사람과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별칭은 오히려 실명보다 더 크게 당사자의 명예와 인권을 손상시킬 수 있다.”
최양이 한때 빨간마후라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공개될 가치가 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최소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3년 전 그 비디오에 출연했던 것과 지금 어른들이 휘두른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것과는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 여성단체들은 악덕포주에 의해 노예매춘을 강요당한 다른 미성년 여성들 중 최양을 제외하곤 아무도 신원이나 시시콜콜한 과거사가 공개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최양은 빨간마후라 비디오 촬영 전 성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소장은 “그러나 그때 우리 사회는 최양을 그저 ‘방탕한 15세 소녀’로 몰고 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번에 빨간마후라 여주인공을 드러내 놓고 ‘동정’하는 이면에도 ‘가십거리 찾기’식 ‘선정주의’가 엿보인다. 최양을 돕는 것인가, 희생시키는 것인가.”(최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