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이후 여야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간의 영수회담이 끝난 뒤 두 당 사이에는 훈풍이 감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곳에서 훈풍이 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세력에 대한 여권의 자세는 정치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여권이 총선 결과 분석을 토대로 이들 기득권세력에 대해 칼을 빼든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여권 핵심부는 최근 16대 총선 결과에 대한 정밀 분석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결과 계층별로 확연히 갈라선 표심을 확인했다. 부유층은 한나라당, 중산-서민층은 민주당 지지로 투표 양극화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여권핵심의 분석 결과는 향후 여권의 정책기조를 이끌어갈 기본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3년 남겨놓은 김대중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김대통령의 구상은 이런 분석작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핵심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빈부격차에 따른 차별화된 정당지지 성향은 2002년 대선 때도 유사하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우리 당의 대선후보도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선출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특히 수도권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30평형대 이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투표율도 높았다. 일부 언론은 이를 ‘아파트당’이란 용어로 표현했다. 반면 민주당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한나라당 박명환후보와 민주당 김윤태후보가 맞선 서울 마포갑을 보자. 이 곳에서는 아파트가 밀집돼 ‘마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도화 1, 2동에서 쏟아진 몰표가 박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구로을의 경우 민주당 장영신후보가 유일하게 한나라당 이승철후보에게 뒤진 곳은 아파트촌인 구로 1동이었다. 용산에서는 고급 아파트촌인 이촌 1동에서 한나라당 진영 후보가 민주당 설송웅후보를 30% 가까이나 앞섰다.
민주당 기조국 관계자는 “그동안 내세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가 이번 총선을 통해 확실하게 유권자들에게 심어졌다. 따라서 기본 지지기반인 이들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아 지지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 외연을 넓히는 작업들이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총선을 통해 ‘호남당’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면 ‘DJ당’이라는 이미지도 탈색시킬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영남권의 민주당 지지표에 대한 분석작업은 여권 핵심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또다른 중요한 포인트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양회구국장은 “이번 4·13총선에서 우리 당이 영남에서 1만표 이상을 얻은 지역구가 27곳이다. 64개 지역구에 후보를 냈으니 3분의 1이 넘는 곳에서 1만표 이상을 얻었다. 지난 15대 총선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분석에 따르면 15대 총선과 비교한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부산 8.6%, 경남 7.6%, 대구 9.5%, 경북 13.1%가 상승했다고 한다.
민주당 핵심부에서는 이런 분석 뒤에 숨어 있는 영남표의 ‘질’을 분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찍었겠는가. 기득권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우리를 찍었는지, 아니면 서민들이 우리를 찍었는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수도권에서 나타난 것처럼 영남에서도 중산층-서민들이 우리 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아마 안 찍었을 것”이라는 것. 향후 영남권에 대한 여권의 접근태도가 ‘사람’ 위주의 ‘동진정책’에서 ‘정책’을 위주로 한 ‘체감정책’으로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총선을 전후한 시기에 여권 핵심부를 자극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상징인 재계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여권은 새정부 들어 움츠러들었던 재계가 99년 11월 열린 한나라당 후원회를 계기로 몸풀기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권 핵심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총선을 전후한 시기에 아무개 회장이 한나라당에 붙었다더라, 새정부 들어 곤욕을 치른 모그룹이 한나라당을 지원했다더라 등등의 확인할 수 없는 풍문들이 여권 내부에 무성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어떤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후원회 관계자의 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분위기가 확실히 전과 다르다. 97년 대선 이후 완전히 얼어붙었던 재계의 지원은 작년 후원금 모금 행사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98년보다는 99년이, 99년보다는 2000년이 분위기가 더 좋다. 앞으로도 여러 곳에서 후원금을 낼 것으로 본다. 원구성이 완료되면 후원회도 열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일부 재벌그룹은 한나라당에 수억원 이상의 후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좋아진 자금사정을 토대로 3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출하며 사무처 직원들에게 격려금도 지급했다.
야당에 대한 재계의 접근 움직임은 일당 확보에 실패한 여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잖아도 자민련과의 공조가 깨져 정국주도권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현정권에 대한 불만세력과 기득권세력들이 연합작전을 펼쳐 일대 저항전선을 형성한다면 여권으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한 관계자는 “조기 레임덕 없이 국정운영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한 평화 분위기 조성과 함께 기득권세력들의 저항을 조기 제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정세분석전문가도 “기득권세력을 때리면 서민들은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총선 결과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이런 인식은 총선 이후 진행된 일련의 움직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 정가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지난 4월20일 전경련 수뇌부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일동레이크 컨트리클럽에서 오찬회동을 갖고 “구조조정본부의 역할 등 구체적인 문제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미 전날 전경련 고위관계자가 “총선 이후 정국향배와 재벌 정책에 대한 재계의 대응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며 바람을 띄운 뒤 나온 발언이었다.
전경련의 태도는 불과 이틀 전 김대통령이 “올해를 재벌개혁을 완수하는 해로 삼을 것”이라는 발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됐고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4월21일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구조조정본부를 존속시키려면 공표하고 해보라”며 재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24일 국세청은 현대 등 4대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 감찰, 고급차량 구입자에 대한 국세청 통보 등의 조치가 계속 터져나왔다. 고액과외 자금출처 조사, 시가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양도세 관리 철저 등의 조치도 뒤따랐다. 검찰에서는 재벌 2세와 연예인들이 관련된 마약, 매춘에 대해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일련의 조치들이 모두 이른바 ‘기득권 세력’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유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총선 결과에 대한 여권의 분석틀과 묘하게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신임 정책위의장에 개혁성이 강한 이해찬의원이 임명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한나라당은 올 국감을 벼르고 있다.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만들어진 만큼 각종 정보들이 야당에 흘러갈 가능성 때문에 여권 핵심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권의 잇따른 기득권 압박작전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한나라당은 여유있는 표정이다. “재벌개혁과 공직사정을 부르짖는 여권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 이회창총재의 한 보좌역은 “여권의 재벌 때리기는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지 몰라도 중산층-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단순논리로 도식화시켜 봐서는 안된다. 현재 조성된 구도는 여야가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도다. 여권이 압박을 계속할 경우 손해보는 것은 여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여권의 기득권세력 고삐죄기에는 만만치 않은 역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26일 현대 계열사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작된 ‘현대사태’도 그중의 하나다. 고급차 구입자에 대한 국세청 통보조치 등에도 여론의 비난이 없지 않다. 게다가 원내 과반수는 물론 일당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기본적인 취약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거시적인 정국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틈만 보이면 공격하는 것이 불만세력-기득권세력들의 속성인 까닭이다. 김 대통령의 향후 수순이 주목된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세력에 대한 여권의 자세는 정치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여권이 총선 결과 분석을 토대로 이들 기득권세력에 대해 칼을 빼든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여권 핵심부는 최근 16대 총선 결과에 대한 정밀 분석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결과 계층별로 확연히 갈라선 표심을 확인했다. 부유층은 한나라당, 중산-서민층은 민주당 지지로 투표 양극화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여권핵심의 분석 결과는 향후 여권의 정책기조를 이끌어갈 기본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3년 남겨놓은 김대중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김대통령의 구상은 이런 분석작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핵심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빈부격차에 따른 차별화된 정당지지 성향은 2002년 대선 때도 유사하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우리 당의 대선후보도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선출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특히 수도권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30평형대 이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투표율도 높았다. 일부 언론은 이를 ‘아파트당’이란 용어로 표현했다. 반면 민주당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한나라당 박명환후보와 민주당 김윤태후보가 맞선 서울 마포갑을 보자. 이 곳에서는 아파트가 밀집돼 ‘마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도화 1, 2동에서 쏟아진 몰표가 박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구로을의 경우 민주당 장영신후보가 유일하게 한나라당 이승철후보에게 뒤진 곳은 아파트촌인 구로 1동이었다. 용산에서는 고급 아파트촌인 이촌 1동에서 한나라당 진영 후보가 민주당 설송웅후보를 30% 가까이나 앞섰다.
민주당 기조국 관계자는 “그동안 내세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가 이번 총선을 통해 확실하게 유권자들에게 심어졌다. 따라서 기본 지지기반인 이들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아 지지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 외연을 넓히는 작업들이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총선을 통해 ‘호남당’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면 ‘DJ당’이라는 이미지도 탈색시킬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영남권의 민주당 지지표에 대한 분석작업은 여권 핵심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또다른 중요한 포인트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양회구국장은 “이번 4·13총선에서 우리 당이 영남에서 1만표 이상을 얻은 지역구가 27곳이다. 64개 지역구에 후보를 냈으니 3분의 1이 넘는 곳에서 1만표 이상을 얻었다. 지난 15대 총선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분석에 따르면 15대 총선과 비교한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부산 8.6%, 경남 7.6%, 대구 9.5%, 경북 13.1%가 상승했다고 한다.
민주당 핵심부에서는 이런 분석 뒤에 숨어 있는 영남표의 ‘질’을 분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찍었겠는가. 기득권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우리를 찍었는지, 아니면 서민들이 우리를 찍었는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수도권에서 나타난 것처럼 영남에서도 중산층-서민들이 우리 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아마 안 찍었을 것”이라는 것. 향후 영남권에 대한 여권의 접근태도가 ‘사람’ 위주의 ‘동진정책’에서 ‘정책’을 위주로 한 ‘체감정책’으로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총선을 전후한 시기에 여권 핵심부를 자극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상징인 재계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여권은 새정부 들어 움츠러들었던 재계가 99년 11월 열린 한나라당 후원회를 계기로 몸풀기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권 핵심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총선을 전후한 시기에 아무개 회장이 한나라당에 붙었다더라, 새정부 들어 곤욕을 치른 모그룹이 한나라당을 지원했다더라 등등의 확인할 수 없는 풍문들이 여권 내부에 무성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어떤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후원회 관계자의 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분위기가 확실히 전과 다르다. 97년 대선 이후 완전히 얼어붙었던 재계의 지원은 작년 후원금 모금 행사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98년보다는 99년이, 99년보다는 2000년이 분위기가 더 좋다. 앞으로도 여러 곳에서 후원금을 낼 것으로 본다. 원구성이 완료되면 후원회도 열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일부 재벌그룹은 한나라당에 수억원 이상의 후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좋아진 자금사정을 토대로 3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출하며 사무처 직원들에게 격려금도 지급했다.
야당에 대한 재계의 접근 움직임은 일당 확보에 실패한 여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잖아도 자민련과의 공조가 깨져 정국주도권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현정권에 대한 불만세력과 기득권세력들이 연합작전을 펼쳐 일대 저항전선을 형성한다면 여권으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한 관계자는 “조기 레임덕 없이 국정운영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한 평화 분위기 조성과 함께 기득권세력들의 저항을 조기 제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정세분석전문가도 “기득권세력을 때리면 서민들은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총선 결과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이런 인식은 총선 이후 진행된 일련의 움직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 정가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지난 4월20일 전경련 수뇌부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일동레이크 컨트리클럽에서 오찬회동을 갖고 “구조조정본부의 역할 등 구체적인 문제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미 전날 전경련 고위관계자가 “총선 이후 정국향배와 재벌 정책에 대한 재계의 대응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며 바람을 띄운 뒤 나온 발언이었다.
전경련의 태도는 불과 이틀 전 김대통령이 “올해를 재벌개혁을 완수하는 해로 삼을 것”이라는 발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됐고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4월21일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구조조정본부를 존속시키려면 공표하고 해보라”며 재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24일 국세청은 현대 등 4대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 감찰, 고급차량 구입자에 대한 국세청 통보 등의 조치가 계속 터져나왔다. 고액과외 자금출처 조사, 시가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양도세 관리 철저 등의 조치도 뒤따랐다. 검찰에서는 재벌 2세와 연예인들이 관련된 마약, 매춘에 대해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일련의 조치들이 모두 이른바 ‘기득권 세력’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유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총선 결과에 대한 여권의 분석틀과 묘하게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신임 정책위의장에 개혁성이 강한 이해찬의원이 임명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한나라당은 올 국감을 벼르고 있다.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만들어진 만큼 각종 정보들이 야당에 흘러갈 가능성 때문에 여권 핵심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권의 잇따른 기득권 압박작전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한나라당은 여유있는 표정이다. “재벌개혁과 공직사정을 부르짖는 여권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 이회창총재의 한 보좌역은 “여권의 재벌 때리기는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지 몰라도 중산층-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단순논리로 도식화시켜 봐서는 안된다. 현재 조성된 구도는 여야가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도다. 여권이 압박을 계속할 경우 손해보는 것은 여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여권의 기득권세력 고삐죄기에는 만만치 않은 역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26일 현대 계열사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작된 ‘현대사태’도 그중의 하나다. 고급차 구입자에 대한 국세청 통보조치 등에도 여론의 비난이 없지 않다. 게다가 원내 과반수는 물론 일당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기본적인 취약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거시적인 정국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틈만 보이면 공격하는 것이 불만세력-기득권세력들의 속성인 까닭이다. 김 대통령의 향후 수순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