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구역질나는 행동, 기회주의, 뻔뻔스러움이죠.” 미디콤에서 ‘사기정보사이트’를 운영해온 김종원씨의 말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한 변호사(사시26회)의 사기꾼 비판은 더 신랄하다.
“사기꾼은 ‘모기’ 같은 존재입니다. 피 대신 돈을 노리죠. 불을 켜고 온 구석을 뒤져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기가 땀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듯 사기꾼도 열심히 땀흘려 모은 돈에 혹합니다. 지독한 놈에 게 물리면 때로는 죽기도 하죠.”
한국은 사기꾼이 ‘창궐’하는 사회다. ‘일생을 사기 한번 안당하고 사는 사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월1일엔 투자이민을 미끼로 11억원을 가로챈 미국검사 출신 사기꾼이 최기선 인천시장을 뉴욕으로 초청해 투자의향서까지 작성했다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분석한 사기유형은 모두 56가지. 신용카드 어음 수표 주식 부동산 낙찰계 결혼 취업 입학 도박 연예인캐스팅 등 생활의 전 영역이 사기의 대상이다. 엔젤사기 전자상거래사기 국제무역사기 등 신종사기가 날마다 나온다. 대도시엔 1000건 이상의 사기사건이 쌓인 경찰서가 즐비하다.
사기사건과 관련된 종합적인 통계는 아직 없어 정확한 실태를 알기는 어렵다. 98년 한해 전국 1심 형사공판사건의 사기사건 피의자는 1만8750명이었다. 1심 형사공판 총 피의자 중 사기피의자의 비중은 95년 7.4%, 96년 8.4%, 97년 8.7%, 98년 9.3%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98년 사기나 배임증수 뒤 세탁된 돈만 1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5년여 동안 한국에서 보안사업을 하고 있는 핑커톤 한국지사의 펠 험 지사장의 주장. “한국은 세계에서 사기(fraud)사건이 매우 많이 일어나는 국가 중 한 나라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주위에선 ‘세상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겪고 있는 사기 피해자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사기꾼’에게 뜯기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늦기 전에 사기꾼임을 변별하는 능력을 가지면 된다. 이런 목표를 갖고 사기꾼의 공통점들을 추출해 표준화시키는 탐구작업이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기꾼은 과연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정의내려질 수 있을까.
지난 87년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탈북했던 김만철씨(61)는 사기꾼에게 희생돼 자신이 꿈꿔 온 삶을 포기해야 했다. 그의 경험담에서 ‘사기꾼’의 전형적 모습이 발견된다.
김씨는 함북 청진에서 의사로 있을 때 병원 옆 목장을 자주 찾았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는 한국에 와서도 꽃사슴 사육에 큰 흥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 95년 이런 점을 알아낸 L씨는 자신이 청진의 바로 그 목장에서 사슴들을 들여오기로 북한당국과 계약을 했다며 김씨에게 투자할 것을 권했다. L씨는 청진 목장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그의 제의에 크게 기뻐한 김씨는 두 말 하지 않고 1억8000만원을 건네줬다. 그러나 L씨가 약속한 사슴은 끝내 오지 않았다. 김씨는 L씨를 고소했지만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L씨에게 주어진 벌은 1년이 안되는 수감생활. “교도소에서 나온 L씨가 집에 찾아 와서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가더군요.” 김씨는 남쪽 사기꾼의 용의주도함과 뻔뻔스러움에 질렸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철썩같이 믿고 의지해왔던 한국정부의 관리에게 또다시 2억원을 사기당했다.
김씨는 요즘 부인 최복례씨(55)와 함께 경기도 광주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갚아야 할 은행빚이 산더미 같다고 한다. 김씨는 “이밥에 고깃국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용호변호사는 최근 사기꾼의 전형적인 행동을 스케치한 ‘사기꾼’이란 책을 냈다. 그가 그린 요즘 사기꾼의 신체적 특징은 이렇다. ‘나이 30대 후반∼40대, 학력수준 높음, 호리호리한 체형, 깔끔한 외모에 교양있는 언변, 외국잡지를 들고 다님’. 이들은 사기를 ‘직업’으로 여긴다고 한다. ‘꾼’이라는 단어 자체에 ‘사기행각이 부단히 이어진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18가지 공통된 행동유형이 발견된다고 한다. “사기꾼은 어느 장소에 들어가건 바쁘게 자리를 뜨는 버릇이 있습니다. ‘유지급’이라는 인상을 주는 거죠. 사기꾼은 한 마디로 명함에 살고 명함에 죽는 ‘명함인생’입니다. 고급식당에 들어가면 종업원에게 아는 체합니다.
사기행각은 탐색-실행-재물취득-잠적의 4단계로 나뉩니다. 탐색단계에선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활용합니다. 중간에 사람을 내세우거나 상대에게 먹히는 아이템을 들고오기도 하고 고충을 포착하기도 합니다.
상대로부터 돈을 건네받을 때가 사기꾼에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죠. 사기꾼은 이 순간을 가능한 한 빨리 해치우려 합니다. 다급한 상태로 가장할 때도 있죠. 전화를 이용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면 순식간에 말을 바꿉니다.
목표를 이룬 다음엔 일단 피해자가 스스로 떨어져 나가게 합니다. 잠적 중 불시에 피해자와 맞닥뜨리게 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저도 그동안 돈을 돌려드리려고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릅니다’. 다시 속임수를 시작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사기에도 ‘대원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사기꾼들도 대체로 여기에 동의한다. 외국의 증권사기꾼으로 알려진 필 윌슨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기의 필수선행조건은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기라는 ‘비즈니스’는 하도 복잡해서 사기꾼이 그 일을 하면서 자신부터 혼동하게 될 때 성공한다.”
1월17일 자신을 국가정보원 직원이라고 사칭해 이웃집에 사는 권모씨로부터 9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서울 송파구 안모씨(36)의 사례는 사기꾼의 공통적 심리인 ‘두려움’을 보여준다. 안씨를 조사한 수서경찰서 천상민조사관이 말하는 안씨의 심리상태. “결혼 1년 뒤부터 그는 부인에게까지 국정원 직원으로 사칭했습니다. ‘당신 회사 잘 다니면서 무슨 소리냐’고 부인이 묻자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미안하다. 지금까지 신분을 감춰 왔다’고 말했습니다. 밤 늦게 권총을 차고 ‘출동’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부인에게 국정원 정문까지 승용차로 출근시켜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5년 동안이나 부인을 속였습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사로잡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안씨의 부인은 남편이 검거되면서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천리안사이트 ‘go sagi’는 “사기꾼은 ‘사기를 잘 당할 것 같은 사람’을 가려내는 ‘안목’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 지난 97년 유령단체를 만들어 대학총장과 현역장성에게 표창장을 주며 억대사기행각을 벌인 중졸 학력의 홍성오씨(50). 홍씨는 자신에게 4000만원을 건네준 한 대학총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 관상공부를 했는데 잘 넘어갈 사람으로 보였어.”
천상민조사관은 “지난 1년간 120여명의 사기꾼과 씨름하면서 느낀 점인데, 사기꾼들은 정말 법에 밝다”고 말했다. 여기엔 국민의 법 감정을 따라가 주지 못하는 실정법의 한계도 있다. 형법 347조 1항은 사기에 대해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96, 97년 대법원은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겠다는 범의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못하면 돈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론 사기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관계자는 “가장 수사하기 까다로운 게 사기사건입니다. 그만큼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이야기겠죠”라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책임연구원은 ‘사기당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했다. “지나치게 ‘성공지향적’입니다. 남보다 앞서 이익을 빨리 한꺼번에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합리성은 부족합니다. 황당무계한 일도 중간의 논리전개 과정을 뭉텅 빼고 처음과 끝을 연결해 버리니 그럴 듯해 보이는 겁니다. 계약보단 정에 의존하는 전통적 인간관계에 약한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건축사기를 당한 뒤 ‘떼한민국’이라는 책을 낸 중앙대 김영봉교수는 “우리 나라에선 부당한 일도 억지로 되게 하려고 ‘떼’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기꾼은 이런 문화를 역이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현실을 뒤집어 보는 존재’라고 치켜세운다. 루이스 하이드라는 작가는 사기꾼을 ‘상상 세계의 주인공’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사기당한 사람에겐 분통터질 일이지만 그는 책 제목을 ‘세상은 사기꾼이 만든다’고 붙이기까지 했다.
사기꾼은 대개 사기당한 사람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1940년대 미국의 유명한 사기꾼 빅터 러스틱의 말. “난 정직한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들은 인생을 지루하기 짝이 없게 만들고 있잖아.”
‘야비’하고 ‘기고만장’한 사기꾼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윤용호변호사는 ‘삶의 여유’라고 말한다. 빨리 돈벌겠다는 조급증을 털어내는 순간 사기꾼이 파놓은 ‘함정’이 보이기 시작하며 사기꾼을 역으로 속이는 ‘반격’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한 변호사(사시26회)의 사기꾼 비판은 더 신랄하다.
“사기꾼은 ‘모기’ 같은 존재입니다. 피 대신 돈을 노리죠. 불을 켜고 온 구석을 뒤져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기가 땀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듯 사기꾼도 열심히 땀흘려 모은 돈에 혹합니다. 지독한 놈에 게 물리면 때로는 죽기도 하죠.”
한국은 사기꾼이 ‘창궐’하는 사회다. ‘일생을 사기 한번 안당하고 사는 사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월1일엔 투자이민을 미끼로 11억원을 가로챈 미국검사 출신 사기꾼이 최기선 인천시장을 뉴욕으로 초청해 투자의향서까지 작성했다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분석한 사기유형은 모두 56가지. 신용카드 어음 수표 주식 부동산 낙찰계 결혼 취업 입학 도박 연예인캐스팅 등 생활의 전 영역이 사기의 대상이다. 엔젤사기 전자상거래사기 국제무역사기 등 신종사기가 날마다 나온다. 대도시엔 1000건 이상의 사기사건이 쌓인 경찰서가 즐비하다.
사기사건과 관련된 종합적인 통계는 아직 없어 정확한 실태를 알기는 어렵다. 98년 한해 전국 1심 형사공판사건의 사기사건 피의자는 1만8750명이었다. 1심 형사공판 총 피의자 중 사기피의자의 비중은 95년 7.4%, 96년 8.4%, 97년 8.7%, 98년 9.3%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98년 사기나 배임증수 뒤 세탁된 돈만 1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5년여 동안 한국에서 보안사업을 하고 있는 핑커톤 한국지사의 펠 험 지사장의 주장. “한국은 세계에서 사기(fraud)사건이 매우 많이 일어나는 국가 중 한 나라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주위에선 ‘세상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겪고 있는 사기 피해자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사기꾼’에게 뜯기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늦기 전에 사기꾼임을 변별하는 능력을 가지면 된다. 이런 목표를 갖고 사기꾼의 공통점들을 추출해 표준화시키는 탐구작업이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기꾼은 과연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정의내려질 수 있을까.
지난 87년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탈북했던 김만철씨(61)는 사기꾼에게 희생돼 자신이 꿈꿔 온 삶을 포기해야 했다. 그의 경험담에서 ‘사기꾼’의 전형적 모습이 발견된다.
김씨는 함북 청진에서 의사로 있을 때 병원 옆 목장을 자주 찾았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는 한국에 와서도 꽃사슴 사육에 큰 흥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 95년 이런 점을 알아낸 L씨는 자신이 청진의 바로 그 목장에서 사슴들을 들여오기로 북한당국과 계약을 했다며 김씨에게 투자할 것을 권했다. L씨는 청진 목장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그의 제의에 크게 기뻐한 김씨는 두 말 하지 않고 1억8000만원을 건네줬다. 그러나 L씨가 약속한 사슴은 끝내 오지 않았다. 김씨는 L씨를 고소했지만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L씨에게 주어진 벌은 1년이 안되는 수감생활. “교도소에서 나온 L씨가 집에 찾아 와서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가더군요.” 김씨는 남쪽 사기꾼의 용의주도함과 뻔뻔스러움에 질렸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철썩같이 믿고 의지해왔던 한국정부의 관리에게 또다시 2억원을 사기당했다.
김씨는 요즘 부인 최복례씨(55)와 함께 경기도 광주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갚아야 할 은행빚이 산더미 같다고 한다. 김씨는 “이밥에 고깃국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용호변호사는 최근 사기꾼의 전형적인 행동을 스케치한 ‘사기꾼’이란 책을 냈다. 그가 그린 요즘 사기꾼의 신체적 특징은 이렇다. ‘나이 30대 후반∼40대, 학력수준 높음, 호리호리한 체형, 깔끔한 외모에 교양있는 언변, 외국잡지를 들고 다님’. 이들은 사기를 ‘직업’으로 여긴다고 한다. ‘꾼’이라는 단어 자체에 ‘사기행각이 부단히 이어진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18가지 공통된 행동유형이 발견된다고 한다. “사기꾼은 어느 장소에 들어가건 바쁘게 자리를 뜨는 버릇이 있습니다. ‘유지급’이라는 인상을 주는 거죠. 사기꾼은 한 마디로 명함에 살고 명함에 죽는 ‘명함인생’입니다. 고급식당에 들어가면 종업원에게 아는 체합니다.
사기행각은 탐색-실행-재물취득-잠적의 4단계로 나뉩니다. 탐색단계에선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활용합니다. 중간에 사람을 내세우거나 상대에게 먹히는 아이템을 들고오기도 하고 고충을 포착하기도 합니다.
상대로부터 돈을 건네받을 때가 사기꾼에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죠. 사기꾼은 이 순간을 가능한 한 빨리 해치우려 합니다. 다급한 상태로 가장할 때도 있죠. 전화를 이용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면 순식간에 말을 바꿉니다.
목표를 이룬 다음엔 일단 피해자가 스스로 떨어져 나가게 합니다. 잠적 중 불시에 피해자와 맞닥뜨리게 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저도 그동안 돈을 돌려드리려고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릅니다’. 다시 속임수를 시작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사기에도 ‘대원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사기꾼들도 대체로 여기에 동의한다. 외국의 증권사기꾼으로 알려진 필 윌슨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기의 필수선행조건은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기라는 ‘비즈니스’는 하도 복잡해서 사기꾼이 그 일을 하면서 자신부터 혼동하게 될 때 성공한다.”
1월17일 자신을 국가정보원 직원이라고 사칭해 이웃집에 사는 권모씨로부터 9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서울 송파구 안모씨(36)의 사례는 사기꾼의 공통적 심리인 ‘두려움’을 보여준다. 안씨를 조사한 수서경찰서 천상민조사관이 말하는 안씨의 심리상태. “결혼 1년 뒤부터 그는 부인에게까지 국정원 직원으로 사칭했습니다. ‘당신 회사 잘 다니면서 무슨 소리냐’고 부인이 묻자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미안하다. 지금까지 신분을 감춰 왔다’고 말했습니다. 밤 늦게 권총을 차고 ‘출동’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부인에게 국정원 정문까지 승용차로 출근시켜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5년 동안이나 부인을 속였습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사로잡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안씨의 부인은 남편이 검거되면서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천리안사이트 ‘go sagi’는 “사기꾼은 ‘사기를 잘 당할 것 같은 사람’을 가려내는 ‘안목’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 지난 97년 유령단체를 만들어 대학총장과 현역장성에게 표창장을 주며 억대사기행각을 벌인 중졸 학력의 홍성오씨(50). 홍씨는 자신에게 4000만원을 건네준 한 대학총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 관상공부를 했는데 잘 넘어갈 사람으로 보였어.”
천상민조사관은 “지난 1년간 120여명의 사기꾼과 씨름하면서 느낀 점인데, 사기꾼들은 정말 법에 밝다”고 말했다. 여기엔 국민의 법 감정을 따라가 주지 못하는 실정법의 한계도 있다. 형법 347조 1항은 사기에 대해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96, 97년 대법원은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겠다는 범의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못하면 돈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론 사기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관계자는 “가장 수사하기 까다로운 게 사기사건입니다. 그만큼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이야기겠죠”라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책임연구원은 ‘사기당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했다. “지나치게 ‘성공지향적’입니다. 남보다 앞서 이익을 빨리 한꺼번에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합리성은 부족합니다. 황당무계한 일도 중간의 논리전개 과정을 뭉텅 빼고 처음과 끝을 연결해 버리니 그럴 듯해 보이는 겁니다. 계약보단 정에 의존하는 전통적 인간관계에 약한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건축사기를 당한 뒤 ‘떼한민국’이라는 책을 낸 중앙대 김영봉교수는 “우리 나라에선 부당한 일도 억지로 되게 하려고 ‘떼’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기꾼은 이런 문화를 역이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현실을 뒤집어 보는 존재’라고 치켜세운다. 루이스 하이드라는 작가는 사기꾼을 ‘상상 세계의 주인공’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사기당한 사람에겐 분통터질 일이지만 그는 책 제목을 ‘세상은 사기꾼이 만든다’고 붙이기까지 했다.
사기꾼은 대개 사기당한 사람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1940년대 미국의 유명한 사기꾼 빅터 러스틱의 말. “난 정직한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들은 인생을 지루하기 짝이 없게 만들고 있잖아.”
‘야비’하고 ‘기고만장’한 사기꾼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윤용호변호사는 ‘삶의 여유’라고 말한다. 빨리 돈벌겠다는 조급증을 털어내는 순간 사기꾼이 파놓은 ‘함정’이 보이기 시작하며 사기꾼을 역으로 속이는 ‘반격’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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