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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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국회의원 산다?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6-07-18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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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물 경주’.

    4·13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전현직 의원들에게 요즘 이 말처럼 실감나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각종 낙선운동 명단 때문이다. 자기 당의 공천과 관련한 신문 보도에 하루에도 몇번씩 공천과 낙천,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는 의원들에게 명단이라는 장애물에 한번 걸려 넘어지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본인들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가슴을 쓸어내렸던 전현직 의원들도 이번 주부터 재계와 노동계가 의원들의 정책과 성향을 평가해 또하나의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나서는 데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재계는 이미 노동계가 친재벌-반노동자적 정치인 명단을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데 맞서 의원들의 성향을 자체 분석하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했다. 재계는 이 명단을 대외적으로는 공개하지 않고 ‘회원사에게만’ 배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우선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재계의 방침이 회원사의 고위 임원들만 이 명단을 참고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알고 난 뒤에 정치자금을 선별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회원사 고위임원들만 알고 있을 바에야 굳이 정치 참여라고 할 것도 없고, 정치자금을 선별 지원하겠다면 이거야말로 돈으로 정치인들을 줄세우겠다는 고약한 심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경제5단체장들이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나올 때만 해도 재계 관계자들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30억∼40억원 정도 못모으겠느냐”는 말들을 숨기지 않았었다. 재계의 정치 참여 선언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재계도 노동계도 투명하게 심사한 뒤 독자적으로 명단을 발표해 유권자들이 알아서 선택하도록 하는 일이다. 무노동 무임금이 옳은지 그른지, 내년 예산 편성에서 사회복지 예산을 늘려야 할지 줄여야 할지, 또는 자유무역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국내 생산자들의 입지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장벽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 국회의원들의 정책과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개혁과 보수라는 애매한 기준보다도 훨씬 분명하고 건강한 잣대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라도 정치인들에게 정책과 소신 앞에 줄서기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3김 보스 정치가 종언을 고했을 때 줄서기에만 익숙한 정치인들은 ‘정치 미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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