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즐거운 웃음이 번져나오게 한’ 장석남의 시 ‘해도 너무한 일’, 작가에게 ‘꽃밭 하나를 선물받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 김상미의 시 ‘질투’, 늦은 귀가길 버스에서 방송을 통해 듣고 눈시울이 시큰해짐을 느꼈던 이기철의 ‘이향’(離鄕), 20대 어느 날 신년 아침에 신문에서 읽고 눈물이 나려 했다는 김경미의 ‘비망록’…. 작가의 좋은 친구 허수경의 시(‘혼자 가는 먼 집’)와 황인숙의 시(‘시장에서’)도 실려 있고, 작가와 한솥밥 먹고 사는 시인 남진우의 작품(‘일각수’)도 수록―그러나 글 속에서 작가는 짐짓 이런 개인적 인연을 ‘모르쇠’하고 넘어간다―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언젠가 신경숙씨는 개인적으로 서정주와 정현종을 ‘대한민국에서 첫째 둘째가는 시인’으로 꼽는다고 했는데, 이 책에 역시 아니나 다를까, 서시인의 작품 한 편(‘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엎지르고 걸어왔을 때’)과 정시인의 시 두 편(‘자연에 대하여’ ‘어디 들러서’)도 소개됐다. 신경숙씨의 안테나가 두 노대가의 작품 속에서 어느 문맥에 그다지도 민감히 공명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시를 동경하고 질투했으며, 시와 동일선상에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가없는 매혹과 은혜를 품고 있다”는 신경숙씨. 그는 이 시집에 적어놓은 자신의 글귀들을 ‘작가의 문학적 행위’로 읽지 말고 “독자들과 함께 ‘이런 시도 있네요’라고 공유하며 깊은 숨을 쉬어본 것”으로 받아들여달라고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