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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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흠집내기 “믿을 놈 하나 없다”

‘옷 사건’ 이형자음모론 계기로 본 요지경 세상… “근거없는 투서에 선의의 피해자 많아”

  • 입력2006-06-09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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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 흠집내기 “믿을 놈 하나 없다”
    현직 고위 공직자인 A씨는 작년 말 옷로비 사건에 대한 대검 중수부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김태정 전 법무장관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삼정권 말기에 ‘음해’를 받고 사직동팀 요원들의 ‘가혹한’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A씨의 경우 당시 서울 강남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그가 70년대 건설주 폭등 당시 건설주에 투자해 번 돈으로 이 부동산을 구입해 놓은 사실이 해명돼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고 내사는 종결됐다. A씨는 “당시의 억울한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면서 “당시 누가 그런 투서를 했는지 짐작은 가지만 더 이상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대검중수부는 지난해 말 옷로비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은 이형자씨가 남편인 최순영회장의 구명을 위해 로비를 시도하다 실패하자 옷로비 사실을 왜곡 과장함으로써 발단된 실체 없는 로비”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씨의 ‘음해론’쪽에 무게를 둔 결론이다.

    A씨는 이에 비하면 자신이 당한 음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A씨의 경우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는 정당한 경쟁 풍토가 자리잡히지 않은 탓인지 공직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 금융권, 일반 회사 등에서도 경쟁자들 사이에 서로 상대방을 끌어내리기 위한 음해와 투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경찰청 조사과(일명 사직동팀)는 바로 고위 공직자를 둘러싼 진정과 투서의 개연성을 내사하는 곳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직동팀에서 내사를 해보면 청와대에 접수되는 투서 가운데 80~90% 정도가 사실무근의 ‘음해’로 드러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만약 사직동팀이 없다면 음해성 투서 때문에 한달에 3, 4명의 장-차관급이 검찰청 포토 라인에 서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직동팀은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대중정부 들어 야당인 한나라당은 야당 의원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사직동팀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신범의원은 사직동팀이 자신의 후원회원 계좌를 뒤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은 야당의 주장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말할 것도 없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정보기관이 공작정치를 일삼는 과정에 야당 의원에 대한 음해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김대중정권 하에서도 ‘야당 파괴공작’ ‘음해공작’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불거져 나온 야당의원 관련 여러 사건들이 ‘이회창총재 죽이기’ 차원에서 부풀려진 ‘음해공작’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꼭 정보기관의 음해공작 주장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장땡’이라는 정치권 풍토 때문인지 라이벌 정치인들 사이에도 음해는 기승을 부린다. 최근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의도 정가에 ‘공천 살생부’ 등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나도는 것도 정치권의 살벌한 음해 풍토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B의원이 겪은 사건도 대표적인 음해라고 할 만하다. 작년 11월23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이신범의원 이 대아건설의 국정원 공사 특혜 수주 의혹을 폭로하자 ‘B의원 사주설’이 떠돌았다. B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아건설 회장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의원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것. 그러나 B의원은 “그런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면서 한마디로 음해성 역공작이라고 일축했다.

    금융권 인사들은 금융권도 정치권에 못지않게 음해와 투서가 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은행 주총을 앞둔 시기에 은행장에 관한 투서가 집중된다”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장은 “은행장 인사가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경쟁자를 서로 헐뜯는 풍토가 정착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권 인사들은 금융권의 이런 음해풍토 때문에 낙마한, 가장 아까운 인사로 J은행 C 전행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C 전행장은 95년초 대출사례금으로 4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는데, 이는 이 은행의 한 임원이 사정당국에 흘린 C행장에 대한 음해성 정보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는 게 금융권의 정설이다.

    당시 C행장은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딸과 비슷한 용모를 가진 여비서를 딸처럼 귀여워했다. 그런데 한 임원이 이를 두고 “C행장이 여비서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자신과 가까운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흘렸고, 정보기관 관계자가 확인 없이 보고를 올림으로써 사건이 의외로 확대됐던 것.

    C행장의 한 측근은 “현직 검사를 아들로 두었던 C행장은 돈문제에 관한 한 깨끗한 분이었는데, 이런 음해성 정보 때문에 ‘구악 인사’로 낙인찍히게 됐고, 이것이 검찰의 구속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아쉬워했다. C행장의 사례는 사정기관이 음해공작에 어떤 식으로 이용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고위 공직자 인사를 앞두고 후보자에 대한 스크린 작업을 벌이는 곳은 대통령법무비서관실(과거에는 사정수석실). 법무비서관이 인사 작업을 하는 데 가장 먼저 참고하는 게 바로 자신이 거느리는 공직기강팀이 관리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 존안 파일이다.

    존안 파일이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개인 기록. 과거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 성향까지 기록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나 경찰 등 각 정보기관에서 올라오는 고위 공직자 관련 정보도 이 존안 파일에 수록된다. 존안 파일이 없는 사람을 고위 공직에 임명하는 경우 그에 대한 검증 작업을 거쳐 새 파일을 만드는 곳은 사직동팀이다.

    이처럼 국정원이나 경찰 정보원들이 공직자 존안 파일 기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다보니 공직자들은 이들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올리는 경우 결국에는 자신만 ‘손해보기’ 때문.

    이들은 또 본의 아니게 음해공작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가령 정보기관 정보원이 특정 정치인과 유착, 그가 정적을 ‘죽이기’ 위해 무책임하게 흘려주는 얘기를 확인과정 없이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 상대방은 해명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

    97년말 여야간 정권교체 후 이런 ‘불공정 게임’의 실체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당시 자신에 대한 존안 파일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과거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그대로 파일에 기록돼 있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위원장은 당시 “노태우전대통령이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는지를 알게 됐다”고 언급, 자신과 노대통령 사이를 이간질하는 내용이 존안 파일에 들어 있음을 암시했다. 이는 같은 여권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음해공작이 이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정기관을 음해 공작에 이용하는 것에 비해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엄청난 전파 속도로 당사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이 증권가 정보지다. 각 기업체 정보담당자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사 기자, 사정기관 관계자들도 증권가 정보지를 열독하기 때문.

    김세옥 전 경찰청장도 98년말 러시아제 테러진압용 MI-172 헬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증권가 정보지를 이용한 음해공작으로 곤욕을 치렀다. 경찰청이 원래 도입하기로 추진한 유럽제 헬기에서 러시아제로 갑자기 바뀐 배경을 둘러싸고 ‘로비 의혹’이 처음 증권가 정보지에 뜨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일부 언론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이 과정을 잘 아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러시아 경협 차관의 현물 상환 차원에서 러시아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며 “김세옥전청장이 로비의혹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것은 입찰을 준비하던 중개업체들이 퍼뜨린 음해성 정보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런 음해가 계속 판치는 것은 그로 인해 반사적 이익을 보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공직사회에 공정한 경쟁 풍토를 마련한다고 해도 음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공직자들은 스스로 음해에 휘말리지 않도록 처신을 바로 하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98년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가 당했던 일이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인사의 부탁을 받고 산하기관에 전화 한통 했는데, 나중에는 이 사실이 돌고돌아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이 돈받고 누구를 봐줬다”는 식으로 청와대에 투서가 들어가 사직동팀 내사까지 받았다는 것.

    한 청와대 관계자도 이와 관련해 “고급 옷 로비사건은 어쨌든 김태정전장관의 부인 연정희씨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공직자 본인뿐 아니라 공직자 가족이 가져야 할 태도를 새삼 생각케 한다”고 말했다.

    ‘옷 사건’ 주역 싸고 헐뜯기?

    대검, 특검팀 수사결과 뒤집어… “끝없는 공방”


    고급 옷 로비의혹에 대한 검찰 재수사 결과를 발표한 구랍 30일 한 중앙 일간지는 양인석 옷로비의혹 특검보가 98년 신동아그룹 외화밀반출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과정에 신동아측 참고인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을 대검찰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대검의 특검팀 흠집 내기 차원이라는 분석이 대두됐다.

    대검과 특검 수사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 부분은 이 사건 주역에 대한 판단. 특검팀은 이 사건 주역을 정일순씨로 보고 “정씨가 알선 명목으로 이형자씨에게 옷값 1억원의 대납을 요구했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대검은 “이형자씨측 진술이 오락가락해 신빙성이 없다”며 정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결국 대검의 특검팀 흠집내기는 특검팀 판단을 뒤엎는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둔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양인석특검보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반응. 특검팀 김도형특별수사관(변호사) 말대로 “이 사건은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누구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느냐는 판단의 문제”였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양인석특검보 자신이 특검보 임명을 사양했어야 마땅하다는 것.

    어쨌든 이 사건은 해를 넘겨서도 법정으로 자리를 옮겨 치열한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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