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읽는 행위’는 비단 시각적 미감만을 충족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림을 둘러싼 문화적 배경이나 지성사의 흐름까지를 아울러 이해하는 작업이다. 한동안 우리 서점가에는 유럽의 미술관들을 기행하는 형식으로 서양 미술사를 개괄하고, 더불어 그네들의 풍속사,지성사까지 엿볼 수 있는 일련의 책들이 소개되었다. 미술감상 ‘입문서’에 해당되는 이들 책 덕분에 서양미술사와 그들이 탄생된 당시의 사회를 읽는 ‘독법’은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편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산수를 그린 우리 그림을 소개하고 읽는 작업은 어떠했는가. 부끄럽게도, 우리 그림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식이나 접근 수준은 서양미술의 그것에 턱없이 못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기행’(대원사 펴냄)은,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은 영평 화적연에서 출발, 수태사동구와 피금정을 지나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감상한 뒤 만폭동 비로봉을 두루 거쳐 해금강에 이르는 금강산 여행길을 따라 겸재가 남긴 예순한점의 그림(이에 더하여 같은 풍광을 그린 심사정, 김홍도 등의 작품도 곁들여져 있다)을 찬찬히 해석하고, 음미하고 있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조선 영-정조시대 대표적 화가.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조선중화주의’를 바탕으로 탄생된 진경 그림은 성리학의 기본 원리인 ‘음양조화’와 ‘음양대비’의 원리를 화면에 구성해낸 새로운 화풍이다. 겸재는 특히 금강산을 음양이 가장 조화로이 어우러진 성지로 파악, 평생에 걸쳐 금강산을 화폭에 담았다. 이 책에는 그가 금강산에 첫걸음했던 36세 때의 그림과, 같은 풍경을 말년의 노숙한 완성미로 다시 그린 작품들이 나란히 소개돼 있어 그의 50년 화풍 변모사를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저자 최완수씨(58)는 지난 66년부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있으며 겸재의 ‘진경산수’ 개념을 일반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해온 주인공. 겸재 그림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흠모는 깊고도 높다. 그는 이 책에서 겸재를 일컬어 이렇게 칭송한다.
“바로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것이다.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여 그 물성을 터득한 다음 그 표현에 알맞은 화법을 찾아내어 익숙하게 손에 익힌 다음 거침없이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겸재가 당시인들의 느낌 그대로를 그에 알맞은 표현법으로 그려내었기에 당세 제일의 화가가 될 수 있었고 우리 미술사 속에서 화성(畵聖)으로 떠받들 만한 화가가 되었다.”
저자는 겸재가 화폭 속에 자유자재로 구사한 상악준(霜鍔 ‘ 피마준(披麻‘ 쇄찰법(刷擦法) 등의 기법(畵法)을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 줌으로써 독자의 동양화 보는 눈을 열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겸재 그림의 사상적 배경이 된 조선 성리학의 계보와 겸재의 개인적 교유관계, 그리고 지기 문인들이 그의 그림에 붙여준 제시(題詩)와 금강산을 노래한 당대 명문장까지 아울러 소개함으로써 한 시대의 지성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고아(古雅)한 한자어를 한껏 구사한 저자의 힘있고 묵직한 문체 역시 우리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던 대가를 대접하고 칭송하는 데 그럴 수 없이 맞춤하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