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법원은 11월5일(현지 시각)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막강한 지배력으로 컴퓨터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괴롭히고 공정한 경쟁을 억눌렀으며,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원고인 미 정부의 손을 들었다. 세계 소프트웨어업계의 거함(巨艦), 정보화 사회의 최대 제국,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내 몰락하는 것일까.
서둘러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니오’다. 설령 내년 봄에 이 ‘판정’(Factual finding)이 ‘판결’ (Ruling)로 확정되더라도, MS의 위세는 ‘안녕’할 것이다.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에 ‘호기’라거나, ‘세계 소프트웨어업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계기’라는 식의 전망은, 아전인수(我田引水) 차원을 넘어 차라리 ‘우물에서 숭늉찾기’ 식의 비약에 지나지 않는다. MS가 세계 PC 운영체제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법원의 ‘판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 법무부와 MS간의 협상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비록 MS가 법원의 발표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MS의 소명 제출 기한은 내년 1월24일, 법무부는 1월31일이다).
설령 양측이 끝까지 소송을 고집하더라도, MS로서는 별로 불리할 것이 없다. 1심 판결은 내년 2월쯤에나 나오며, 연방 대법원 판결까지는 또 다시 몇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가 급격한 정보통신 산업계에서, 몇년은 다른 산업 분야의 몇십년에 해당할 만큼 긴 시간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이미 컴퓨터업계의 지형도는 지금과 판이하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물론 빌 게이츠의 ‘신경과민적’ 예견대로, 어쩌면 MS조차 패배자로 전락해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법원이 MS에 대해 ‘독점’ 판정을 내렸다고 해서 MS가 지금까지 행사해 온 독점적 지위를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MS는 지금도 여전히 윈도 운영체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설치, 경쟁사인 넷스케이프에 비해 명백한 경쟁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MS 제국은 미 법무부와 20여 주 정부들의 십자포화에도 아랑곳없이 ‘승전가’만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빌 게이츠가 “50년 뒤에는 MS도 망할지 모른다”고 말한 것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그만큼 정보통신업계의 기술변화, 지형변화는 급격하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자바(Java), 지니(Jini) 같은 신기술은 운영체제의 위력을 격감시키고 있으며,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독립 운영체제’ 리눅스(Linux)는 인터넷을 터전삼아 들불처럼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빌려쓴다는 혁신적 개념의 ASP 시장도 MS의 독점체제를 뒤흔드는 일각(一角)이다.
현재 미 법무부는 MS에 대해 △사업부문 단위로 쪼개거나 해체하는 방안 △다른 컴퓨터업체들도 윈도 운영체제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즈니스위크 등 미국내 언론의 ‘대안’도 MS를 △운영체제 부문 △온라인 비즈니스 부문 △오피스 등 응용프로그램 부문 △서비스 부문 등으로 분할하는 쪽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다음이다. 적어도 그 전까지는 남의 잔칫상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격일 뿐이다.
언론을 비롯한 주변의 온갖 ‘위기론’과 ‘흔들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회계연도 MS의 수익은 30% 이상 늘었다. ‘세계 최대 거부’라는 빌 게이츠의 지위도 더욱 확고해졌다. 실상 MS가 두려워하는 것은 법무부나 법원이 아닌지도 모른다. 정보통신업계를 끊임없이 밀어가는 동력, 걷잡을 수 없는 속도와 방향으로 내닫는 기술 변화, 그 ‘보이지 않는 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