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교육부는 초등 3·4학년에 해당되던 방과후학교 연계형 돌봄교실을 올해부터 5·6학년까지 확대해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돌봄교실은 맞벌이, 저소득층, 한부모가족의 초등학생들을 정규수업 이후에도 학교에서 돌봐주는 복지서비스로 현재 1·2학년은 돌봄교실, 3·4학년은 방과후학교 연계형 돌봄교실이 운영 중이다. 또한 교육부는 1·2학년 중심의 돌봄교실 실당 운영비를 전년 대비 약 20% 증액해 2500만 원가량의 지원금이 3000만 원 수준으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예산은 적고 이용자는 많은 흥부네 교실
지원금이 늘었으니 학부모나 학교로선 반가운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재원 배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느냐다. 돌봄교실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돌봄교실 예산은 학교당 2000만 원을 기본으로, 돌봄교실 수가 늘어날 때마다 교실당 200만 원씩 추가로 배정된다. 다시 말해 돌봄교실을 3개 운영하는 학교는 기본금 2000만 원에 나머지 2개 교실에 해당하는 400만 원을 더 받아 총 2400만 원을 지원받는다. 결국 돌봄교실이 하나인 학교는 교실당 2000만 원을, 3개인 학교는 교실당 800만 원을 지원받아 그 차이가 크다. 운영비에는 보조교사 인건비와 외부 강사 초빙 프로그램 운영비, 간식비와 석식 조리사 인건비가 포함된다. 돌봄전담사 인건비는 별도로 지급된다.돌봄교실은 크게 아침돌봄(오전 6시 30분~9시), 오전돌봄(방학과 자율휴업일 오전 7시~오후 1시) 오후돌봄(방과후~오후 5시), 저녁돌봄(오후 5시~밤 10시)으로 나뉘는데,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운영비는 오후돌봄 교실만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운영하는 돌봄교실 수가 많을수록 교실당 운영비는 줄어들고 그만큼 보육의 질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서울 구로구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돌봄전담사 A씨는 돌봄교실 이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과거에는 저소득층이거나 한부모가족, 맞벌이 가정이 우선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1·2학년 돌봄교실이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초등돌봄교실 전면 확대’ 공약이 이행되면서부터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게 되자 갑자기 수요가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정작 돌봄교실이 필요한 가정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부모들의 경우 맞벌이 비율이 높다 보니 오후돌봄 외에도 아침돌봄과 저녁돌봄 수요도 적잖다. 현재 방학 기간임에도 오전돌봄 2개 교실과 오후돌봄 2개 교실을 운영 중이다. 지난 학기에는 오전돌봄 1개, 오후돌봄 2개, 저녁돌봄 1개 교실을 운영했는데, 교실당 수용 인원도 당초 교육부에서 권장한 20명을 훌쩍 뛰어넘어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돌봤다고 한다. 올해도 수요는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A씨는 “돌봄 이용자가 적은 학교는 예산 운용이 여유롭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뮤지컬도 보러 다닌다고 하는데, 우리 학교는 예산이 빠듯하고 수용 인원도 많아 프로그램을 알차게 구성하기 힘들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흥부네가 따로 없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이 안전사고다. A씨는 “돌봐야 하는 아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최근 인근 학교는 돌보미 수요 조사에서 100명이 지원했는데 교육청에서는 교실을 늘리지 말고 한 반 수용 인원을 늘리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이 상태로 가다간 언제 문제가 터질지 모를 일이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돌봄전담사가 져야 한다”며 답답해했다.
돌봄전담사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도 보육의 질을 저하하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현재 돌봄전담사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 외에도 행정 관련 업무가 적잖다. 올해로 5년째 돌봄전담사로 근무하는 B씨는 “돌봄 프로그램 강사 선정부터 회계, 전산, 영양사(석식 메뉴 짜기), 보안관 업무까지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 근무 시간은 오전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지만 행정 업무 처리를 위해 2시간씩 일찍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임금은 서울시 기준 시간당 688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예산 편성 없는 ‘생색내기’ 공약에 교육청 반발
한편 교육부는 학부모와 퇴직교원, 대학생 등을 보조교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인력 수급 자체가 쉽지 않다. 돌봄전담사 B씨는 “임금은 낮고 일은 힘드니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일을 시작했다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아이들만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서 보조교사 채용 자체를 꺼리는 학교가 많다”고 말했다. 보조교사 자질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은 분위기다. 지난해 1학기 때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다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는 주부 C씨는 “선생님 충원에 문제가 있었다. 보조교사로 대학생이 왔는데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아이들을 다루는 데 미숙했다. 아이가 더는 돌봄교실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휴직했다”고 말했다.한편 교육부가 올해부터 5·6학년까지 확대한 방과후학교 연계형 돌봄교실은 실제 이용자가 많지 않아 ‘공약을 위한 정책’이라는 시선도 받고 있다. 서울 한 초등학교의 경우 지난해 3·4학년 방과후학교 연계형 돌봄교실을 신청한 학생이 당초 36명이었지만, 한 달 뒤 이용자 수는 3~5명으로 줄었다. 나머지는 전부 학원으로 빠지거나 돌봄교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4학년생을 둔 한 학부모는 “돌봄교실처럼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줄 알고 지원했는데, 그게 아니라 방과후학교 수업이 중간에 뜰 때 잠깐 들러서 시간을 때우는 용도로 운영되더라. 아이들의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취지는 좋지만, 서너 명밖에 안 되는 아이를 위해 연계형 교사를 별도로 고용하는 건 예산 낭비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초등돌봄교실 대상자를 전 학년으로 확대하고 예산도 20% 늘린다는 교육부 발표에 시·도교육청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누리과정과 마찬가지로 서비스만 확대했을 뿐 예산 지원은 한 푼도 없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2014년 1008억 원의 국비를 한 차례 지원했을 뿐 2년째 관련 예산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1월 19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도교육청 간부회의에서 “초등돌봄교실 사업은 누리과정보다 더 근거가 없다. 지방교육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교육부가 하라고 한다고 무조건 다 할 수는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으로 전국이 보육대란에 휩싸인 가운데 추가로 제기된 초등돌봄교실 예산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