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서울 도봉구의 한 부동산중개사사무소를 방문해 중개사와 대화를 나누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왼쪽). 8월 13일 경제 분야 정책비전을 발표하는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사진 제공 · 윤석열 캠프, 동아DB]
2022년 20대 대선을 맞아 유권자 간 격론이 벌어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의 수준이 각각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해보는 일이다. 양자택일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양쪽 모두 수준을 올려놔야 안전하고 희망도 있다.
한국 진보는 미국 조 바이든 정부처럼 할 수 있는가. 바이든 정부는 분배와 기후위기 극복에 획기적이면서도 정교한 대책을 내놓고 ‘21세기 뉴딜’을 추진한다. 한국 보수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정부에 비견할 수 있는가. 메르켈 정부는 진보 정당과 연정, 협력을 통해 안정적·실용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진보라고 다 같은 진보가 아니다. 보수라고 다 같은 보수가 아니다.
21세기 한국 정치는 진보로 일컬어지는 정부가 출범하면 국민 여론이 보수화하고, 보수라고 정평이 난 정부가 들어서면 여론이 진보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론 사이에서는 ‘시장 주도’ ‘작은 정부’ ‘민영화’ ‘토건 개발’ 욕구가 부상했고 이것이 이명박 정부로 이어졌다. 반대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복지 확대(또는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공공성 강화’ ‘친환경’ 같은 가치가 떠올랐지만 이 같은 흐름은 문재인 정부 이후 상당 부분 꺾였다.
부동산, 가장 실패한 정책
거꾸로 말해 야당은 정책 관련 여론에서 대체로 덕을 봤다. 이는 집권당이 심판받는 강력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야당인 쪽은 반사이익으로 표를 모아 집권하곤 했다. 성찰과 쇄신을 건너뛰고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도 야당 시절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다. 실권 5년 만에 탈환을 노리는 국민의힘도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 둘이 맞붙은 것이 지금의 대선 풍경이다.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가장 실패한 정책은 단연 ‘부동산’이다. 오늘날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앞다퉈 ‘적극적 공급’을 말한다. 주목할 것은 사과도, 자책의 기색도 없다는 점이다. 공급을 대거 늘린다고 주택 배분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급 확대를 경시하는 것이 진보적인 일은 아니다. 매매가와 전월세를 모두 잡아야 하는 이중 숙제를 감안하면 주택 보유자 증가나 임대인 보호 차원에서 공급 확대가 빠질 수 없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대로 주택을 빵처럼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현 정부 초반에 적어도 공급 확대 ‘신호’만큼은 확실히 줬어야 한다. 민주당 목소리에는 이러한 복기와 성찰이 빠져 있다.
국민의힘은 현 정부 실패를 자신감의 근거로 삼아 공급 확대를 거리낌 없이 외친다. 이들도 ‘상대 당과 반대로 하면 된다’는 늪에 빠져 있다. 예컨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를 계기로 ‘공공 주도 버리고 민간 주도로’를 주야장천 외치는데, 공공이 빠지면 자연발생적으로 획기적인 공급이 이뤄지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고도 그 말처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했다 실패하면 국민의 원성을 사 총선 또는 재보선 등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거나, 슬그머니 ‘공공의 역할’을 논의하기 시작하거나 등 민주당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문제는 부동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지나치게 ‘정부 실패’를 강조하면서 신화에 가까운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몇몇 실언 또는 설화가 그 사례다. “뒤처지는 국민에 대한 책임, 이건 국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소홀히 할 수 없다”(최재형 전 감사원장), “승자독식은 절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윤석열 전 검찰총장) 같은 ‘선언’은 있으되, 기존 보수에서 무엇을 보수(補修)하고 혁신해야 하는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노동시간이나 임금 관련 규제를 풀겠다면 생활 보장을 위한 밑바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복지다. 그 복지를 확대하겠다면 증세는 필수다. 각국 소득세와 복지 수준은 비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국민의힘은 증세를 여전히 죄악시하고 감세를 전가의 보도로 삼는다. 경제성장을 이루고 감세를 하면 투자가 활성화되고 수익이 올라 세수가 늘어난다? 국민의힘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실험 결과 오류로 판명 난 것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신화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선 시점에도 그대로 껴안고 있다.
지금 한국 대선의 자화상
민주당이 제시하고 구현한 분배정책은 좀 더 적극적이지만 매우 제한적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며, 자칫하면 불평등을 강화할 수도 있다.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사람이나 사각지대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남의 이야기다. 정규직화 후에도 비정규직으로 남은 사람은 여러 차별에 시달린다. 노동자 처지를 상중하로 분류한다면 민주당 정부의 정책은 ‘중’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하’에게는 도움이 안 되거나 더 나쁠 수 있다.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 확대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거듭 주창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정책도 중산층 편향이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사람을 돕는 효과를 내려면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 이치를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국한하려는 것은 ‘더 내는 거 없이 더 받으려는’ 중산층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자임해온 민주당은 중산층과 부유층의 차이는 좁히고, 중산층과 서민, 빈민의 괴리는 더 벌리는 길로 가고 있다.
복지에도, 주택 건설에도, 산업 발전에도 돈 들어갈 일이 숱하다. 기업과 자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든, 완화되든 최소한 정부 재정 확장에는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이 고령화 추세에 있고 기축통화국이 아님을 고려한다면 채무가 아닌, 증세로 재정을 확장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정치적으로 일방이 주도할 수 없고 반드시 대타협을 이뤄야 하는데, 이를 꺼리는 정당과 후보들만 두드러지는 것이 현 한국 대선의 자화상이다. 이를 깰 정치세력이 없다면 국민이 ‘진보든, 보수든 이것만큼은 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 각 정당의 쇄신을 견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