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암호화폐 채굴 공장. [GETTYIMAGES]
디지털 위안화와 충돌
4월 18~21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리보 런민은행 부총재. [사진 제공 · 보아오포럼]
투기 및 시장 교란 가능성도 암호자산의 문제로 꼽힌다. 암호자산에 투자자의 관심이 쏠리면서 상당한 자금이 투기자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암호자산의 가격 변동성 또한 높아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될 자본시장을 교란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5월까지 비트코인 가격은 5만7218달러(약 6457만 원)까지 상승했는데, 일일 시세 등락폭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기존 암호자산을 디지털 위안화와 엄격하게 구별 짓고 규제한 것으로 보인다. 4월 18~21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개최된 ‘보아오포럼’(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지역경제 포럼)에 참석한 리보(李波) 런민은행 부총재는 “비트코인은 투자 ‘자산’일 뿐 ‘화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류허(劉鶴)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5월 21일 개최된 중국 금융감독시스템 최고회의인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에 참석해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를 금지할 것”이라면서 “개인의 (투자 관련) 위험이 사회 전체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암호자산을 디지털 위안화와 명확히 구분하고 암호자산의 금융 리스크가 중국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시대 온다”
중국 당국의 강경한 태도는 최근 관련 법률 개정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암호법’을 통해 디지털화폐와 관련된 암호 기술을 관리하는 법적 시스템을 정비했다. 같은 해 10월엔 ‘중국인민은행법안’을 발표했는데 정부를 제외한 금융기관, 조직, 개인의 디지털화폐 제작 및 유통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이 뼈대다. 디지털화폐의 제작 및 유통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은 다른 국가의 암호자산 규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미국 통화감독청(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의 마이클 슈 청장 대행도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암호자산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슈 청장 대행이 언급한 규제 방안은 암호자산의 높은 투기성과 변동성을 경고하고 투자자 보호 및 과세 제도를 정비하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한국 정부도 세법을 개정해 2022년부터 암호자산으로 250만 원 이상 소득이 있을 경우 차익 20%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다. 원천 봉쇄(중국)와 투자자 보호 및 과세(미국·한국)에는 확연한 온도차가 있다.중국 정부의 거래 규제는 당분간 암호자산시장에서 분명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암호자산 규제를 발표한 후 글로벌 투자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에 공개된 비트코인 가격은 6월 21일 3만1583달러(약 3565만 원)까지 하락했다. 전 세계 투자자가 열광한 암호자산 열풍이 중국 정부의 서슬 퍼런 규제 앞에서 주춤하고 있다.
다만 암호자산 가격 하락에 대한 염려를 넘어 중국의 행보를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비즈니스스쿨 학장이자 ‘2030 축의 전환’의 저자로 유명한 마우로 기옌 교수는 최근 중국의 암호자산 규제를 “화폐 역사의 새로운 서막”이라고 평가했다. 기옌 교수는 “기존 암호자산보다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가 우위를 점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준비하는 중국. 최근 어느 나라보다 암호자산을 강하게 규제한 것에 이어 디지털화폐 생태계를 정부 주도로 디자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