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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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정물화 같은 애도 일기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나의 어머니’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5-10-05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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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크 정물화 같은 애도 일기

    ‘나의 어머니’의 주연배우 마르게리타 부이.

    난니 모레티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일관된 예술 스타일을 유지한 감독)다. 칸영화제의 단골 초대 감독이고, ‘아들의 방’(2001)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도 받았다. 이탈리아 사회의 관습을 풍자하는 모레티의 코미디는 유머와 통찰력으로 빛난다. 비전과 중심을 잃어버린 이탈리아 사회를 교황의 부재로 비유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의 자기비판적인 코미디를 떠올리면 되겠다. 풍자 코미디의 장인인 모레티의 작품이 남다른 미덕을 갖고 있다면, 그건 풍자 대상에 항상 자신도 포함시키는 성찰적 태도다.

    ‘나의 어머니’는 성찰적인 태도로 표현한 일종의 애도 일기다. 코미디적 요소는 대폭 줄이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한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영화적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는 대개 ‘어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주체할 수 없는 감상주의에 빠지곤 한다. 예술가라면 피해야 할 소비적 감정이다.

    ‘나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죽음을 앞둔 영화감독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 분)의 일상을 다룬다. 어머니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마르게리타가 촬영 중인 영화는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주연배우(존 터투로 분)는 대사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주제에 여전히 스타 대접을 요구하고, 스태프는 시간을 때우듯 건성으로 촬영에 임한다. 말하자면 ‘나의 어머니’는 두 요소의 악화, 곧 어머니의 죽음과 영화제작의 파행을 병렬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가 영화 만들기와 결합하면서 소비적 감상주의가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것이다.

    모레티의 영화는 이런 식으로 대개 ‘영화 속 영화’ 형식을 갖고 있다. 영화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장치인데, 그럼으로써 관객의 성찰적 태도를 일깨우는 것이다. 감정이입과 이에 따른 과도한 동일시보다 사유하는 순간을 더 고려한 미학적 태도다. 말하자면 모레티는 브레히트주의자인데, 바로 이런 특성이 그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일반 관객과 만나는 데는 여전히 약점으로 작동한다. 보통의 경우 관객은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상상되는 감정의 소비를 얼마간 준비하고 영화관에 들어서는데, ‘나의 어머니’는 그런 감상주의를 경계하는 태도를 시종 유지하고 있어서다.

    바로크 정물화 같은 애도 일기

    바로크 시대 화가인 아담 베르나에르트의 바니타스 정물화.

    ‘나의 어머니’는 죽은 모친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던 한 개인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 모두는 필멸의 운명이 아닌가. 마치 바로크 시절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그리던 화가들처럼 모레티는 어머니의 죽음을 형상화했다. 아름다운 과일이 금세 탐스러운 모습을 잃고 가장자리부터 부패해가듯, 우리의 삶도 시간의 명령 앞에 굴복하는 허무한 존재라는 순응이 자리 잡고 있다. 죽은 모친은 라틴어 교사였고 집엔 수많은 책이 유산처럼 남아 있는데, 영화는 그 책들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으로 애도 일기를 마친다. 마르게리타가 어머니의 서재에서 손때 묻은 책들을 쓰다듬는 장면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이자, 바로크 시절 정물화가의 허무함과 맞닿아 있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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