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타일의 셰리 와인.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뚱보 기사 폴스타프(Falstaff)가 하는 말이다. 이 말에서 ‘색’은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a) 지방 헤레스(Jerez) 마을에서 생산하는 와인 인 셰리(Sherry)를 뜻한다. 셰리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영국에선 튜더 시대부터 인기가 높은 술이다.
셰리는 팔로미노(Palomino)라는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에 증류주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인 강화 와인이다. 숙성 방식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지는데, 셰리의 맛과 향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소는 플로르(flor)다. 플로르는 셰리 위에 꽃처럼 하얗게 떠 있는 이스트 세포, 즉 효모균 막으로 셰리가 공기와 접촉하는 것을 막아준다. 따라서 플로르와 함께 숙성된 셰리는 연한 레몬색을 띠며 무게감이 가벼운 반면, 플로르 없이 숙성된 셰리는 오랜 산화 작용 때문에 갈색을 띠고 묵직한 느낌이다.
셰리는 솔레라(Solera)라는 독특한 방식을 이용해 3년 이상 숙성된다. 플로르가 있는 오크통과 없는 오크통을 구분해 나이순으로 쌓되, 가장 오래된 것을 맨 아래에, 가장 어린 것을 맨 위에 둔다. 병입은 반드시 맨 아래 오크통에 담긴 셰리를 일부 추출해 진행하고, 아래의 빈 부분은 바로 위 오크통의 셰리로, 그 위는 다시 또 그 위 오크통에서 뺀 셰리로 채운다. 이렇게 어린 와인을 묵은 와인과 단계적으로 섞어가며 숙성시키기 때문에 셰리 한 병을 얻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솔레라 방식이야말로 셰리의 맛과 전통을 유지하는 비법이다.
셰리의 대표적인 스타일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먼저 피노(Fino)를 들 수 있다. 피노는 플로르와 함께 숙성된 셰리로, 가볍고 섬세하며 풋사과와 헤이즐넛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피노를 헤레스 근처 해안가 마을인 산루카르(Sanlucar)에서 숙성한 것은 만사니야(Manzanilla)라고 부르는데, 습도가 높고 선선한 기후 덕분에 약간 짭짤한 맛이 난다. 피노와 만사니야는 올리브나 굴과 함께 즐기면 그 독특한 향미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솔레라 숙성 방식에 따라 위쪽 오크통에서 셰리를 빼 아래쪽 오크통에 채우는 모습.
셰리 중에는 달콤한 것도 있다.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페드로 시메네스)는 같은 이름의 포도를 말려서 만든 셰리로, 시럽처럼 찐득하고 당도가 높아 아이스크림 위에 끼얹어 먹으면 별미다. 올로로소에 페드로 히메네즈를 섞은 크림(Cream) 셰리는 케이크나 파이와 잘 어울리고, 피노나 만사니야에 포도즙을 섞은 페일 크림(Pale Cream) 셰리는 그 맛이 산뜻해 과일과 즐기기에 좋다.
셰리를 숙성했던 오크통은 스카치위스키 숙성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위스키에 셰리 특유의 은은한 견과류향이 배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위스키를 좋아하면 셰리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과 노력의 향미를 품은 셰리. 깊어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강화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