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발레리안)는 뤼크 베송 감독이 각본과 연출, 제작을 맡았다. 홍보사에 따르면 ‘뤼크 베송이 40년을 기다려온 프로젝트’이며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감독이 됐다’고 한다. 한 감독이 인생을 걸고 품은 야망의 집결체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발레리안’을 보다 보면 감독의 전작이 오버랩되곤 한다.
‘그랑블루’(1988) - 뛰어난 비주얼리스트
뤼크 베송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한 ‘누벨이마주’ 감독으로 분류됐다. 초기작 ‘그랑블루’(국내 개봉 1993)는 영상미가 돋보인 작품으로 꼽힌다. ‘발레리안’의 영상은 이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발레리안’에서 주인공 못지않은 비중을 가진 진주족과 그들의 거처인 뮐 행성 컴퓨터그래픽(CG)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랑블루’ 속 지중해의 푸른빛을 뮐 행성 바닷가에서 느낄 수 있다.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진주족은 피부색이나 형체, 몸매 등 전반적 풍모(?)가 전형적인 외계인임에도 꽤 예쁘다. 비주얼리스트로서 뤼크 베송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것을 실감하게 된다.
‘레옹’(1994) - 타고난 사랑꾼
미국 등에서 먼저 개봉한 ‘발레리안’은 ‘덩케르크’에 밀려 고전했다. 앞서 영화를 본 이들은 이야기가 다소 단조롭고 예측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주인공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도 눈에 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한 뤼크 베송 감독의 애호는 꽤 오래된 일인데, ‘제5원소’의 경우 지구를 구원할 제5원소가 사랑이었다. 잔인한 킬러지만 알고 보면 무척이나 인간적인 ‘레옹’ 역시 사랑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프랑스 블록버스터 거장의 믿음은 꽤 합당하다. 다가올 미래, 드넓은 우주 안에서 인간이 간직할 특질 중 그나마 가치 있는 게 사랑 빼고 또 있을까 싶으니 말이다.
‘제5원소’(1997) - 미래·외계인에 대한 사랑
미래와 외계에 대한 감독의 관심은 전작에서도 짐작 가능하다. ‘제5원소’의 시대적 배경이 2259년이고 미국 뉴욕이 중심이라면, ‘발레리안’은 좀 더 먼 28세기를 배경으로 3236종의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 우주 속에서 사건이 펼쳐진다. 심지어 일부 전투는 3, 4차원을 오가며 벌어져 이해하기 쉽지 않다. 동시에 28세기 전투에서 20~21세기적 해프닝(예컨대 공간 이동 기기의 고장을 고치려고 전선다발을 헤집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만 ‘제5원소’에서 감독이 보여준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광속 우주선 등이 20년 후인 지금 관심을 모으는 과학 이슈라는 점에서 ‘발레리안’의 설정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루시’(2014) - 동양인 배우 기용
스칼릿 조핸슨 주연 영화 ‘루시’는 최민식이 주연급 조연인 ‘미스터 장’으로 등장해 국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백인과 소수의 흑인 배우가 끌고 가던 기존 SF영화와 달리 ‘발레리안’에도 아시아계 우주인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과거 EXO 멤버로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계 배우 크리스 우의 비중이 꽤 크다. 영화 초반부에는 우주정거장에 중국 국기 이미지까지 노출되는데, 요즘 국제 정세를 반영한 설정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중국 투자자의 입김이 적잖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억9700만 유로(약 2600억 원)로 역대 유럽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데, ‘돈줄’의 상당 부분이 중국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