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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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브라질 부패 스캔들에 비틀

경기 침체, 선심성 정책, 뇌물…호세프 대통령 탄핵 위기, 룰라 전 대통령도 불똥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9-21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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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년간 잘나가던 남미 최대국가 브라질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뿌리는 이른바 ‘자원의 저주’. 천연자원에 의존해 경제가 급성장한 국가가 자원가격이 급락하자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철광석과 알루미늄 생산량 세계 2위, 흑연 세계 3위, 질석 세계 4위, 마그네사이트 세계 5위, 망간 세계 7위 등 주요 광물이 매장돼 있는 브라질은 말 그대로 자원의 보고다. 2007년과 2008년 대서양 연안의 상투스 만 심해에서는 대규모 유전과 천연가스전이 각각 발견됐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세계 10위권 산유국이 된다. 브라질은 또 매년 3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수출하는 농업국이기도 하다.

    10년 전부터 원자재 수출이 호황을 보이면서 세계 7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브라질은 남미의 맹주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중국의 경제 둔화와 이에 따른 원자재가격 폭락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분기와 2분기 각각 -0.7%, -1.9%.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2.44%와 -0.5%로 예상된다. 통화인 헤알화의 가치는 1년 사이 70%나 추락했다.

    국영회사 뇌물이 대선자금으로?

    사람들의 삶도 무너지고 있다. 8.3%를 넘어선 실업률로 실직자가 50만 명에 달한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브라질의 국가신용 등급을 ‘BBB-’에서 ‘BB+’로 강등해 정크(투자 부적격)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무디스와 피치 등 다른 국제신용평가사가 등급 하향 조정에 나설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의 엑소더스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브라질 경제 추락의 또 다른 이유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집권 노동자당 정부의 방만한 재정정책 때문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2011년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다양한 재정확대정책을 펴왔다. 특히 그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서민과 빈민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1400만 빈곤가구에게 현금보조금을 지급했고, 공공주택 278만 채를 건설해 제공했다. 유류보조금 지급, 전기요금 상한제 등 선심성 정책도 쏟아냈다. 지난해 치른 브라질월드컵을 위해 대규모 경기장을 지으며 건설경기 부양에도 나섰다.



    경제가 곤두박질치자 호세프 대통령은 뒤늦게 자신의 재정확대정책이 잘못됐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는 “지난 1기 정부(2011~2014) 때 정책을 재평가해 줄여야 할 것은 과감하게 줄일 것”이라며 “사회복지 등에 대한 재정 지출을 줄이는 긴축정책을 추진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등 경제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악의 경제 상황을 극복해야 할 호세프 대통령은 설상가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탄핵될 위기에 몰렸다.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 때문. 1953년 설립된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남미 최대 기업이다. 이 회사의 석유 생산량은 브라질 전체의 90%를 웃돌고, 직·간접 고용 인력은 40만 명에 달한다.

    노동자당 정부는 페트로브라스에 심해유전 독점개발권을 주면서 유전 설비의 80% 이상을 브라질산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페트로브라스는 이를 악용해 입찰 과정 등에서 각종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또 대형 건설사들이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뇌물을 페트로브라스 임원들에게 건넸고, 이 가운데 상당한 금액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대상에 오른 정치인만 노동자당 소속 상원의원 13명과 하원의원 22명, 주지사 2명을 포함해 모두 54명이나 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부터 페트로브라스 및 대형 건설회사의 임원들과 정치인들이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에두아르두 쿠냐 연방 하원의장과 대통령을 역임(재임 1990~92)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멜루 연방 상원의원을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기소했다.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37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상당액이 집권당 선거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자진 하야 압박하는 야당과 시민사회

    호세프 대통령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페트로브라스 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비리에 연루된 페트로브라스 임원도 대부분 그가 임명한 인물들이다. 당연히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불똥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 전 대통령에게까지 튀었다. 브라질 사정당국은 연방대법원에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수사를 위해 룰라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전·현직 관료에 대한 수사 승인 요청서를 제출했다. 요청서에는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정부 혹은 정당을 위해 페트로브라스의 불법관행이 계속되도록 정치적으로 지원했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룰라 전 대통령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두 차례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브라질 경제의 호황을 이끈 당사자로, 호세프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하다.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 밑에서 2003년 에너지부 장관과 2005년 수석 장관(국무총리)을 지냈다. 그가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 역시 룰라의 적극적인 후원 덕분이었다.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다. 여론 악화를 의식한 그는 9월 7일 독립기념일 TV 연설까지 취소했다.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TV 연설을 취소한 것은 2003년 이후 처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해 10월 재선된 호세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는 긍정 8%, 부정 71%로 나타났다. 대통령 탄핵에도 66%에 이르는 찬성 의견이 28%의 반대 의견을 압도하고 있다.

    브라질 헌법에 따르면 상·하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 하지만 양원 모두 여당 소속 의원 수가 과반이라 실제로 탄핵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이 때문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탄핵을 위한 초당적 기구를 구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진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호세프 대통령은 “대통령직 사임을 생각해본 적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것이겠지만 그 역시 기대 난망이다. 경제 침체와 부패 스캔들이라는 최악 위기에 빠진 브라질의 탈출구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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