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3

2022.01.14

정의선,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왜?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지배구조 개편 위한 실탄 마련’ 해석도, 현대차그룹 “글로비스 주주가치 제고 및 시장 불확실성 해소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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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입력2022-01-1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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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글로비스.[사진 제공 · 현대글로비스]

    현대글로비스.[사진 제공 · 현대글로비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그룹’에 매각했다. 현대글로비스에 따르면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1월 5일 오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를 통해 각각 123만2299주(3.29%), 251만7701주(6.71%)를 칼라일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 리미티드’에 매각했다. 주당 매각가는 16만3000원으로, 이번 지분 매각으로 정 회장은 2009억 원, 정 명예회장은 4104억 원가량을 확보하게 됐다. 이로써 현대글로비스 최대주주인 정 회장의 지분은 23.29%에서 19.99%로 줄었고, 지분 전량을 처분한 정 명예회장은 주주 명단에서 빠졌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 주주가치 제고와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번 블록딜을 통해 칼라일그룹은 정 회장과 노르웨이 해운그룹 빌 빌헴슨 아사의 자회사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에이에스’(11%)에 이어 현대글로비스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한 칼라일그룹은 주주 간 계약에 따라 현대글로비스 이사 1인을 지명할 수 있게 됐다.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추가로 매각할 경우 동반매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태그얼롱·Tag-along)도 확보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태그얼롱 권리를 그룹 총수가 외국계 펀드에 부여한 것은 현대차그룹으로선 전례 없는 일”이라며 “정 회장과 칼라일그룹 간 신뢰가 돈독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칼라일그룹이 정 회장 우군(友軍)을 자처하는 이상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감소에 따른 지배력 축소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2019년 정 회장은 칼라일그룹이 서울에서 개최한 투자자콘퍼런스에 참석해 이규성 칼라일그룹 최고경영자(CEO)와 30분간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지금까지 우호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CEO는 운용자산 규모가 300조 원에 이르는 칼라일그룹의 한국계 CEO로, 2020년 단독 CEO로 임명된 이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공정거래법 규제 벗어나

    2019년 칼라일그룹이 서울에서 개최한 투자자콘퍼런스에 참석해 대담을 나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이규성 칼라일그룹 최고경영자.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2019년 칼라일그룹이 서울에서 개최한 투자자콘퍼런스에 참석해 대담을 나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이규성 칼라일그룹 최고경영자.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재계에서는 일단 이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을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 개정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계열사의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였는데, 지난해 12월 30일부터는 이 기준이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20%로 강화됐다. 이번 매각으로 정 회장 일가 지분율은 19.99%로 떨어져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앞서 2015년에도 정 회장 부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앞두고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한 바 있다. 당시에는 상장사 기준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일 경우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각각 322만2170주, 180만 주를 주당 23만500원에 매각했고, 두 사람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43.39%에서 29.99%로 줄어들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이 현대글로비스 주가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지분 매각 다음 날인 1월 6일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급등했다. 전날 대비 6.36% 오른 18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잠재적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된 데다, 그동안 소액주주들이 우려했던 대주주 지분 매각 관련 오버행(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 이슈가 완전히 해소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사모펀드가 지분을 인수했다는 것 자체가 현대글로비스의 장기 비전이 긍정적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시장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규제 부담을 해소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 및 경영 승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그 준비 과정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정 회장은 공정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 공식 총수로 올라섰지만 그룹을 장악하지 못했다. 순환출자가 발목을 잡으면서 지분 승계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질적 지주사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 필요

    현대모비스. [사진 제공 ·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 [사진 제공 · 현대모비스]

    현대차그룹은 10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출자가 이어진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1.43%, 현대차는 기아 지분 33.88%, 기아는 현대모비스 지분 17.28%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복잡하게 얽힌 순환절차 고리를 끊고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 지주사 체제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를 핵심 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분리한 뒤, 모듈·AS부품 사업을 정 회장 지분이 많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대로 무산됐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당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 주식 총 1조 원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9년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자신들이 뽑은 사외이사 후보 3명의 신규 선임을 제안하며 경영권까지 위협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정기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이겨 경영권을 방어했다. 2020년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그룹 3개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고 철수했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그룹 핵심 3사 지분율은 낮은 편이다. 따라서 이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자금으로 주요 계열사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회장은 현대차 2.62%, 기아 1.74%, 현대모비스 0.32%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기아 17.28%, 정 명예회장 7.15%로, 정 명예회장 지분을 모두 물려받아도 정 회장 지분은 7.47%에 불과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나스닥 상장 주목

    정의선 회장이 1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 개 ‘스팟’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1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 개 ‘스팟’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지분 승계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윤곽이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 현재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으로 2000억 원 이상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또한 정 회장이 11.72%, 정 명예회장이 4.68% 지분을 가진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이 다음 달 예정돼 있는 만큼, 상장 후 주식 매각을 통해 추가 자금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총 1600만 주를 공모하며, 이 중 75%인 1200만 주는 구주 매출(대주주나 일반주주 등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로 구성됐다. 희망 공모가는 5만7900~7만5700원이다. 정 회장이 자기 보유분(890만3270주)의 60%(534만1962주)만 매각해도 3093억~4044억 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자금까지 합하면 6000억 원 넘는 실탄을 확보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주식 매각 자금을 활용해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월 5일(현지시간) ‘CES 2022’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방탄소년단 노래에 맞춰 공연하는 로봇 개 ‘스팟’.[GettyImages(왼쪽), 뉴스1]

    1월 5일(현지시간) ‘CES 2022’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방탄소년단 노래에 맞춰 공연하는 로봇 개 ‘스팟’.[GettyImages(왼쪽), 뉴스1]

    정 회장이 추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지분율이 높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거나 상장을 추진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지난해 로보틱스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자 공동투자로 인수한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대표적이다. 정 회장은 사비 2400억 원가량을 들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지분 20%를 확보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 개 ‘스팟’은 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22’에서 주목받았다. 방탄소년단 노래에 맞춰 칼 군무를 선보여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향후 나스닥 상장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안정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선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요하며, 이때 가장 필요한 건 승계 자금”이라면서 “그간 정 회장은 자산을 늘리고자 여러 일을 도모해왔고 보스턴다이내믹스 투자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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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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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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