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룩 업’ 포스터. [네이버영화]
현모 오, 드디어 ‘돈 룩 업’을 룩업(look up) 하셨어요? 재밌으셨죠?!
영대 사람들이 그렇게 보라고 얘기한 이유가 있었네요.
현모 저는 영대 님 보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한 번 더 봤어요. ㅋㅋ
영대 현실을 무척 재미있게 풍자했더라고요.
현모 그죠. 반가운 얼굴도 많이 나오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깨알같이 현 세태를 그대로 보여주죠.
영대 특히 언론과 미디어가 어떻게 본질을 흐려 대중을 선동하고 양분화하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했더라고요. 여기엔 레거시 미디어(TV, 신문, 라디오 등 전통 미디어)뿐 아니라 인터넷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포함되고요. 진실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이죠.
현모 지금 ‘SNS도 포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것도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요즘은 누구나 휴대전화만 있으면 정보를 게재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개개인이 전부 미디어잖아요. 미디어의 일그러진 모습도 어찌 보면 인간의 본래 속성 같아요. 우리가 남 얘기할 때 사실 여부나 정보 가치보다 대부분 가십거리 위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저 재미있어서 혹은 자기 이해관계에 부합하니까 말을 옮기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영대 그죠. 그래도 과거엔 언론 기능을 하는 주체가 소수라서 그 나름 책임감이나 사명을 갖고 정보를 다뤘는데, 이젠 언론 역할을 너도 나도 하다 보니 언론사나 언론인으로서 책임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현모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정확한 감시자이자 팩트 체커가 사라져버린 사회에서 결국 ‘저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이 돼버린 건 아닐까’ 하는 점이었어요.
영대 어휴, 선거도 마찬가지잖아요. 논리적, 합리적으로 정책을 비교하고 따져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을 계속 뽑는 식.
현모 개인적으로 진짜 시나리오가 기발하다고 느낀 대목이 있는데, 처음 주인공들이 백악관에 갔을 때 장군이라는 자가 생수랑 과자를 나눠주면서 현금을 받아 챙기잖아요. 알고 보니 그건 탕비실에서 공짜로 가져갈 수 있는 비품이었고요. 그런데 그게 단지 웃고 넘어가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후반부에 여주인공이 한 번 더 그 일을 회상하면서 여전히 의문을 제기해요. 도대체 그 높으신 양반이 왜 우리한테서 푼돈을 뜯어갔을까 궁금해하죠.
영대 기억나요. ㅋㅋ 마치 그의 일생일대 질문인 것처럼 묻죠.
현모 그게 어찌 보면 영화 전체 주제를 함축하는 거 같아요. 한마디로 백악관에 처음 와봐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없는 일반 대중인 거고, 군인으로 상징되는 정부나 권력자들은 정보 비대칭을 악용해 대중을 속이고 편익을 취하는 거죠. 그리고 그 편익이라는 게 단순히 몇 푼 안 되는 돈을 손에 넣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정보력, 즉 힘을 이용해 남을 제멋대로 손쉽게 조종하고 움직이는 일 자체를 즐긴 걸 거예요.
영대 더 웃긴 점은 그 거짓말이 금방 쉽게 탄로 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지금 당장만 안 걸리면 된다는 식으로 안면몰수하는 거잖아요.
현모 shame(수치심, 부끄러움)이라곤 없는 거죠. 일단 목적만 달성하면 되고, 나중에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는 뻔뻔함.
영대 마치 몇 달, 몇 주만 있으면 혜성이 지구에 떨어질 텐데 일단은 아니라고 모르는 척 잡아떼는 거처럼요.
지구를 파괴할 혜성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리기보다 대중을 양분화해 이용하는 권력층과 미디어를 비판한 영화 ‘돈 룩 업’.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영대 어휴, 정말 씁쓸하네요. 점점 삶의 모든 이슈가 A 아니면 B, 이편 아니면 저편 중 하나로 입장을 강요당하는 거 같아요. 그게 정치와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어떤 과정이나 내용이 궁금한 게 아니라, 그래서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이분법적 결론을 내야만 하나 봐요. 선거철이라 더 그런 듯해요.
현모 밸런스 게임을 강요하는 시대로군요. ㅋㅋㅋ 이 땅에는 수많은 색상이 있고, 심지어 흑색과 백색 사이에도 무수한 회색빛 그러데이션이 존재하는데, 꼭 ‘짜장면 or 짬뽕’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게임처럼 오로지 흑백 프레임만으로 사람을 규정하려는 거죠. 예컨대 문제풀이 과정은 보지 않고 정답만 요구하는 수학시험처럼요. ㅋㅋ
영대 심지어 개인도 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듯, 주제에 따라 혹은 시기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낼 수 있는데도 그런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현모 완벽히 공감해요. 마치, 짜장면이나 짬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탕수육 ‘부먹’이나 ‘찍먹’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 주제인데도 그 모든 답변을 서로 동일한 틀로 연결 지으려 하는 시도와 같다고 봐요.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지난번에 짬뽕이 좋다고 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찍먹이 좋다고 할 수가 있냐” “속았다 배신이다” 하고 욕하는 거죠.
영대 그러니까요. 게다가 어제는 짬뽕을 먹었어도 오늘은 짜장면을 먹을 수도 있잖아요.
현모 이런 편 가르기가 지속됐을 때 결론은 자명하다는 점을 영화 마지막 엔딩이 보여주죠.
영대 크으…, 기가 막힌 엔딩을 차마 여기서 스포할 수는 없고….
현모 그건 어떻게 보셨어요? 그 와중에 진정한 실세는 거대 IT(정보기술)기업 수장이잖아요. 막대한 자본력으로 대통령마저 성을 뺀 이름으로 부르면서 한 국가, 아니 전 세계 운명을 결정짓죠. 근데 그 최고경영자(CEO)가 남자 주인공(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에게 “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당신 죽음까지도 내다봤다”고 하죠. 알고리즘에 의하면 당신은 혼자 죽는다고. 그렇지만 그 예측이 명백히 빗나간단 말이에요.
영대 알고리즘이라고 100% 정확하진 않다는 뜻이죠.
현모 그죠. 그게 전 매우 디테일한 부분이긴 하지만, 역시 통쾌하면서도 재치 있게 느껴졌어요. 요즘 온통 AI나 알고리즘에 대한 일종의 신화랄까, 알고리즘 만능주의 같은 게 생겨나는 듯한데, 제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 할지라도 알고리즘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는 작은 경고인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데이터나 알고리즘이란 게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용 주체와 용도에 맞게 그에게 유리한 구실이나 방편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메시지인 거 같기도 했어요.
영대 그럼요. 영화에서도 맥락상 그 CEO가 남자 주인공을 겁주고 위협하려는 목적으로 알고리즘이 어쩌고 들먹인 거니까요. 실제 데이터 값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당시 사용자는 어쨌든 알고리즘을 일종의 무기로 사용한 거고, 상대방은 그 앞에서 살짝 무력감을 느끼죠.
현모 알고리즘에 관해서는 할 얘기가 한참 남았는데, 우리 다음에 이어서 더 나눌까요?
영대 그래요! 그럼 ‘안고리즘’에 꼭 입력해두세요. 까먹지 않게. ㅎㅎ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