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무증상 감염자, 中 코로나 재발의 뇌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4-08 15: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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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4월 4일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GT]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4월 4일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GT]

    중국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통계 가운데 ‘리커창(李克强) 지수’라는 것이 있다. 리커창 지수는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랴오닝성의 경제성장률이 조작돼 신뢰할 수 없다”며 “전력 사용량, 은행 대출, 철도화물 운송량 등 3가지 지표를 대신 살펴봐야 한다”고 밝힌 데서 비롯됐다. 이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리 총리가 제시한 3개 지표에 각각 가중치를 더해 지수로 만든 후 ‘리커창 지수’라고 명명했다. 리커창 지수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도 그동안 각종 통계 수치를 정확히 발표하지 않아 서방을 비롯해 국제사회로부터 불신을 받아왔다.

    4월 1일부터 무증상 감염자 통계 발표

    중국 우한의 한 화장장 앞에 유가족들이 유골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 [Epoch Times]

    중국 우한의 한 화장장 앞에 유가족들이 유골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 [Epoch Times]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도 중국 정부가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조작하거나 은폐했다고 국제사회는 의심해왔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무증상 감염자를 코로나19 확진자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3월 23일 중국 내부 비밀 보고서를 인용해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가 4만3000여 명에 달하지만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 빠졌다’고 특종 보도했다. 

    무증상 감염이란 발열이나 기침, 인후통 등 자각 증상뿐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식별 가능한 징후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코로나19 확진자를 분류할 때 무증상 감염자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환자 통계에서 무증상 감염자를 제외해왔으며 그 수도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는 3월 5일 각 지방정부와 지역 위건회에 무증상 감염자도 확진자와 합쳐 보고하라고 지시했지만 이틀 뒤 다시 기준을 바꿔 별도로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무증상 감염자들을 확진자 통계에서 제외시킨 의도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됐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전하려는 목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위건위는 중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4월 1일부터 매일 무증상 감염자 통계를 별도로 발표하고 관리 상황 등도 대외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자국 통계에 대한 불신을 무마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가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통계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진자 수가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던 2월 위건위는 확진자 판정 기준을 일주일 새 3번이나 바꿨다. 의사가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임상진단 환자를 확진자에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후베이성 등에서 신규 확진자가 하루 만에 1만5153명이 늘었다. 그러자 위건위는 일주일 뒤 다시 임상진단 환자를 통계에서 제외했다. 이 때문에 신규 확진자 수가 대폭 줄어들자 의혹이 제기됐고, 위건위는 다시 임상진단 환자를 포함시켰다. 말 그대로 ‘고무줄 통계’였다.

    허난성, 주민 60만 명에게 외출 금지령

    중국 우한의 한 화장장 앞에 유가족들이 유골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  [Epoch Times]

    중국 우한의 한 화장장 앞에 유가족들이 유골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 [Epoch Times]

    특히 더욱 중요한 점은 무증상 감염자를 다시 통계에 포함시킨 진짜 이유가 전파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최고 호흡기 질환 전문가인 중난산(鐘南山) 공정원 원사는 “코로나19의 전파력은 확진자가 2~2.5명인 데 비해 무증상 감염자는 3~3.5명에 달해 더 위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저장성 닝보시 위건위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저장성 닝보시의 확진자 157명과 무증상 감염자 30명을 추적해 밀접 접촉자 2147명을 조사한 결과 110명이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 가운데 22명은 무증상 감염자로 나타났다. 이 논문은 밀접 접촉에 따른 감염률이 확진자는 6.3%, 무증상 감염자는 4.11%로 별 차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 우한 화중과학기술대 부속 퉁지의학원과 상하이 푸단대, 미국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논문도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에서 전체 감염자의 59% 이상이 무증상, 경증환자 등 확인되지 않은 사례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연구팀도 중국 내 코로나19 발병 사례 450건 중 10%가량이 무증상 감염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는 무증상 감염자를 코로나19 재발의 뇌관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무증상 감염자를 통계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장원훙(張文紅) 푸단대 부속 화산의원 감염과 주임은 “무증상 감염자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10월에 2차 감염이 폭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무증상 감염자는 4월 1일 통계를 공개한 이후 그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中 코로나19 사망자 너무 적다’ 의구심

    중국 우한의 한 화장장에 유골함이 쌓여 있다. [중국 차이신]

    중국 우한의 한 화장장에 유골함이 쌓여 있다. [중국 차이신]

    중국 정부는 뒤늦게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강력한 통제 조치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허난성 핑딩산시 자현 정부는 3월 31일부터 주민 60만 명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모든 가구는 이틀에 한 번씩 가구당 1명만 외출해 식료품을 사올 수 있고, 다른 목적으로 외출하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력, 물류, 의료, 식품 가공 등의 기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 활동도 중단됐다. 슈퍼마켓과 식료품점, 약국, 주유소, 호텔을 제외하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자현 정부가 우한 봉쇄령과 비슷한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은 코로나19 재발 우려 때문이다. 우한에 파견을 갔다 돌아온 자현 한 병원의 의사는 동료 2명과 친구 1명에게 코로나19를 전염시켰다. 이 의사는 무증상 감염자로 밝혀졌다. 그가 언제 우한에서 돌아와 얼마나 병원에서 근무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자현 정부가 ‘봉쇄 조치’까지 내린 것은 코로나19가 상당히 확산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무증상 감염자가 코로나19를 재발시킬 것으로 보이자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중앙영도소조 조장인 리 총리가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검사와 추적, 격리, 치료를 잘해야 한다”고 지시까지 내렸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무증상자에 대한 관리 강화와 해외 유입 확진자 차단이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마지막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비교할 때 너무 적다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SCMP는 ‘익명의 우한시 관리가 1월 중순부터 2월까지 혼란스러운 시기에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지 않고 사망했을 경우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병원들이 환자들로 꽉 차면서 입원도 하지 못한 채 자택에서 사망한 확진자도 많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유골함을 받으려고 화장장에 유가족이 길게 줄을 선 사진 등을 바탕으로 ‘우한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2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중국 검역관들이 공항에서 외국인 입국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CGTN]

    중국 검역관들이 공항에서 외국인 입국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CGTN]

    미국 ‘뉴스위크’는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2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정보기관도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보기관이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실제보다 적게 집계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제시한 통계 수치는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도 “의료계는 중국 정부의 통계 자료를 실제보다 적은 것으로 해석한다”고 밝혀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통계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중국의 통계가 실제보다 적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매체들은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에 대한 은폐와 조작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하고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만 전력을 다하라”고 반박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통계 은폐와 조작 여부는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지만 무증상 감염자가 코로나19 재발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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