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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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볼보車, 시장 판도를 바꾸나

뱀이 코끼리 삼킨 사건 세계가 주목 … “호랑이 풀어주겠다” 공격 경영 선언

  •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입력2010-04-20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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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서도 간절히 바랐다(夢寐以求).”

    중국 토종 자동차업체가 세계적인 명차 볼보를 인수하기로 하자 관영 신화통신은 이렇게 타전했다. 중국 언론은 물론 세계 언론들도 이번 인수합병을 두고 중국 자동차산업이 질적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세계 자동차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3월 28일 중국 저장(浙江)성의 지리(吉利)자동차는 미국 포드자동차로부터 볼보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대금은 18억 달러(약 2조500억 원)로 중국 자동차업계 해외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다. 지리는 볼보의 채무상환을 비롯한 재무구조 정상화 등을 위해 인수대금 외에 9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볼보 인수에 따른 총자금은 27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포드가 11년 전인 1999년 64억5000만 달러에 사들인 것에 비하면 ‘헐값’에 불과하다. 더구나 포드는 볼보를 사들인 뒤 40억 달러를 더 투입했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서 2만2405대 판매

    세계인은 놀라워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927년 창립된 볼보는 스웨덴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대표해온 명차 브랜드다. 비록 적자 상태라지만 볼보가 83년 동안 다져온 명차 메이커로서의 탄탄한 입지에 이견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반면 지리는 세계적 명성은 고사하고 중국 내 성적도 신통하지 않다. 1997년 설립된 신생 메이커로 현재 중국 내 6개 공장에서 연간 3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그친다. 저장성 출신 리수푸(李書福·47) 동사장(이사회 의장이면서 회장)이 산전수전 겪으면서 사업을 키워낸 스토리가 흥미로울 뿐이다. 이번 인수합병을 두고 많은 언론이 ‘뱀이 코끼리를 먹었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

    적자 상태의 볼보는 중국시장을 자양분 삼아 명실상부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중국시장을 볼보의 ‘텃밭’으로 만들겠다는 것. 리 동사장은 “볼보는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다. 호랑이를 우리에서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볼보는 지난해 중국에서 2만2405대를 팔았다. 경쟁상대인 아우디는 볼보보다 약 7배 많은 15만 대를 팔았다. 이는 볼보의 지난해 세계 판매량의 절반가량이다. 중국 소유가 된 볼보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을 지켜볼 일이다. 지리는 2015년까지 중국시장에서 볼보 2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공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라는 든든한 ‘백’도 있다. 우선 관용차시장이 주목된다. 중국 일부 언론은 이 시장에 볼보가 진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확한 수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앙 및 지방정부, 국영기관 등이 2007년 구입한 관용차가 약 50만 대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관용차가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6%에 이르렀다는 것.

    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가 발행하는 주간지 ‘환추(環球) 인물’은 최근 관용차시장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관용차 구매의 3대 조건은 안전성, 편리성, 성능인데 중국차는 안전에 문제가 많아 관용차로 채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국산품 장려정책에 따라 국산차를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구입하게 했고, 현재 관용차 중 국산 비율이 10%를 조금 넘는다. 중국의 관용차는 폴크스바겐, 아우디A6 등이다.

    지리·볼보車, 시장 판도를 바꾸나
    흥미로운 점은 지리가 이번 인수합병으로 ‘안전’을 해결했다는 것. 볼보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명예를 갖고 있다. 지리는 볼보 차종의 지식재산권을 모두 이전받기로 해 인수합병 효과를 극대화했다.

    물론 중국시장에만 안주할 태세는 아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합병으로 중국차의 세계시장 공략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은 지난해 1364만 대의 자동차를 소비한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이다. 생산량도 1379만여 대로 세계 1위다. 모습은 화려하지만 중국 자동차는 아직도 국내용일 뿐이다. 해외 수출물량은 초라할 정도로 형편없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의 수출량은 37만여 대에 그쳤고 전년보다 44.7%나 하락했다.

    이번 인수합병이 내수용에 머물러온 중국차의 세계시장 진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자동차기술연구중심 수석전문가 황융허(黃永和)는 “중국차의 ‘쩌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에 새로운 통로를 열고 근본적으로 중국차의 국제적 이미지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다. 룽궈챵(隆强)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연구원도 “그동안 갈망했던 국제적 브랜드와 국제 판매루트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며 “중국 자동차산업은 도약의 지름길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해외 평가도 좋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무게중심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스웨덴 언론에는 ‘세계 산업의 신질서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일부 전문가는 지리가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 국제 브랜드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내비치고 있다. 지리는 이번 인수합병 자금 27억 달러 중 절반은 중국에서, 나머지는 미국 등 해외에서 조달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지리 자체 자금은 중국 내 자금의 절반 이상으로, 결국 전체 4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리수푸 동사장 “2년 안에 흑자 전환”

    징쑤치(景素奇) 텅쥐다(騰駒達)관리고문공사 동사장은 리 지리 동사장 등과 가진 ‘난팡(南方)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기업이 국제 브랜드를 합병한 뒤 계속되는 자금 투자로 허덕이는 경우가 있었다”며 “지나치게 낙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 마광위안(馬光遠)도 “아직 20보를 걸었다고밖에 할 수 없고 80보가 남았다”며 “성공까지는 난관이 아주 많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리 동사장은 “볼보가 적자인 것은 세계 금융위기로 판매량이 급감하고 원가가 높기 때문”이라며 “중국 같은 신흥시장을 개척하고 원가를 낮추면 2년 안에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단 볼보 인수가 한국 자동차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현대차는 중국시장에서 상품으로는 지리 또는 볼보와 충돌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중국차는 아직까지 한국시장에 본격 진출하지 않았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지리가 볼보로부터 배운 기술을 활용하면 한국차뿐 아니라 세계 모든 메이커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베이징 현대차 관계자는 “지리가 볼보의 기술을 활용하기까지 상당한 경험이 필요한 만큼, 우리가 대처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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