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7

2004.03.25

자이툰 감춰진 특명 “석유 챙겨라”

OPEC 감산 등 석유위기 조짐 속 유일한 카드 … 군정 경험·전후 특수 참여 등 ‘세 토끼 몰이 작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03-18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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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툰 감춰진 특명 “석유 챙겨라”

    파병을 앞두고 유사시를 대비해 훈련하는 한국의 자이툰 부대원.



    이제부터 이라크 사태를 살펴보는 키워드는 대량살상무기(WMD)가 아니라 석유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한국군 자이툰 부대의 파병 예정지인 이라크 타밈주(주도 키르쿠크)는 전 세계 원유의 6%가 매장돼 있는 손꼽히는 유전지대다. 최근 이곳에 석유와 관련해 큰 변화가 있었다. 전쟁 기간 동안 끊어져 있던 송유관이 3월 초 복구된 것. 이로 인해 하루 30만 배럴이던 이라크의 전체 원유생산량이 36만 배럴로 늘어났다.

    이라크에서 석유는 사활 그 자체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행정은 이라크인으로 구성된 과도통치위원회(IGC)가 담당하나 실제적으로는 미군이 중심이 된 다국적군 군정(軍政)기구인 연합임시행정기구(CPA)가 이끌고 있다.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후세인 정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라크 원유를 담보로 대규모 기채(起債)를 벌여 재건사업을 펼치려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석유는 미래를 담보하는 ‘탯줄’과 같다.

    반면 이들의 반대세력에게는 이 탯줄을 자르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군이 중심이 된 다국적군 사령부(CJTF-7)가 맡고 있는 임무가 이 반대세력의 제거다. 그런데 CJTF-7에 참여한 다국적군 사이에서 약간의 생각 차이가 있다. 미국은 IGC와 CPA는 물론이고 CJTF-7에 대해서도 실제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총력을 다해 소탕작전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반대세력의 최우선 타깃은 미군이다.

    ‘평화와 재건’ 명분 … 미군 입장에선 “별로”



    이런 상황에서 나머지 30여개국 군대는 미군과의 차별화를 위해 반대세력 소탕보다 재건사업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면서도 미군이 반대세력을 소탕하면 ‘참전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 복구’라는 특수(特需)에는 적극 참여할 생각을 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를 파병하는 한국 역시 이 같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원래 미군은 6개월 단위로 이라크 주둔 부대를 교체하려고 했는데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1년 이상 주둔하는 부대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쟁 피로 증후군’이 확대돼 자살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병사가 발생했다. 사고가 생긴 부대는 하루빨리 교체해주어야 다른 부대의 사기가 유지된다. 때문에 미군은 4월쯤 이라크 주둔 미군 13만명을 빼내고 11만명을 새로 투입하는 사상 최대의 부대 교체작전을 감행한다.

    ‘물을 건널 때는 말을 바꿔 타지 말라’는 격언이 있지만 말을 교체해야만 하는 것이 지금 미군의 사정인 것이다. 부대 교체라는 취약기에 대비해 미군은 최근 더욱 강하게 소탕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자 바그다드 등 중부지역에 있던 반대세력이 북쪽으로 퇴각하면서 그동안 안전지대로 알려졌던 타밈주 등이 위험지구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포클레인’을 앞세워 이곳에 들어가려고 한다.

    자이툰 감춰진 특명 “석유 챙겨라”

    자이툰 부대의 경계 임무 훈련.

    미군은 이러한 한국군의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미군측은 “그렇게 안일하게 들어왔다간 당한다. 반대세력이 한국군이라고 해서 환대해줄 것 같으냐”라고 지적한다. 현지 정보는 물론이고 헬기 전력까지도 지원받아야 하는 한국군으로서는 이러한 미군측 경고를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나 미군의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반대세력의 눈에는 한국군이 미군과 똑같은 존재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게 한국군측의 고민이다.

    타밈주에 9개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미군은 당초 한국군에 이 기지를 모두 내줄 계획이었으나 송유관이 복구된 타밈주가 시끄러워지면서 5곳만 한국군에 넘겨주고 4곳은 미군이 그대로 쓰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타밈주에서 한미 양국군이 공동작전권을 행사할 것 같다는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이 자이툰 부대를 파병하는 첫 번째 이유는 ‘5000년 역사에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군정을 해보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한국군은 전투술에서는 세계적인 경지에 올라서 있지만, 군정이라는 ‘형이상학의 세계’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군정은,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을 부드럽게 한국에 편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연습해두어야 할 분야다. 더구나 지난해 작전계획 5027이 북한 지역을 수복하면 한국군이 중심이 돼 민사작전(군정)을 펼친다는 쪽으로 개정돼, 한국군은 반드시 군정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한국군의 두 번째 파병 이유는 석유다. 3월9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4월부터 원유생산량을 4% 감산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와 별도로 사우디는 한국과 일본에 배정하는 원유량을 12%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석유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기존 물량을 유지한다고 통보했다. 이는 중국이 무기를 수출하며 사우디와 가까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국제 유가보다 1%포인트 정도 비싸게 원유를 사주는데 사우디가 물량 축소를 통보한 것이다.

    석유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대비책이 마련돼 있다. 일본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써가며 이란과 협상을 벌여 2월18일 세계 네 번째이자 이란 최대인 아자데간 유전(매장량 260억 배럴 추정)의 개발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또 최근에는 러시아와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할 수 있는 시베리아 송유관을 2009년까지 일본 쪽으로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은 유전을 확보하지 못해 이라크산 석유 확보에 ‘목을 걸어야 할’ 처지다. 그래서 미국이 “타밈주에 파병하겠느냐”는 제의를 했을 때 선뜻 받아들였던 것이다. 당시의 한국은 미군과 다르게 포클레인을 앞세워 ‘우아하게’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워 어렵게 국회 동의를 받아냈다. 그런데 지금은 현지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한국의 이러한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미군은 “그렇게 엉성한 장비로 들어갔다간 오히려 총알받이가 되기 십상이다”며 중무장을 권하고 있다. 미군 일각에서는 “한국군을 믿고 맡겼다가 자칫 반대세력이 타밈주의 송유관을 파괴해버리면 더욱 사태가 복잡해진다. 차라리 미군이 이 지역을 맡는 게 낫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군과 한국군의 공동 작전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우아한’ 파병이라는 명분과 ‘중무장’ 파병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군 파병과 관련해 최악의 상황은 현지에 도착한 자이툰 부대가 곧바로 반대세력의 공격을 받아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 이렇게 되면 희생자 가족의 절규와 함께 파병 반대시위가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 아울러 청와대와 국가안보회의(NSC), 국방부 쪽으로는 “너무 허술하게 군을 파병했다”는 지적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한국은 명분은 물론이고 현실까지도 잡아야 한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은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 사상 초유의 군정 경험 축적과 석유 확보라는 절체절명의 명령, 그리고 이라크 전후 특수에 적극 참여한다는 ‘다목적’을 이루기 위한 원대한 포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다목적 달성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파병은 미래 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승부수 중 하나다. ‘가면 잘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파병하지 말고 최선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필요하다면 파병 시기를 연기하더라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지금 동아일보가 펼치는 ‘이라크에 축구공 보내기’ 캠페인을 확대해 국민적 관심도 증폭시켜야 한다. 이라크 유전 확보는 결국은 민간기업이 해야 하므로 자이툰 부대에 민간기업 대표를 참여시켜 이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까지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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