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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사고날 뻔’ 비일비재

근접비행으로 인한 위험 한 달 평균 3.7건 … 관할 공역 협소·군용기 문제 등 특수상황 영향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항공기 ‘사고날 뻔’ 비일비재

항공기 ‘사고날 뻔’ 비일비재

민간기와 미군기의 관제를 담당하고 있는 항공교통관제소 (왼쪽)와 인천공항 관제탑.

지난 8월6일 H기장은 미국의 앵커리지 공항에서 보잉747 화물기의 이륙을 시도하던 중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했다. ‘클리어드 포 테이크오프!(Cleared For Takeoff)’ 관제탑의 이륙 허가를 받고 출항절차를 밟아 상승하던 중 1700피트 지점에서 갑작스레 궤도에 뛰어든 경비행기를 발견했기 때문. 관제사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H기장은 본능적으로 계기를 체크했고, 동승한 승무원은 전방을 바라봤다. 아이보리색 바탕에 붉은색 가로줄무늬가 선명한 경비행기는 전방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상대 항공기의 날개 끝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보잉747기가 진행 방향으로 운항할 경우 경비행기와 충돌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H기장은 기민한 감각으로 비행기를 좌측으로 30도 돌려 충돌 위기를 모면했다. 등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민간기·군용기 충돌 위험이 전체의 55%

위 장면은 항공기 ‘니어미스(Nearmiss·근접조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니어미스’란 비행기가 충돌하는 것은 아니나, 두 비행기가 가깝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뜻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는 “니어미스는 두 항공기가 충돌 위험이 있을 만큼 가까이 근접한 상황’이라고 막연하게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독일에서는 미국의 DHL항공 화물기와 러시아 바슈키르항공 TU154 여객기가 근접비행 중 충돌해 탑승자 71명이 전원 사망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니어미스’는 사고발생시 항공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대형참사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가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에게 제출한 ‘항공기 근접비행(니어미스) 위험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00년 이후 2003년 7월까지 우리나라 상공을 비행한 항공기 중 다른 항공기와 충돌할 위험에 처한 경우가 158건으로 한 달 평균 3.7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현행 국제민간항공기구법에 따라 항공기 주변으로 다른 항공기가 35~45초 이내에 충돌구역(500피트, 152.4m) 이내로 진입이 예상될 때 경보를 울려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하는 ‘공중충돌경고장치(TCAS)’를 항공기에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하고 있다. 또 항공법은 근접비행 위험이 있다고 조종사가 판단했거나 공중충돌 경고장치의 경고에 따른 충돌 회피 조작이 불가피했던 경우 그 사실을 건교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 제출된 항공기 근접비행 위험 발생 현황도 공중충돌 경고장치가 울린 횟수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 2000년 1월 이후 현재까지 사고 위험이 높은 니어미스(두 항공기가 150m까지 가까이 접근해 충돌 위험이 있었던 경우)는 없었으나, 이번 발표를 두고 ‘니어미스’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한국의 특수상황은 ‘니어미스’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나라는 관할 공역이 협소한 데다 연 90만대씩 항공교통량이 급증하고 군 특수공역이 항공로와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청와대, 여주사격장, 매향리 등은 비행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동일 공역 내에서 민·군이 관제 업무를 각각 수행하고 있어 관제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특히 공중충돌 경고장치가 경보를 울린 총 158회 중, 민간항공기와 군용기 간 충돌 위험이 발생해 경고음이 울린 경우가 86회(55%)로 절반 이상을 차지해 ‘니어미스’ 위험의 해법을 놓고 정부 부처 간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건교부는 군용기와 민간기 간 충돌 위험으로 인한 공중충돌 경고장치 경보 발령 횟수가 많은 이유가 “민간항공기 이용 공역(전체 공역의 30%)이 좁을 뿐 아니라 군용기가 항공관제기관에 사전통보하지 않고 민간항공기 항공로를 횡단비행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민간항공기와 미국 군용기의 경우 건교부 산하 항공교통관제소(인천 ACC)에서 관제하고 있지만, 우리 군용기의 경우 방공통제기관(MCRC)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 여러 선진국에서 ‘니어미스’의 위협 때문에 관제기관을 일원화한 사실도 건교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군용기에 공중충돌 경고장치가 장착돼 있지 않은 것도 ‘니어미스’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군용기는 전투나 훈련 임무를 맡은 경우 ‘시계비행규칙’(VFR: Visual Flight Rules)에 따라 조종사의 판단과 책임 하에 운항된다. 결국 군용기의 운항은 인간의 ‘시력’과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안보상의 이유로 군용기의 비행을 항공교통관제소에 통보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항공교통관제소에서 민·군 항공기를 관제할 경우 적 항공기 침투로 인한 긴급 요격 상황 발생시 관제 이양에 따른 대응 지연으로 국가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도권 지역에 적기가 침투했을 경우 신속한 전술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워 영공 방위에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군용기 관제를 민간에서 담당하던 미국의 경우 9·11테러 이후 안보 취약지역의 군용기 관제를 군 방공통제기관이 맡고 있다. 국방부는 “국가 안보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일부 선진국은 민간에서 군용기를 관제하기도 하지만, 군용기에 대한 작전통제의 기본개념은 자국의 안보환경에 가장 부합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또 한 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전투기에 공중충돌 경고장치를 장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접비행을 주로 하는 군용기에 이 장치가 달려 있을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경보가 울려 작전을 수행하는 데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 공군 방공통제기관은 항공교통관제소보다 몇 배 더 뛰어난 레이더 관제 시스템을 통해 군용기의 민항기 접근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 군용기가 ‘니어미스’의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니어미스’의 위협에 대해 안심하기는 이르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조종사가 물체를 인식하고 회피하기 위해 기기를 조작한 후 항공기가 움직이기까지 12.5초의 시간이 걸린다. 현재 ‘니어미스’ 방지를 위해 장착된 공중충돌 경고장치의 경우 늦어도 20여초 전에 경보가 울린다. 8초 정도의 시간차는 충돌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계기 오작동이나 관제사, 조종사의 순간적인 실수로 인한 ‘니어미스’의 순간을 언제든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과 안전을 고려해 ‘니어미스’의 위협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분단이란 특수상황으로 인해 현재는 “관제기관의 일원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항공 관계자는 “관제 일원화를 이룰 수 없더라도 국방부와 건교부 간 긴밀한 협조로 민·군 항공기 간 비행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406호 (p50~51)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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