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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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맨, 화려한 축제는 끝났나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증시 침체로 바늘방석…투자자 항의·연봉거품론 “아 옛날이여”

  • 입력2005-11-04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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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맨, 화려한 축제는 끝났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는 증권시장 활황으로 각광받은 대표적인 억대 연봉 증권맨들이다. 이들은 실적에 따라 수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으나 이제는 증시 침체로 좌불안석의 신세가 되었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일반의 귀에 익숙해진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민, 그리고 말 못할 사연을 들어봤다. 편집자

    애널리스트

    애널리스트. 증시 활황으로 펀드매니저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직업이다. 더불어 그들의 몸값도 수직상승했다. 애널리스트가 회사를 옮기면 무조건 억대 연봉을 받았다. 증권사뿐 아니라 소규모 인터넷 증권 사이트에서도 억대를 주고 이들을 스카우트했다. 유명 리서치센터 본부장쯤 되면 10억원은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억대의 화려함 속에는 웃지 못할 일도 많다. A씨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 두려워진다고 한다. 식사를 같이 할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새 동료들이 슬금슬금 나가 버리고 자기만 책상에 남아 있다는 것. 고액을 받고 스카우트된 지 석달이 넘었지만, 바로 옆 동료가 아니면 말도 건네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 매일밤 자청해서 야근을 한다. 혼자 집에 가면 자신만 낙오됐다는 생각 때문에…. 모두가 ‘적’이라는 분위기 속에 ‘쥐 경주’를 벌이듯 한정된 공간에서 숨막히는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B씨는 올 초 기가 막힌 일을 경험했다. 후배에게 코스닥기업 S사에 대해 보고서 한번 써보라며 자료를 던져주었는데, 그 후배가 며칠 뒤 자료까지 들고 다른 회사로 튀었다. 그것도 라이벌 증권사로…. 그 뒤로는 모두들 자료를 감추는 ‘비생산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C씨는 증권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연봉이 올라가는 회사 방침 때문에 ‘섹시’한 ‘꺼리’만 찾고 있다. 거시경제 전망이나 심각한 담론은 아예 관심이 없고, 사이버투자자의 눈을 끌 수 있는 화끈한 제목 찾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그럴수록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게 마련.

    한 중견 증권인은 후배 D씨의 행태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사연인즉, D씨가 올 봄 스카우트 붐 속에서 연봉을 더 주는 회사로 옮기기 위해 계략을 꾸민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D씨는 증권사가 기관투자가의 말을 신뢰하는 것을 이용해 한 기관투자가를 구워 삶았다. 이 기관투자가는 D씨가 가고자 하는 회사에 은근히 D씨를 추천했고, 그 회사는 D씨에게 이직을 제안해 왔다. D씨는 그 회사와 협상하면서 기존 회사에서 받던 연봉을 뻥튀기한 것은 물론이고, 주택자금을 대출받아 산 집을 사택으로 받았다는 거짓말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사례는 ‘물 흐리는 한 마리 미꾸라지’의 그릇된 행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도 몸값에서 거품이 빠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한 리서치센터 CEO(최고경영자)는 “당신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곧 조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97년 IMF 사태 이후 각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여의도를 떠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고 한다. 그중 상당수가 지금 성행중인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제 증시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지 오래고 불같던 활황 장세도 시들해지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처럼 억대 연봉을 받는 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이 새 직장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이 나오는 듯하다. 마치 우리 증시처럼….

    “차라리 증권시장이 등락이 심한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자금을 운용할 것인지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스트레스도 덜 느꼈을 겁니다.”

    한 펀드매니저는 최근 바닥권에서 박스장세를 유지한 채 지리한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증시에 대한 심경을 이같이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4월17일 종합주가지수 692.07포인트까지 폭락한 서울 증시는 5월 들어 750선을 전후로 박스권을 형성하며 갈지자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한번 주저앉은 장세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이런 상황이 2·4분기 내내 이어질 전망이어서 마음이 더욱 무겁다는 것. 그는 4월 말 현재 1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형펀드를 운용중이다.

    이 펀드매니저와 같은 중견 펀드매니저들의 연봉은 기본급 최소 5000만원에 +α의 성과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적인 대형투신사의 경우 올해부터 적용되는 성과급 α는 3억∼5억원 수준. 능력을 인정받아 신생 투신운용사에 스카우트되는 펀드매니저의 경우 더욱 치솟아 10억원을 웃돈다고 한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펀드매니저들에게 요즘은 악몽의 터널이다. 증시 침체로 4월16일 뮤추얼펀드 상품으로는 사상 처음 삼성투신운용의 ‘삼성프라임 플러스펀드’가 누적수익률 -0.83%를 기록해 원금손실 상태로 청산됐다. 현재 만기를 앞두고 있는 다른 뮤추얼펀드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는 것이 많아 펀드매니저들로서는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펀드매니저들의 이직을 부채질한다. 자신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다른 투신(운용)사로 옮기는 게 낫다고 판단해 스스로 짐을 싸는 경우도 많다. 또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펀드매니저도 적지 않다.

    반면 과거 상당한 수익률을 올려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다가 올들어 저조한 수익률 때문에 밀려난 펀드매니저들도 많다. A투신사 수석 펀드매니저 L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뜻밖의 휴가를 권고받았다. 가치투자 운용으로 정통 펀드매니저로 정평이 나 있던 L씨는 올들어 우량주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정보-통신기술주로 갈아타기 위해 거래소에 우량주를 내놨다.

    그러나 우량주의 하락세가 이어진 데다 제대로 팔리지 않았고 이같은 상황은 2, 3개월 지속됐다. 결국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해 ‘문책성 휴가’를 종용받게 된 것이다. 얼마 전 L씨는 휴직계를 제출했다. 그는 널뛰는 장세의 희생자가 된 셈이다.

    B투신사의 펀드매니저들을 총지휘했던 K 주식운용부장도 비슷한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C투신사의 대표로 한때 이름을 날리던 C 수석 펀드매니저도 펀드매니저 자리를 내놓고 다른 부서로 옮겼다. 상반기 이전에 정리될 펀드의 실적에 따라 많은 펀드매니저들이 비슷한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펀드매니저들은 때아닌 겨울을 맞고 있다.

    A투신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자신을 ‘술집 여자’에 비유한다.

    “마치 잘 차려입고 손님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술집 여종업원 같습니다. 서비스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 고객들이 몰려들어 몸값이 올라가고 다른 가게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데려가기도 합니다. 고객들의 ‘술취한 모습’에 짜증도 나지만 생명이 짧은 술집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펀드매니저들과 비슷하죠.”

    일반적으로 투신사에서 자리를 옮기게 되는 경우 연봉이 많아지거나 직급이 올라간다. 또 많게는 5억원에 이르는 ‘위험 프리미엄’ 등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대부분 신생 투신사로 옮기게 되면 또다른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된다.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들의 경우 옮긴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익률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 또한 새로운 동료나 상사, 부하직원들과의 관계 설정도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펀드 운용 구조가 변하는 등 변화 조짐이 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투신 김영길펀드매니저의 설명이다.

    “한두명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한 운용보다 팀제 운영방식이 도입되고 있으며, 팀의 운용전략도 회사 전체의 전략에 따라 결정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결정은 개인적인 리스크가 뒤따르는 데 반해 팀별로 운용하게 되면 위험이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게 되고 펀드를 보다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보이는 ‘철새 펀드매니저’화는 고객-투신사-펀드매니저의 합작품이다. 고객은 투자하기 전에 고수익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돈을 맡긴 뒤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투신사나 펀드매니저들에게 불만을 쏟아붓는다. 투신사는 단기간의 높은 수익률만을 따지며 펀드매니저들을 몰아세우거나 심지어 내치기까지 한다. 무책임한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철새처럼 움직인다. 이런 악순환은 고객-투신사-펀드매니저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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