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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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km “비행기보다 편해요”

컴퓨터 제어 첨단 덩어리… 시험 운행 승객들 “승차감·내부시설 좋다”

  • 입력2006-05-1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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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속 300km “비행기보다 편해요”
    18조4358억원의 국고를 쏟아붓는 경부고속철도건설사업. 한국의 토목-건설 역사상 이렇게 탈 많은 사업도 없었다.

    건설 방침이 결정된 때(89년)부터 ‘재정여건을 무시한 선심성 사업이다’, ‘프랑스의 TGV를 선정하면서 그 대가로 엄청난 비자금이 건네졌다(96년)’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량상판구조가 PC 박스에서 빔형이 됐다가 박스형으로 바뀌었다. 대전-대구구간 건설방식은 여론에 따라 지하화→지상화→지하화로 춤을 췄다. 경주와 상리터널 노선도 지우개로 지우듯 수시로 바뀌었다. 출발역으로 용산역이 유력했다가 취소되고 남서울역이 새로 생겨났다. 언론에선 교량과 터널의 ‘부실시공의혹 시리즈’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땐 정부가 “돈이 없으니 대구-부산구간은 유보하겠다”고 했다가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토지보상-소음-가축피해와 관련, 무려 3100여건의 항의 민원이 잇따랐다. ‘고속철도 차량구매비로 4900억원이 낭비될 가능성이 있다’는 감사원의 지적도 나왔다(99년).

    “이 기차가 굴러가기나 하는 건지 모르겠네” “불안해서 타겠나.” 대다수 국민의 심정이었다. 고속철도공사는 이렇게 혼선과 불신 속에서 지난 11년간 진행돼 왔다.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의문은 정부가 약속한 2004년 4월 과연 국민이 안전하고 빠른 기차를 탈 수 있는지의 여부에 집약된다. 공사를 맡고 있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문제아가 효자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쇠망치 소리가 한창인 고속철도 공사현장을 점검해봤다.

    “안녕하십니까. 경부고속열차 KTX의 34.4km 구간 시험운행을 시작하겠습니다….” 4월14일 정오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서 안내방송과 함께 KTX가 객실 16량을 달고 선로 위를 미끄러져 갔다. 국회 행정처, 한국철도기술공사 등에서 견학 온 100여명의 승객이 1등실에 타고 있었다.



    기자는 기관사와 함께 기차의 맨 앞 조종실에 있었다. KTX의 조종실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조종실엔 ‘핸들’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 브레이크와 가속기만 있었다. 조종대는 자동차 운전대보다 더 단순했다. 원형의 레버를 돌리는 방식으로 크게 4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레버를 ‘O’에 맞추면 기차가 정지하고, ‘SL’에선 시속 5km를 유지하며 기차가 움직인다. ‘T’는 운행을 뜻한다. 김형룡기관사(운전교관)가 레버를 ‘T’에 놓고 손가락으로 가속기를 밀었다. 그러자 기차가 움직였다. 가속기를 반대방향으로 당기자 브레이크가 잡혔다. 일종의 수동운전이다. 레버를 ‘PS’에 두고 일정한 속도에 맞춰두기만 하면 기차는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달린다. 기자는 경적레버를 잡아당겼다. ‘부∼’하며 특유의 열차 경적이 울렸다. 이로써 5분만에 고속열차를 운전하는 법을 알게 됐다. 그만큼 이 기차는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조종실 뒤편엔 ‘업소용 냉장고’ 크기의 중앙컴퓨터가 있고 그 뒤로 집채만한 전자-전기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조종실의 계기판엔 안전운행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장착돼 있었다. 고장 정보, 차량상태 정보, 운전자 지침, 기술정보 유지보수완료시험, 경보발생 정보, 열차 정보, 출발 전 제동시험, 출발 전 테스트, 열차속도 등 10여가지 정보가 한글과 영어로 나왔다. 이들 정보는 기관사뿐 아니라 역내에 위치하게 될 유지보수센터 열차집중제어센터 등 세곳에서 중복으로 체크된다.

    조종실엔 기관사의 유고상황을 대비한 장치도 있었다. 기관사가 조종대의 양옆에 붙은 ‘데드맨 스위치’(Dead man switch)에 손가락을 2.5초 이상 떼고 있거나 1분 이상 계속 붙이고 있으면 경고음이 난 뒤 열차는 자동으로 정지한다. 그래서 KTX의 기관사들은 운전을 할 때 양손으로 장구를 치듯 박자를 맞추며 조종대를 두드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날 기차는 시속 220km까지 속도를 냈다. 그러나 기차가 운행할 때 밑에서 울려오는 특유의 ‘철커덕 턱턱∼’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 군데도 떨어져 있지 않고 이어진 하나의 장대레일 위로 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객실’의 반응을 알아봤다. “바깥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승차감은 스키를 타고 눈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부드러웠어요. 섭씨 20도를 유지한다는 에어컨도 상쾌했고 의자, 비디오-오디오 설비, 카펫, 화장실, 공중전화기와 팩스, 냉장고도 좋았습니다(철도기술연구원 김안나씨)” “유럽의 고속열차와 비교해 손색이 없습니다. 단, TV 모니터가 더 컸으면 합니다(한국철도기술공사 복병욱씨).”

    1등실 의자간격은 112cm. 그러나 2등실은 93cm로 새마을호보다 좁았다. 경제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김영선 운전팀장). 김팀장은 “요금과 속도 면에서 경쟁 상대인 국내선 비행기 못지 않고 좌석도 비행기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고속철도건설공단 이광삼 관리국장은 “시험운행 결과 국제표준 보다 차량 진동이 심하고 브레이크가 약간 밀리는 현상이 발견됐는데 이같은 문제점은 6월말까지 모두 보완된다. 이런 방식으로 46대 열차 모두가 시운전 테스트를 받는다. 운행개시일인 2004년 4월까지 시속 300km 스피드와 열차내 안전성이 완벽하게 달성된다”고 설명했다.

    412km에 이르는 철로와 교량, 터널, 역사 등 토목분야는 46.3%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92년부터 98년까지 공사가 지지부진하다 99년부터 연간 2조원 이상 투입되며 건설사업이 급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김동훈 관리부장). 노반공사의 경우 올해 안에 서울`-`천안구간은 89%, 대전`-`대구구간은 80%가 끝난다(천안-대전구간은 이미 완료). 대구`-`부산구간은 올해부터 기존선을 전철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6850m)인 천안 풍세교를 비롯해 운주터널, 낙동강교 등 148개의 교량(112km)과 83개의 터널(189km)에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고속철도 홍보팀 조복형씨는 “건설 초기엔 기술-경험 부족, 준비미흡으로 부실시공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도 안전문제에 관한 한 노하우가 생겼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고속철도공사 경험이 있는 프랑스와 독일회사가 감리를 맡았고, 공사장을 4400개 단위로 나눠 171개 절차로 업무를 표준화해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934명의 기술자가 프랑스에 가서 관련기술을 배워왔다.

    4월14일 충남 아산시 4-1공구 역사는 건물 바닥 곳곳에 10cm 정도 틈이 나 있었다. 내진설계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감리단장 김규조씨는 용접한 쇳덩어리들을 보여줬다. 표면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용접에서 부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기시험까지 치러 근로자를 선발했다는 것. 김단장은 “고속철도 시험에 합격한 용접공들은 다른 공사장보다 일당을 1만원 정도 더 받는다. 건설업계에서도 고속철도공사의 꼼꼼함을 알아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고속철도공단 강기동이사(건설본부장)는 “모든 공정이 정상궤도에 올랐다. 2003년 12월 서울-대전간 운행을 시작으로 2004년 4월 전 구간에서 예정대로 고속열차가 운행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속철도공단의 예상대로 고속철도가 가동될 때 기대되는 효과는 매우 크다. 김규조단장은 “기차역 주변에 ‘가락국수집’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기점으로 천안을 34분, 대전 50여분, 대구 1시간30여분, 부산 2시간40여분(2010년 1시간56분)에 주파하는 고속열차는 ‘4분’ 간격으로 서울을 떠난다. 경부축에 놓여 있는 도시로의 여행이 마치 서울시내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과 똑같아진다는 것이다. 요금은 항공료의 70%선에서 결정될 예정. 기차 여행객수는 하루 20만명에서 52만명으로 껑충 뛴다. 자유롭고 신속하고 대량화된 공간이동은 일상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여행객들이 ‘새로운 철로’ 위로 옮겨감에 따라 기존철로와 고속도로는 훨씬 한산해지게 된다. 16.5%(일본의 두 배)에 이르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물류비 부담률이 크게 낮아지고, 기존철도의 컨테이너 수송능력은 연간 35만개에서 300만개로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고속철도공단의 예상). 고속철도가 한국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생산성 저하’를 일거에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밝은 미래의 실현 여부는 전적으로 ‘안전’에 달려있다. 고속철도의 종주국인 일본과 프랑스에서도 99년 신칸센 터널의 콘크리트 추락, TGV의 엔진화재-트럭충돌-탈선사고가 잇달아 있었다.

    시속 300km로 935명을 실어 나르는 고속철도. 절정을 이루고 있는 공사현장엔 1만분의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과거의 불명예를 씻고 있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100% 안전약속’을 과연 철석같이 지켜낼 수 있을까. 4년 후면 판가름난다.

    미관·기능 조화… ‘고속철 1번지’ 예약

    서울발 열차 첫 정차… 아산·천안시 역 이름 놓고 줄다리기


    연면적 1만152평의 충남 아산시 ‘4-1공구 역사’. 서울발 고속열차의 첫 번째 정차역이다.동대구 역사나 대전 역사보다 최소 7년이나 빨리 완공되는 최초의 고속철도 역사. 산허리를 뚫고 나온 철로와 높이를 맞추기 위해 역사의 4층 옥상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플랫폼도 물론 옥상에 있다. 스테인리스-유리-철골구조물로 꾸민 지붕과 역 내부, 아치형 입구도 한국의 기존 철도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역 이름을 놓고 아산시청과 천안시청이 서로 대립해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정도로 충청도 중부지역의 역세권 개발에 대한 기대감 또한 크다.

    고속철도공사의 일번지인 이곳에서 대전출신 안광민씨(40)는 역사지붕 건설작업을 하고 있다. 4월14일 그의 일과에서 고속철도 공사장 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그는 오전 7시 플랫폼에서 15m 높이의 지붕 골조 위로 올라갔다. 그 전에 간단한 체조와 구호제창이 있었다. 현장소장 황광순씨가 “이슬을 조심합시다”고 외치자 30여명의 지붕작업 근로자들은 “좋아, 좋아”라고 복창했다.

    안씨는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을 공중에서 보낸다. 그는 폭 20cm의 철제 빔 위에서 자신의 몸을 지탱해야 한다. 안씨는 이 일을 98년 말부터 해왔다. 3중으로 안전그물이 쳐져 있지만 조금만 부주의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 비가 1mm만 와도 미끄러워 작업을 못할 정도다. 안씨는 이날 볼트를 죄는 작업을 했다. 무거운 철근을 들고 좁디 좁은 철제 빔 위를 걸어다니며 용접할 땐 서커스단원이 따로 없다.

    시공사는 그에게 합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작업은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없이 계속된다. 비가 오는 날이라야 가족을 보러 대전에 간다.

    그는 이 일이 위험하지만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30년 전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던 근로자들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비행기 활주로처럼 뻗어 있는 역사 위에 후세에 전해질 아름다운 지붕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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