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국제

산유국 덮친 ‘저유가의 저주’

아프리카·중앙아시아·남미·중동까지 줄줄이 국가부도 초읽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4-25 15: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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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유가로 수입이 크게 줄어든 산유국들이 줄줄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잇달아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있다. 가장 최근 IMF에 구제금융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를 신청한 국가는 아프리카 2위 산유국인 앙골라다. 2009년 14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데 이어 두 번째로, 당시 구제금융 자금도 아직 다 갚지 못했다. 이 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으로 하루 1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왔고, 2002년 내전이 끝난 후 10여 년간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4년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앙골라의 수출에서 원유 비중은 무려 98%. 정부 재정수입 중에서도 75%를 차지한다. 국제유가의 폭락이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IMF는 지난해 1.5%였던 앙골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올해 7.6%로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57%로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앙골라 통화인 콴자(kwanza)의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35%나 절하됐다.



    휘발유 부족 사태 빠진 산유국?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연평균 7% 안팎의 GDP 성장률을 유지해오다 저유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 역시 OPEC 회원국인 나이지리아는 2월 세계은행(WB)에 25억 달러(약 2조8000억 원),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35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요청했다. 이 나라는 정부 재정수입의 70%, 수출의 90%를 원유에 의존하는 세계 6위 원유 수출국이다. 올해 원유 수출로 들어오는 재정수입이 33%로 급감하고, 재정적자는 150억 달러로 GDP의 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지리아 통화인 나이라(naira)의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2014년 10월 이후 21%나 절하됐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비(非)은행권 환전상에 달러 매도를 금지하는 자본 통제를 단행했고, 생필품 수입마저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이어진 자본 유출로 외환보유액은 1년 전 500억 달러에서 현재 282억 달러로 거의 반 토막이 난 상태다. 나이지리아는 하루 18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지만 정제시설이 없어 외국에서 휘발유를 수입한다. 휘발유를 수입할 외화가 부족해 주유소 앞에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상황도 비슷하다. IMF에 30억 달러, 세계은행에 10억 달러 등 총 40억 달러의 차관을 요청한 아제르바이잔이 대표적이다. 옛 소련권 3위의 산유국이자 중앙아시아 3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이 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80만 배럴로 정부 재정수입의 75%, 수출의 95%를 원유와 천연가스에서 벌어들여왔다. 재정적자는 2014년 GDP의 0.4% 규모에서 지난해 9.5%로 급증했다. 통화인 마나트(manat)의 가치는 30%나 폭락했다.

    이 때문에 식료품과 각종 소비재 가격이 20~35% 급등하며 일부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은행 지점의 환전 거래를 제한하고, 암거래를 막고자 사설환전소도 폐쇄했지만 결국 국제사회에 손을 벌려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 무디스는 최근 아제르바이잔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 등급에서 투기 등급(정크)으로 강등했다.

    산유국 가운데 최악의 상황에 빠진 국가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는 원유 2980억 배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5위 원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는 정부 재정수입의 95%를 원유 수출에 의존해왔지만, 저유가로 나라 살림이 이미 거덜 난 상태다. 지난해 GDP 성장률은 -10%로 전년 -4%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IMF는 베네수엘라의 올해 GDP 성장률을 -8%로 예상한다.

    베네수엘라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4월 초 기준 6842bp(1bp=0.01%p)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국채 1억 달러어치를 살 경우 부도 위험을 헤지(회피)하려면 6842만 달러의 보험료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임을 뜻한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98.3%, 실업률은 6.8%를 기록했고 올해 물가상승률은 152%, 실업률은 7.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치약, 비누, 기저귀, 식용유 같은 생필품을 상점에서 거의 살 수 없을 정도이고, 빵 원료인 밀을 100% 수입하는 탓에 빵을 사 먹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공급 과잉, 그리고 중국의 부진

    위기에 내몰린 베네수엘라는 채무 상환용 현금을 확보하고자 올해 들어 막대한 양의 금을 스위스로 보내 ‘금 스와프’를 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25억 달러 상당의 금 60t이 스위스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베네수엘라의 한 해 금 채굴량이 12t인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양. 올해 100억 달러의 국채 상환과 6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차관을 갚아야 하지만 외환보유액은 통틀어 15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올해 초 2개월간 국가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위기 극복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하반기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저유가의 저주’는 중동 부자 산유국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등은 휘발유 값을 대폭 인상하고 각종 보조금을 폐지하는 등 재정적자를 줄이고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선 25개 산유국 가운데 17개국이 디폴트를 선언한 1980년대 상황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산유국들의 이러한 경제위기가 자칫 선진국들에게 전이될 수 있다는 점. 산유국 채권을 보유한 선진국 은행들이 자산부실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의 경제위기 탈출 여부는 저유가가 언제까지 계속되느냐에 달렸고, 국제유가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다. 4월 17일 18개 주요 산유국은 카타르 도하에서 회의를 열어 산유량 동결을 논의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원유 공급 과잉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 게다가 세계 최대 원유소비국인 중국이 상당기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일부 산유국은 디폴트를 피하기 어렵다. 저유가의 저주가 이들을 생존 기로에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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