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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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축구, ‘완전 공격형’으로 뜯어고친 포스테코글루

[위클리 해축] 패배해도 박수 받는 ‘토트넘 정신’ 구축… 캡틴 손흥민 중앙 공격수로 활약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3-12-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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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가 큰 만큼 불확실한 출발이었다. 감독은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빅리그 경험이 없었고, 팀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토트넘의 아들’로 불렸던 스트라이커 헤리 케인은 독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새로운 토트넘 홋스퍼의 리더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토트넘의 일대 혁신을 약속했다. 낯선 감독의 등장과 에이스의 이탈, 주전 절반 이상이 교체되는 움직임은 기대보다 불안감을 키웠다. 토트넘을 바라보는 팬들은 “케인이 떠났는데, 손흥민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도 손흥민이 10골 이상은 기록하겠지” 같은 의문과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당초 해외 언론이나 축구 전문가들은 토트넘의 선전을 쉽사리 예측하지 않았다. 너무 급격한 변화 탓에 리그 4위까지 주어지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확보는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유럽 축구팀 입장에선 참가만 해도 거액의 상금이 주어지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이 중요 목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호(號) 토트넘을 향한 우려가 환호와 찬사로 뒤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개월 남짓이다. 토트넘의 파격적 변신에 연일 팬들의 감탄이 쏟아지고 있다. 뛰어난 경기 내용 덕에 이기지 못해도 팬들이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는 팀으로 거듭난 것이다.

    토트넘 홋스퍼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 [뉴시스]

    토트넘 홋스퍼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 [뉴시스]

    우려가 찬사로 바뀐 1개월

    영국 수도 런던을 연고로 둔 토트넘은 역사적으로 전통 강호는 아니다. 리그 우승 전적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전 1950년대와 1960년대 각각 한 차례가 전부다.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도 2010~2011시즌에야 처음 진출했을 정도로 상위권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팀이었다(1961~1962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컵은 진출). 그러나 현 대니얼 레비 회장 취임 후 이영표가 토트넘에서 활약했을 즈음부터 조금씩 상위권 도약을 노리더니 이제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빅6’(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첼시, 리버풀, 토트넘) 중 하나로 불린다.

    오늘날 토트넘의 목표는 상위권 사수다. 당장 리그까진 아니어도 컵 대회 우승을 통해 팀의 위상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있다. 그렇기에 토트넘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이끈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헤어지고 ‘스페셜 원’ 조제 무리뉴, ‘우승 청부사’ 안토니오 콘테 같은 명장을 영입하며 성적 사수에 나섰던 것이다. 문제는 무리뉴와 콘테 모두 팬들이 매료될 만한 축구 스타일을 지향하는 감독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감독 체제에서 토트넘은 공격적 축구보다 수비 지향적 축구로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손흥민과 케인을 최고 듀오로 만든 무리뉴도, 팀을 다시 UEFA 챔피언스 리그로 보낸 콘테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재미와 감동을 주지 못한 상태에서 성적까지 곤두박질치자 버틸 명분이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가운데)이 
12월 4일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전반 6분 선제 골로 이어진 오른발 슈팅을 날리고 있다. [뉴시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가운데)이 12월 4일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전반 6분 선제 골로 이어진 오른발 슈팅을 날리고 있다. [뉴시스]

    포스테코글루는 토트넘 축구 스타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내려가서 수비부터 하는 축구가 아니라 올라가서 공격하는 팀이 된 것이다.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그리하여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즐기면서 플레이하는 전략·전술에 방점이 찍혔다. 포스테코글루는 이 같은 축구 스타일에 맞게 골키퍼부터 수비, 미드필더, 공격까지 선발 11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10년 넘게 골문을 지킨 골키퍼 위고 로리스와 에릭 다이어 등이 자리를 잃었다. 그 대신 새로 영입된 골키퍼 굴리엘모 비카리오, 수비수 미키 판 더 펜, 데스티니 우도기, 미드필더 제임스 매디슨과 그간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한 이브 비수마, 파페 사르 같은 선수가 주전으로 올라섰다.



    이들은 감독이 원하는 새로운 토트넘 스타일을 제대로 완성해가는 중이다. 수비 라인이 높아졌고, 공격수들은 전방에서 강한 압박으로 공을 빼앗으려 한다. 킥을 잘하는 비카리오 골키퍼로부터 시작되는 안정적 빌드업도 그간 토트넘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플레이다. 선수단이 뽑은 새 주장 손흥민은 밝은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왼쪽 측면에 배치돼 장점인 골 결정력을 살릴 기회가 없었는데, 중앙 공격수로 뛰면서부터 득점왕을 차지할 때보다 더 활약하고 있다. 감독부터 선수까지 모든 변화가 성공한 가운데 손흥민의 스트라이커 변신이 토트넘 혁신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된 셈이다.

    그런 점에서 11월 초 리그 9라운드 첼시와 대결에서 토트넘이 보인 투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막 후 10경기 8승 2무, 파죽지세 4연승으로 선두를 질주하던 토트넘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데얀 쿨루셉스키의 선취 골로 앞서가던 토트넘은 수비수 크리스티안 로메로의 퇴장, 판 더 펜과 매디슨의 부상, 우도기의 퇴장으로 수습 불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축구에선 1명만 없어도 수적 열세 극복이 쉽지 않은데, 2명이 빠지면서 그라운드가 휑하게 비어버렸다.

    ‘토트넘 정신’ 모험 감행한 포스테코글루

    보통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아주 약한 팀과 경기가 아니라면 수비 중심의 경기 운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는 남은 9명으로 극단적인 공격 대형을 만들었다. 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1-1 동점이었음에도 최종 수비 위치가 중앙선 부근까지 올라간 믿기 어려운 광경을 연출했다. 실점하고 크게 무너질 수 있는 모험이었다. 하지만 토트넘 입장에선 “우리가 지금 보여주는, 앞으로 보여줄 축구가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한 셈이다. 홈구장을 찾은 토트넘 팬들은 감동했고 4-1로 패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승점을 얻지 못했을 뿐, 토트넘 정신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챙긴 경기가 됐다.

    물론 첼시와 경기에서 토트넘은 적잖은 수업료를 치렀다. 선수 퇴장, 부상이 겹치면서 겨우 갖춘 전력에 공백이 생겼고 이후 3연패 늪에 빠져버렸다. 게다가 내년 1월 손흥민을 비롯해 몇몇 선수가 차출되는 아시안컵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토트넘과 포스테코글루는 현실을 피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멋지게 동점을 만들어낸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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