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피스 득점 비율 역대 최고”
최근 EPL을 강타한 세트피스 플레이 붐에 대한 임형철 쿠팡플레이 축구 해설위원·EA SPORTS FC 한국어 해설의 분석이다. 축구에서 세트피스는 공이 정지된 상태에서 경기를 재개하는 플레이 상황을 뜻한다. 코너킥이나 직간접 프리킥, 페널티킥, 스로인, 킥오프 등이 해당된다. 보통의 오픈플레이와 달리 세트피스에선 공격자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긴 호흡의 연계 플레이가 빛을 발하던 EPL에서 미식축구, 농구를 방불케 하는 세트피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2일 임 위원을 만나 최근 축구계 세트피스 열풍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들어봤다.
임형철 쿠팡플레이 축구 해설위원·EA SPORTS FC 한국어 해설. 박해윤 기자
“통계를 분석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23∼2024시즌 EPL에서 전체 득점 중 세트피스 골 비중은 19.8%였다. 그런데 2025∼2026시즌 전체 124득점 가운데 31골, 약 24%가 세트피스 골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이하 12월 2일 기준). 그중에서도 과거 12.1% 수준이던 코너킥 비중이 18.7%까지 올라가 마찬가지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세트피스를 잘 구사하는 대표적인 팀과 선수는.
“우선 선두팀 아스널이다. 그 외에 세트피스 득점 전환율이 높은 팀이 에버턴인데, 시즌 한때 전체 득점의 57.1%가 세트피스에서 비롯됐다. 애스턴 빌라(40%)와 크리스털 팰리스(38.5%)도 세트피스 득점 비중이 큰 팀이다. 세트피스 골이 가장 뛰어난 선수는 역시 아스널의 센터백 가브리에우 마갈량이스다. 동료가 상대 골키퍼를 가로막으면 그 틈을 타서 빠른 움직임으로 골을 넣는 것이다. 이 같은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활약으로 마갈량이스는 2020년 이후 EPL에서 골을 가장 많이 넣은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원래 약팀의 전유물이던 세트피스를 강팀들도 적극 구사하는 이유는 뭔가.
“최근에는 리그 순위가 낮은 약팀도 수비 전술을 굉장히 잘 준비한다. 공간을 쉽게 내주지 않고 치밀한 수비벽을 형성해 공격을 막아낸다. 강팀 입장에서도 이 같은 밀집 수비를 뚫기가 쉽지 않다. 오픈플레이로 상대 골문을 여는 게 여의치 않자 세트피스가 새로운 해법으로 부각한 것이다. 세트피스는 코너킥이나 프리킥, 페널티킥처럼 높은 위치에서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EPL 상당수 팀이 세트피스 전담 코치를 둘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결과 세트피스 상황에서 플레이 효율성이 향상됐고 득점도 늘어났다.”
대표적인 세트피스 전술에는 어떤 것이 있나.
“우선 상대 골키퍼를 가둬놓는 ‘골키퍼 블로킹’이 있다. 2∼3명이 지키고 서서 골키퍼의 플레이 자체를 막는 방법이다. ‘수비 과부하’도 있다. 코너킥을 할 때 상대 골대 주변에 4∼5명이 모여 있다가 일순간 상대 선수들 사이로 흩어져 수비를 과부하시키는 것이다. 이외에도 상대 에이스 수비수를 막아 우리 팀 다른 선수의 세트피스를 돕는 ‘블로커’ 등 다양한 전술이 있다. 이 같은 세트피스에선 여러 상황에 맞는 전담 선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EPL 팀들은 세트피스에 대비해 스페셜리스트를 두고 있다. 가령 토트넘 홋스퍼는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누가 스로인을 할지 내부 오디션을 펼쳤다고 한다. 그 결과 공을 가장 멀리 던진 케빈 단소가 스로인 스페셜리스트로 정해졌다.”
최근 EPL 팀들이 축구가 아닌 NBA(미국프로농구)나 NFL(미국프로풋볼리그) 등 다른 스포츠에서 세트피스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그렇다. 공이 멈춘 상황에서 상대 선수와 경합하며 좁은 공간으로 찾아 들어가는 움직임이 기존 축구 방식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EPL에선 코너킥 헤더를 하는 동료를 도우려고 상대 수비수를 막는 전술이 자주 보인다. NBA에서 많이 구사하는 ‘스크린플레이’를 활용한 플레이다. NFL의 ‘플레이 콜링’도 EPL에 차용됐다. 플레이 콜링은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에게 어떤 전략을 쓸지 약속된 신호를 보내 알리는 것이다. 원래 미식축구에서 흔히 쓰였는데 최근 세트피스가 늘면서 EPL에서도 자주 보인다.”
세트피스가 축구의 재미를 반감한다는 반응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고,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을 느낀다. 축구 팬들은 오픈플레이 상황에서 잘 짜인 전술과 선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세트피스 상황에선 경기가 일단 중단되기 때문에 흐름이 끊긴다. 그 전의 경기 내용이나 공격 시도는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경기를 보는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경기 흐름과 약속된 플레이에서 터지는 골의 흥분감이나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세트피스 골잡이로 불리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센터백 가브리에우 마갈량이스. GETTYIMAGES
“경기 흐름 끊겨 골 재미는 반감”
앞으로도 EPL에서 세트피스 전략이 성행할까.“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된 세트피스는 한동안 유행할 것 같다. 다만 축구에선 새로운 공격 전술이 등장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수비 전술이 나오기 마련이다. 가령 골키퍼 블로킹에 맞서 상대 선수가 자기 팀 골키퍼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막는 전담 수비수를 지정하는 식으로 말이다. 즉 ‘골키퍼를 막는 선수를 막는 선수’를 앞세운 세트피스 수비인 셈이다(웃음). 사실 최근 EPL에서 세트피스가 성행하는 데는 심판들의 관대한 판정 경향도 한몫했다. 향후 지나친 세트피스로 경기가 느슨해진다는 지적이 계속된다면 이 같은 판정 경향이 바뀔 수도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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