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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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사규 어긴 ‘황산 화물열차’가 달린다

코레일, 자체 기준인 ‘차량제작설명서’ 제시 안 하고 기술검토 완료 공문 업체에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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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3-06-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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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동구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뉴스1]와 코레일 로고. [코레일 제공]

    대전 동구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뉴스1]와 코레일 로고. [코레일 제공]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사규에 따른 절차를 어기고 도입한 사유화차(私有貨車)가 위험물질 황산을 실은 채 운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유화차는 기업 및 개인이 소유한 화물차지만 코레일 차적(車籍)에 편입돼 코레일 기관차로 운행된다. 소유권 자체가 이관되는 것은 아니지만 코레일이 소유한 화물차에 준해 유지·관리된다. 국내 전체 화차 약 9113량 중 사유화차는 2554량으로, 철도 물동량에서 상당한 비중이다.


    코레일 “신규 차량 도입 불가피해 기술검토 후 편입”

    코레일 사규인 ‘사유화차 취급 및 유지보수 세칙’ 제5조(차량편입조건)는 사유화차가 코레일 차적에 편입되려면 “차량의 구조 및 기능이 철도안전법령 및 공사의 차량제작설명서에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코레일 사규는 사유화차에 대해 “전용 적재화물의 수송이 가능” “신조 차량은 ‘철도안전법’에 따른 형식승인 등에 합격”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해놓았다. 국토교통부(국토부) 고시 ‘철도안전관리체계 기술기준’도 사유화차와 같이 철도차량 발주자와 운영자가 다른 경우 “차량설계, 제작, 완성검사, 시운전 시 운영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야 하며, 철도운영자 등은 철도차량 제작감독 관련 사항을 협의·이행하기 위한 문서화된 절차를 수립, 실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기업 A사는 2018년 12월 말 철도차량 제작업체 B사와 황산조차(槽車: 탱크차) 20량 제작을 의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듬해 B사는 1월 황산조차 도면 설계에 착수했고 6월 이 사실을 코레일 측에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코레일은 사규에 따라 차량제작설명서 등 문서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코레일 측은 2021년 2월 “황산조차 20량에 대한 기술검토가 완료됐다”는 공문을 A사와 B사에 발송했다. 업체에 차량제작설명서를 제시하지 않고 기술검토를 완료했다는 것이다.

    사규를 위반하고 사유화차를 차적에 편입한 이유에 대해 코레일 측은 “A사는 안전 확보 차원에서 노후 차량을 대체하고자 황산조차 20량 제작을 추진했으나 코레일과 사전 협의 없이 차량을 제작했고 약 6개월 후 이를 통보했다”며 “노후 황산조차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신규 차량 도입의 불가피성을 인정해 약 1년 7개월간 기술검토 후 차량을 차적에 편입해 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멘트 원료와 황산을 운반하는 화물열차. [동아DB]

    시멘트 원료와 황산을 운반하는 화물열차. [동아DB]

    철도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유화차 도입 절차와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차량제작설명서 없이 제작된 사유화차를 차적에 편입해 운행하는 것은 코레일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것 아닌지 의심된다”며 “새로 도입된 사유화차의 주행, 제동, 연결장치 등이 기존 코레일 차량과 달라 철도 시스템에 필요한 안전성과 표준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유화차를 제작한 B사 관계자는 “우리가 만든 화차의 품질이 기존 모델보다 우수해 오히려 더 안전하다”면서 “국토부로부터 철도차량 형식승인을 받은 사유화차의 안전성 및 차적편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일부 업체의 음해이자 코레일의 ‘갑질’”이라고 반박했다. 사유화차를 소유한 A사 관계자는 “만약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코레일이 차적에 이미 편입한 황산조차 20량을 계속 운행하는 이유는 뭔가”라고 반문했다.



    문제는 A사가 B사에 발주해 제작한 또 다른 황산조차 30량도 차적편입을 위해 대기 중인 가운데 코레일이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10~11월 A사는 B사에 두 차례에 걸쳐 도합 30량의 황산조차를 추가 발주했다. A사는 이듬해 2월 코레일 측에 제작 협의를 요청한 데 이어 올해 5월 차적편입을 요청했다. 이 대목에서 황산조차 30량 제작 과정의 적정성을 두고 코레일과 A사·B사 측 입장이 엇갈린다. 코레일 측은 “지난해 5월부터 진행되던 기술검토가 완료되지 않은 사태에서 A사와 B사가 올해 5월 일방적으로 차적편입을 요청하는 등 코레일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지 않아 차적편입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A사 관계자는 “황산조차 30량은 이미 형식승인을 받은 데다, 앞서 차적에 편입된 20량과 동일한 모델임에도 코레일 측이 자사의 ‘권고사항 미이행’이라는 이유로 계속 차적편입을 미뤄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코레일 측의 기술검토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몇 년씩 시간을 끌면 민간기업으로선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A사 “같은 모델 30량 왜 차적편입 안 되나”

    일각에선 “코레일이 사유화차 도입을 놓고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레일은 앞서 황산조차 20량을 차적편입하는 과정에서 차량제작설명서를 제시하지 않는 등 자사 사규를 위반한 것을 시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A사가 같은 조건에서 제작해 차적편입을 요청하는 황산조차 30량을 차적에 편입하면 다시금 사규를 어기는 셈이 된다. 반면 현재도 코레일 기관차가 A사 소유의 황산조차 20량을 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A사가 발주한 30량의 차적편입을 계속 미룰 경우 ‘기존 20량은 계속 운행하면서 앞뒤 안 맞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차적편입된 황산조차 20량과 추가로 차적편입이 요청된 30량에 대해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의에 코레일 측은 5월 24일, 6월 7일 두 차례 답변에서 “사고 우려 등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사실 검증이 필요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30량의 조치 여부를 판단하겠다. 이미 도입한 20량과 편입을 검토하는 30량 중 각 2량 정도를 기존에 운행해온 황산조차 화차와 혼합 조성해 제동시험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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