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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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더블 도발’…한일관계 파국 위기

‘고노 담화’ 흔들기 이어 ‘집단자위권’ 각의 결정도 시간문제

  • 배극인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입력2014-06-23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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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의 검증 결과를 내놓는다. 아베 내각은 또 늦어도 7월 초에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해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각의 결정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49주년인 6월 22일을 전후해 가뜩이나 악화한 한일관계에 ‘더블 펀치’를 던지는 셈이다. 아베 내각의 의도는 무엇이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의 최근 행보는 한국의 동북아 외교에 적잖은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그간 아베 내각은 한일관계를 악화하지 말라는 미국 측 압력을 의식해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그 작성 과정을 검증해왔다. 여성 3명을 포함해 법률가와 언론인 등 5명으로 구성된 검증팀 좌장은 아베 1차 내각(2006~2007)을 전후해 검사총장(검찰총장)을 지낸 다다키 게이치. 교도통신에 따르면 6월 20일 발표되는 검증 보고서의 핵심은 ‘일본이 한국인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토대로 고노 담화 초안을 만든 뒤 이를 한국에 보여주고 수정 요구를 반영했다’는 내용이다.

    한일관계 토대 무너뜨릴 핵폭탄

    한 예로 ‘위안부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담당했다’는 담화 문구는 당초 초안에 ‘군의 의향을 받은 업자’로 명기했지만, 한국이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은 “군이 지시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으며 결국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에 양측이 타협했다는 것이다. 고노 담화는 한국의 요청에 따른 정치적 타협물이라는 인상을 대내외에 심어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이에 대해 조세영 전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 국장은 6월 17일자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노 담화의 핵심은 강제성으로, 강제성 (인정)은 필요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일본 자신의 판단에 따라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생각이었으나 일본이 먼저 한국에 의논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의 고위인사로부터 ‘일본 측이 결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안다. 나중에 조율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여론의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걱정도 알지만 내밀하게 의논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베 정권이 미국 측 압력에 밀려 고노 담화를 집요하게 흔드는 것은 일본 우익의 수정주의 역사인식과 선이 닿아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을 정당화하면서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고노 담화는 목에 가시 같은 존재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고노 담화 흔들기는 한일관계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핵폭탄이다. 현재 한일관계는 1993년 고노 담화와 95년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사죄한 무랴야마 담화의 기초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한국은 물론 일본 사회도 큰 충격에 빠졌다. 오랫동안 감춰졌던 일본군의 또 다른 잔학한 전쟁범죄가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초 일본 정부는 이를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 주오대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설치 및 운영에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를 방위청 도서관에서 발견했다고 1992년 1월 11일자 아사히신문이 1면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90년대 한일관계를 뒤흔드는 중대 문제가 됐다. 아사히신문 보도 닷새 후 한국을 방문했던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한국에서 여러 차례 사죄를 표명해야 했다. 같은 해 7월 가토 고이치 관방장관은 이 문제에 대한 1차 정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어 다음해인 93년 8월에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2차 조사 결과와 함께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 그와 같은 마음을 일본국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해서는 지식인들의 의견 등도 구해 앞으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다짐한 바 있다.

    동북아 안보 지형도 변화 불가피

    아베의 ‘더블 도발’…한일관계 파국 위기

    ‘고노 담화’의 주역인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외무대신(왼쪽)이 2000년 7월 14일 청와대를 예방해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1995년 사회당 당수로 자민당과의 연립정권 총리가 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고노 담화에서 밝힌 다짐의 연장선에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했다. 전후 50년을 맞아 유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은 것도 같은 흐름에서였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비록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가 이후 한일관계의 파산을 막는 최후의 보루 구실을 해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아베 내각은 고노 담화를 검증하는 한편, 6월 17일 집단자위권을 용인하는 각의(국무회의) 결정문 개요를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에 정식 제시했다. 각의 결정문의 개요는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져 국민 생명과 행복 추구 권리가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 등에 일본도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지금까지의 헌법 해석은 ‘일본에 대한 급박 부정한 ‘침해’가 있을 때’만 개별자위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려’만으로도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공명당이 남용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구 수정을 요구하는 수준이다. 일본 언론은 각의 결정이 시간문제라고 본다. 늦어도 7월 초 각의 결정을 단행한 뒤 자위대법 등 관련 법안을 가을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는 게 일치된 관측이다. 아베 내각은 12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반영,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한다는 목표도 세워두고 있다.

    사실 집단자위권은 한국이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유엔 헌장이 인정하는 국가의 고유 권리인 데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주한미군의 후방기지 구실을 하기 때문. 양면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현행 평화헌법의 기반 위에서 국제사회에 다시 받아들여졌다. 아베 내각은 현재 이 평화헌법의 기반을 허물려 하고 있다. ‘전후 체제’를 미국 식민지로 규정하고 진정한 독립을 이루겠다는 것. 독립의 필요조건은 안보적으로 자립 가능한 강한 군사력이며,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전쟁 전 군국주의에 대한 기억의 재(再)프로그래밍이다. 고노 담화 흔들기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아베 내각의 우경화 흐름에 대한 일본 각계의 반대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는 아베 내각의 발걸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내년쯤이면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동북아 외교 및 안보 지형도가 펼쳐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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