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4

2014.04.21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무모한 도전?

공부 효율성 높일 수 있는 계기…불합격해도 즐거운 추억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04-21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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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무모한 도전?

    김원곤 교수가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에 도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왼쪽 아래는 중국어 능력시험(HSK) 합격서.

    2010년 봄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를 출간하며 그동안의 공부 경험을 정리하다 약간의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지속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물론 공부에 대한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학원 공부와 집에서의 자습을 병행하면서 내 나름대로 효과를 봤던 몇 가지 공부 요령을 꾸준히 지속하는 수밖에. 요즘 학생 사이에선 흔한 일이 돼버린 해외 어학연수는 어차피 개인 여건상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책을 내고 달라진 외국어 공부

    그런데 책을 내고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책에 대한 과분한 호응만큼이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은근히 많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먼저 학원에 다닐 때 그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물론 같이 배우는 모든 학생이 책 한 권 때문에 갑자기 내 정체(?)를 다 파악했을 리는 만무했지만, 내 처지에선 그 사람들이 내 신분을 알든 모르든 스스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이 어디선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이른바 ‘익명성의 아름다운 시간’이 그렇게 속절없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책을 출간할 당시 다니던 중국어 학원에서 외국어 공부에 대한 특강을 하고 난 후에는 학원에서 처신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 특강은 수업을 듣던 중국어 학원 측이 요청해 이뤄진 것이었다. 주위에 대한 괜한 의식 때문에 학원 수업시간엔 아무리 졸려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유지하려 애를 써야 했으며, 혹시 질문 하나를 하더라도 멍청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써야만 했다.

    출퇴근 시간에 늘 이용하는 지하철을 탈 때도 주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승객 가운데 내 책을 읽은 사람이 과연 한 명이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설령 내 책을 읽은 사람이 있더라도 내 얼굴이나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책을 쓴 사람 처지에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한 예로, 내 책에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에 하는 외국어 공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설명돼 있는 데다 책 표지에 지하철 안에서 공부하는 내 모습이 사진으로 소개됐다. 이 때문에 내가 탄 지하철 칸에 만에 하나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견디기 힘들 만큼 피곤하거나 졸리지 않은 다음에는 억지로라도 외국어 교재나 사전을 꺼내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내 나름대로 애를 쓴 것이다. 자업자득이자 ‘사서 고생’의 표본이었다.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도 내 개인의 화두는 결국 외국어 공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속하는가였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앞서 말한 대로 지금까지 과정을 묵묵히, 끈기 있게 지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진리를 되새길 때였다.

    그런데 영어와 달리 일상생활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외국어를, 그것도 4개씩이나 지속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책을 내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학원 수강의 경우, 매달 외국어 학원 네 곳을 동시에 다니는 것이 시간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즉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한 달에 둘 내지 세 곳에서 외국어 강의를 번갈아가며 수강했다.

    그러던 2010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저녁 수업으로 주 3일씩 한 학원에서 ‘스캔 중국어’라는 이름의 강좌를 두 달째 수강하고 있었다. 중국 현지에서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들으면서 진행하는 청취 위주 강좌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달에는 나를 포함해 수강생이 단 2명밖에 없었다. 다른 수강생은 중국어를 전공하는 여자 대학생이었는데 마침 내가 책을 낸 사실까지 알고 있어 나를 약간 긴장하게(?) 만들었다.

    시험 준비 과정 일사천리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무모한 도전?

    외국어 공부의 첫 번째 원칙은 틈만 나면 단어를 외우는 일이다.

    어느 날 휴식 시간에 잠시 가벼운 잡담을 나누던 중 그 여학생이 중국어 능력시험인 HSK(한어수평고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국어를 전공하는 학생 처지에선 HSK를 치르는 게 필수 과정이라는 설명이었다. 비록 시험을 준비하고 그 결과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당락에 관계없이 시험을 치르는 과정은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재미로라도 쳐봐야겠네” 하고 가볍게 농담처럼 말하자 그 여학생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그날 밤 시험을 치러야 할 아무런 이유도, 특별한 장래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시험이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혹시 시험에 떨어져 괜한 망신이나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그런데 그 후 며칠 동안 이상하게 시험에 대한 미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 지속한 공부에서 오는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고자 나 나름대로 다양한 형식의 강좌를 들어보려 애 쓰던 차에, 시험이라는 중간 목표가 있으면 공부 효율성을 확실히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열심히 준비해 시험을 치면 설령 떨어지더라도 그 자체가 오히려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겠느냐는 묘한 심리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정해진 시한 내에 그 시험에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없는 만큼 시험 자체를 즐기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이렇게 일단 시험을 보기로 결심이 서자 그다음 시험 준비 과정은 오히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생각해보면 2003년 우연한 기회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 그것이 4개 외국어로 이어져 지금까지 꾸준히 공부하고 있듯, 4개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도전도 어느 날 마치 바람이 옷깃에 스치듯 문득 나에게로 다가왔다. 모든 것은 우연히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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