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2013.09.16

장밋빛 원산 특구 싱가포르에서 150억 달러 투자?

북한 경제개발계획도 4건…평양의 파격 행보에 관심과 시선 집중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3-09-16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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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밋빛 원산 특구 싱가포르에서 150억 달러 투자?

    남포 지역 경제개발계획도

    필자는 ‘주간동아’ 904호에서 원산 관광 특구 개발계획도를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필자가 보유한 북한의 경제개발계획도 4건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관련 분석을 전하기로 하겠다. 이 가운데 남포 특구 계획도는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원산 특구에 싱가포르가 15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취재 내용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주간동아’ 904호에 공개한 원산 관광 특구 개발계획도가 북한의 기존 계획도와 다른 점은 영어로 표기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필자가 확보한 다른 계획도와도 다르다. 이유가 무엇일까. 추가 취재 결과 흥미로운 내용을 파악했다. 싱가포르의 도시설계 전문가들이 북한당국과 상의해 계획도를 마련했고, 이들은 원산 관광 특구 개발계획을 설계하려고 수차례 북한을 오갔다고 한다.

    더욱 주목할 것은 싱가포르가 원산 관광 특구 개발에 15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과 싱가포르 정부 사이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게 취재원들의 설명이다. 마식령 스키장 건설을 비롯해 현재 원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개발 사업은 싱가포르 자본이 투입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핵 무력 보유 이후 자신감 표출

    정통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원산 투자 결정은 10년 후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자 하는 계획의 일환이라고 한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공군 시설인 갈마 비행장을 옮기고, 군 휴양 시설을 호텔로 개조하는가 하면, 군사도시 원산을 국제적 관광휴양지로 변모시키는 사업의 배경에는 싱가포르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싱가포르의 투자액이 150억 달러에 이른다는 주장은 일부 과장됐을 개연성이 있다. 북한당국이 추가로 외자유치를 하려고 성과를 부풀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산은 군사적 요충지다. 특히 원산항은 군항과 어항으로 훌륭한 조건을 갖췄다. 자연 방파제 구실을 하는 갈마반도 때문에 항구 안쪽 물결이 세지 않고 수심도 깊다. 이 때문에 대형 선박이 정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원산항은 또한 육상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경원선과 함경선, 평원선 등이 원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며, 원산은 함경도지역으로 이어지는 관문 구실을 한다.

    공군 비행장과 원산항 등 다양한 군사시설을 갖춘 군사적 요충지를 외부에 개방하고 관광 특구로 완전히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김정은 체제가 그만큼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한 직후 필자는 중국에 있는 북측 인사로부터 “김정은이 외부에 자랑할 만한 ‘가시적 성과’를 거둘 것을 지시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김 제1비서 스스로 원산에서 그 모델을 만들어내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원산 개방은 군사력에 대한 북측의 자신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2012년 12월 미사일 ‘광명성 3호’ 발사 성공, 석 달 뒤인 올해 2월 3차 핵실험. 세계를 놀라게 한 이 두 가지 ‘빅 이벤트’로 북한은 이제 핵 무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핵과 경제발전 병진 노선’에서 ‘핵은 이 정도면 됐다’는 확신을 갖게 된 북한이 이제는 초점을 경제에 맞추는 것으로 풀이된다. 핵심이 아닌 재래식 군사력은 경제를 위해 기꺼이 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가 원산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대외팀장은 “사실이라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원산의 대규모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점, 또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북한이 남한에 더 적극적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는 점 등이다. 원산 관광 특구 개발에 성공하려면 인접한 금강산 관광 재개가 매우 중요하다. ‘주간동아’ 903호에서 필자가 전한 바와 같이,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는 북한 스스로 “남쪽이 머저리입니까?”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관광 중단 사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원산 관광 특구에 참여할 외국 자본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를 잘 아는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원산 관광 특구에 대해서는 일본도 관심이 많다.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1882년 러시아와 영국의 군사력을 의식해 원산항을 강제로 개항한 장본인이 바로 일본이다. 이 때문에 원산에는 지금도 일본의 흔적이 적지 않다. 항만과 도로 같은 인프라, 중공업 공장 등을 일본이 주도적으로 건설했다.

    북한 건국 이후에는 일본인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루트가 바로 원산이었다. 일본 니가타항과 원산항을 오가는 북한 만경봉호가 여객 및 화물을 싣고 다녔다. 하지만 만경봉호 운항은 2006년부터 전면 중단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일본인 납치문제 등을 이유로 일본 정부가 만경봉호의 입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또한 원산항은 나진항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륙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참사 이후 일본 일각에서는 원산과 남포를 제조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산을 대외에 개방해 개발하려는 북측 움직임에 대해 일본 역시 참여 기회를 모색하며 깊은 관심을 보인다는 게 정통한 인사들의 설명이다.

    장밋빛 원산 특구 싱가포르에서 150억 달러 투자?
    올해 작성된 남포 계획도

    이번 호에 제시하는 경제개발계획도 4건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단초를 여럿 담고 있다. 신의주-평양-개성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노선도, 신의주-대계도 경제개발지구도, 강령군 특구 개발계획도, 남포 특구 개발계획도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남포 계획도는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다.

    남포 계획도는 올해 작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포는 대동강 하류 연안의 직할시로, 북한 제2 도시다. 계획도는 크게 2가지 개발지대를 보여준다. ‘남포 령남(영남) 공업개발지대’와 ‘온천 록색(녹색)개발지대’다. 남포직할시에 속하는 영남리와 온천군 2개 지역의 개발계획인 셈이다. 이들 두 지역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다. 영남리 개발지구의 특정 지점과 온천군 개발구의 특정 지점을 찍어 양쪽 1.2km 거리를 표시한 부분, 그리고 영남리 개발구의 특정 지점에서 서해갑문과 남포항까지의 거리를 각각 10km, 12km로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북한은 하역 기계 증설과 새로운 시멘트 전용 부두 건설 등을 진행하던 1978년 남포항을 서해안 최대 항구도시로 집중 개발했다. 86년 대동강 하구에 서해갑문을 완공하면서 남포항은 국제항구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서해갑문은 북한 최대 갑문이다. 8km에 육박하는 댐과 최대 5만t급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갑문 3기를 갖췄다. 북한당국은 서해갑문이 세계적 규모를 갖춘 시설이라며 대내외적으로 선전해왔다. 이러한 서해갑문과 남포항까지 거리를 계획도에 별도로 표기한 것은 남포 특구가 기존 시설과 연계해 개발될 계획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포 영남 공업개발지대에는 모두 7개의 개발구역을 조성했다. 여객과 화물이 드나들 수 있고 보세구역 등이 자리한 항만, 식품류 생산, 사료 생산, 경공업, 정보산업, 상업 봉사 등의 구역이다. 이 가운데 사료 생산 구역은 김정은 제1비서가 올해 들어 부쩍 강조하는 ‘축산업 육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천군에 들어설 예정인 ‘온천 녹색개발지대’는 말 그대로 녹색 친환경산업 위주의 개발이 예상된다. 온천군은 온천 평야와 해안 간석지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달했다. 과수 재배와 가축 사육이 많고, 수산물도 풍부하다. 특히 북한 최대 소금산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천혜의 여건 속에 다양한 자연 생산물을 갖춘 온천군을 그 특색에 맞게 친환경 생산 단지로 개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신의주와 평양, 개성을 잇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건설도 계획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이고 철도는 복선이다. 각각 길이 376km로 계획했다. 신의주-평양 구간은 187km, 평양-개성 구간은 189km에 이른다. 북한은 남한과의 협력 건설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필자는 중국 특파원 시절 북측 인사로부터 이에 대한 북측 의지를 전해들은 바 있다. 만일 이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한반도 물류의 대변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남북 간 물류 이동뿐 아니라, 동북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신의주-대계도 경제개발지구도’는 북한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신의주 특구 계획도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9월 북한은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발표하고 초대 행정장관에 중국 부호인 양빈 어우야그룹 총재를 앉혔다. 신의주를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홍콩식 특구로 개발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양빈을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하면서 북한의 독자적 특구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북한은 2004년 신의주 특별행정구라는 기존 명칭 대신 ‘신의주-대계도 경제개발지구’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개발 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자 북한은 2012년 홍콩 투자기업인 다중화 국제그룹과 신의주 특구 개발을 다시 추진한다. 2012년 8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 기간에 북한은 중국 측에 이러한 신의주 특구 개발 계획을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중국 정부예산은 투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필자는 특파원 시절 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취재했지만, 당시에는 여러 여건상 그 일부만 기사화해야 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더욱 상세한 내용을 전하고자 한다.

    강령군은 황해남도 남부 해안에 있는 지역이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연안에는 간석지가 발달했으며 주변엔 섬이 밀집해 있다. 강령군 바로 위에는 해주시가 자리한다. 북한은 강령과 해주 두 지역 모두 경제 특구로 계획하고 있다. 필자가 확보한 강령군 개발계획도의 명칭은 ‘강령군 국토건설 총계획도’다.

    6월 일본의 한 언론은 “북한이 강령군에 국제금융과 첨단산업 등의 거점이 될 경제특구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강령군 경제특구 계획 요강’이라는 북한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강령 특구 개발에 총 500억 달러가 투자되고, 특구 안에는 카지노 등도 건설될 예정이라고 해당 언론은 전했다.

    강령군 개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에서도 언급됐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2000년 6월 당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해주 옆 강령군을 공업단지로 개발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로 바꾸고 싶다”는 김정은

    장밋빛 원산 특구 싱가포르에서 150억 달러 투자?

    신의주-대계도 경제개발지구도

    지금까지 살펴본 북한의 경제개발계획도는 모두 화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이 장밋빛 결과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북한 투자 실패다. 김 전 회장은 4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포공단 투자 실패담을 상세히 털어놓은 바 있다. 대우그룹은 1996년 북한과 합작으로 남포에 경공업공단을 세웠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김 전 회장은 “북한은 자기네 땅 안에서 자본주의 공장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준비와 마인드가 부족했다. 북한에서의 사업은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얻었다. 북한의 체제유지 정책이 발목을 잡았다”고 토로했다. 김 전 회장뿐이 아니다. 대북투자에 실패한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9월 평양에서 열리는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이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뤄진다면 사상 최초의 일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벌어진 파격 행보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9월 방북해 김정은 제1비서를 면담한 미국의 옛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은 평양 체류 기간에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나의 재방북 문제를 거론하면서 ‘정말로 (북한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는 언급을 전했다.

    2001년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김정일 전 위원장은 그간의 변화상에 놀라며 ‘천지개벽’을 언급한 바 있다. 이후 북한으로 돌아와 경제개혁을 꾀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과연 이룰 수 있을까. 모두의 시선이 평양의 경제개발 행보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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