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7

2010.12.20

올해도 산타클로스가 오셨네!

‘겨울밤의 기적’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12-20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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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산타클로스가 오셨네!

    마르코 레이노 지음/ 이현정 옮김/ 옥당/ 340쪽/ 1만 원2000원

    스칸디나비아 북쪽 외딴섬에는 가난했지만 행복한 푸키 가족이 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빠와 엄마가 두 살이 채 안 된 여동생 아다를 치료하러 뭍으로 나가다가 목숨을 잃었다. 집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혼자 남았던 니콜라스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됐다. 아다의 시신은 찾지 못했는데, 니콜라스는 아다가 인어공주가 된 것으로 여긴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바닷가 코르바요키 마을 사람들은 이 고아를 한 가족이 1년씩 맡아 키우기로 한다. 그래서 니콜라스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다음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첫 번째 가족은 한네스 집이었다. 그 집의 다섯 살 에멜리가 바다에 빠진 것을 어렵게 구한 니콜라스는 마을의 영웅이 되고, 에멜리와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니콜라스는 한네스 가족을 떠나는 날 저녁, 아버지가 남겨준 칼로 조각한 나무 인형을 집 앞에 선물로 남겨놓는다. 코르바요키 마을의 여덟 가족은 모두 이 부지런한 소년을 기쁨으로 맞았다. 해가 갈수록 선물해야 하는 인형의 수는 늘어났지만, 니콜라스는 가족이 돼준 모든 사람에게 선물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은 크리스마스 아침마다 문 앞에 놓인 선물을 누가 갖다놓은 것인지 전혀 몰랐다.

    코르바요키 마을의 모든 가족을 거치고 나서 열다섯이 된 니콜라스는 이제 컴컴한 곳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해 봄은 늦게 찾아왔고, 여름에는 강한 비가 내렸다. 그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망쳤다. 고기잡이도 형편없어 모두가 굶어죽을까 걱정할 지경이었다. 니콜라스는 할 수 없이 마을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목수 이사키의 집에서 1년을 지내기로 하고 마을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은 떠나는 니콜라스에게 두 마리 사슴이 끄는 썰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다. 이 썰매는 썰매타기대회 우승자가 받은 상품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누가 우승하더라도 썰매를 니콜라스에게 주기로 미리 결정했었다.

    처음에 이사키와의 삶은 단조로웠다. 그러나 겉으로는 엄격하고 무서운 이사키가 따뜻한 마음을 내비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이사키가 가족을 잃은 슬픔마저 알게 되고서는 완벽한 가족이 돼 크리스마스에 선물 돌리는 일을 함께 한다.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이사키가 나이가 들어 죽고 나서 니콜라스는 이사키가 남긴 유산을 활용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로 돌릴 썰매 만드는 일에 온 정성을 쏟는다. 그리고 니콜라스마저 나이가 들어 마지막 선물을 돌리고 사라진 다음, 니콜라스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가족인 에멜리 딸 부부는 아들의 크리스마스를 망치지 않기 위해 남몰래 선물을 준비한다.

    나는 연말이면 출판계를 정리하는 많은 업무로 잠을 아껴야만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까운 이들의 와병으로 심사가 편치 않았다. 연평도 사건 이후 사회 분위기마저 얼어붙어 한동안 끊었던 술을 자주 마시게 됐다. 어느 해보다 힘겨운 한 해를 보내느라 빨리 2010년이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데다 아버지 제사마저 있어 심하게 우울한 밤, 오래전에 선물받았던 ‘겨울밤의 기적’을 우연히 읽기 시작했다.



    핀란드 작가 마르코 레이노가 산타클로스의 전설을 그린 이 소설은 제목의 딱딱함과 달리 매우 부드럽고 잔잔한 작품이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천애고아가 되고, 해마다 새로 이룬 가족과 8년 동안이나 어김없이 이별하고, 열다섯에 맞이한 새아버지와도 이별한, 너무나 슬픈 운명.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겪는 가난한 어촌마을이라는 배경은 그런 운명을 더욱 깊게 한다.

    하지만 1년 중 364일을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의 크리스마스 선물 만드는 일에쓰는 슬픈 주인공 니콜라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내 마음은 저절로 훈훈해졌다. 한 해도 빠짐없이 사고 현장을 찾아가 얼음을 뚫고 어린 나이에 이승을 하직한 동생 아다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넣어주면서 홀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반복되는 장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두려움마저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생들이 제사를 지내려고 왔는데도 눈인사만 하고 소설의 마지막까지 읽은 다음에야 그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동화처럼 아름다워서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다. 이웃을 돕는 행사도 많이 열리는 때다. 주변에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대단한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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