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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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을 대체 어쩌란 말이냐

교과부 장관 “줄여라” vs 대교협 “계속 반영”… 학부모와 수험생들만 어리둥절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12-20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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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을 대체 어쩌란 말이냐

    11월 21일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11학년도 수시모집 일반전형 논술고사에 총 6만6570명이 응시했다.

    12월 5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 총장을 만나 “논술시험을 비롯해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는 전형을 줄이면 재정 지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다음 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발표한 ‘2012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발표’에 따르면, 2012년 대입전형에서 논술을 반영하는 학교는 35개교로 2011학년도 34개교보다 오히려 한 곳 늘었다. 학원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은 여전히 궁금하다. 도대체 논술 준비를 해야 할까, 안 해도 괜찮을까?

    교과부 장관과 대교협의 ‘논술 불협화음’의 시작점을 알아보자. 유웨이중앙교육 이만기 평가이사는 “대교협 발표에는 장관의 발언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 같다. 공교롭게 장관의 발언이 공개된 다음 날 대교협이 발표를 한 것일 뿐, 논술 반영 학교 명단은 이미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대학들이 논술 반영 전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만큼, 2011년 3월경 추가 발표에는 장관의 뜻을 받아들일 개연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터디마스터 공부법연구소 신진상 소장은 “이 장관의 발언은 최근 정부의 ‘사교육 죽이기’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 전형 확대, 수능-EBS 연계 등을 통해 ‘사교육 잡기’에 앞장섰다. 한편 올해 수능이 어렵고 재수생이 강세를 보이면서, 수능 이후 수시모집 논술 100% 전형에 응시하거나 정시 논술을 통한 역전을 노려 논술에 ‘올인’하는 수험생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 주요 대학에 논술시험이 있는 날이면 일대가 마비됐고 논술학원도 호황을 맞았다.

    정부의 ‘사교육 죽이기’ 이제 논술 차례?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눈이 고울 리 없다. 서울시 교육청은 ‘논술 대목’인 11월 19일부터 8일간 고액과외 불법 논술강의 등을 단속해 총 30곳을 적발, 45일간 교습 중지 등 행정처분을 내렸다. 한편 국세청도 12월 13일 “논술학원 6곳을 포함해 입시 관련 학원 사업자, 인기 강사 등 17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 대치동에서 논술강사를 하는 A씨는 “논술강사는 11월 중순부터 한두 달 벌어 1년을 먹고사는데 시즌에 작정을 하고 덤비니까 감당이 안 된다”며 ‘정부의 계획적인 논술 죽이기’라고 말했다.



    사실 논술 사교육은 최근 부침(浮沈)을 겪었다. 2000년대 들어 사교육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논술 사교육 시장도 덩달아 성장해 2007년 2조 원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잉글리시 프렌들리’ 교육 기조로 영어 교육에 방점이 찍혔고, 반대로 “논술시험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으로 인해 논술 교육이 시들해졌다. 대교협도 “‘논술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를 막겠다”고 나서 2008학년도 정시 45개교, 수시 29개교였던 논술고사 반영 대학이 2009학년도에는 정시 14개교, 수시 26개교로 감소했다. A씨는 “2008년 이전 이 일대만 100곳도 넘었던 논술학원이 10%로 줄었다. 그 자리에 영어학원이 들어섰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2010학년도 전체 모집인원의 57.9%, 2011학년도 60.7%를 수시로 선발하는 등 수시모집이 확대되고 고려대, 성균관대, 경희대, 동국대 등에 학생부나 수능과 관계없이 논술 점수로만 수험생을 우선 선발하는 수시모집 전형이 확대되면서 다시 한 번 ‘논술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또한 서울대는 정시모집에서 인문계열뿐 아니라 자연계열 지원자까지 논술시험을 치러 상위 1% 학생들에게 논술은 ‘선택 아닌 필수’로 인식됐다. 게다가 수능-EBS 연계 때문에 수능 변별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확대되자 많은 학생이 불안한 마음에 논술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논술 확대’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임철일 교육학과 교수는 “현행 선택형 수능으로는 고차적·종합적·창의적 사고 능력을 평가하기 어렵다. 상위권 대학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확인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고 공정한 것이 논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왜 학생들이 사설학원으로 가는지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지, 무조건적으로 논술 금지령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행 논술시험은 학교 수업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논술을 위한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1년 인하대 인문계열 수시모집 1차 논술 문제를 살펴보면 “A, B, C 세 방법 중 자동차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두 개의 방법을 선택하여 ‘조건’에 따라 논술하라” “‘다음’의 토론에서 ‘자료’와 부합하는 주장을 모두 고르고, ‘자료’를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그 근거를 제시하라” 등 단순히 주제에 대해 의견과 주장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신진상 소장은 “요즘 대입 논술은 사고력을 측정하기보다 학교 측이 원하는 답을 썼느냐를 판단하는 시험”이라며 “학교 측에서도 단시간에 그 많은 답안지를 채점하려면 정형화된 답이 나오는 논술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교육 없이는 풀 수 없는 논술

    서울 강서구 S양은 “평소 글쓰기를 잘하던 애들도 논술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학원에서 유형을 분석해주고 스킬을 익혀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모 여고 국어 교사는 “학교별 유형도 다 다르고, 40여 명 학생의 지원 학교도 제각각인데 교사가 그 모든 유형을 익혀 개인에 맞게 교습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논술은 사교육’이란 공식이 생기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이 장관의 발언처럼 대학들이 논술을 포기하게 될까?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장관의 한마디에 논술을 포기하면 대학 자율화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 소장 역시 “교과부가 얼마나 인센티브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이 지금껏 논술을 통해 벌어들인 전형료만 해도 천문학적이었으므로 경제적으로 따져보더라도 대학이 쉽게 논술을 포기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기 평가이사는 “만약 대학이 논술을 포기한다 해도 구술, 면접 등을 늘릴 수밖에 없어 관계 사교육은 현 논술학원만큼 늘어날 것이다. 결국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대책일 뿐”이라면서 사교육 시장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능과 EBS의 연계로 가장 피해를 본 건 사교육 시장이 아니라 교재를 발간하는 출판사였어요.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EBS 대비반’을 만들면서 현상을 유지하거나 성장했죠. 논술 역시 주요 대학만 마구잡이로 잡는다고 해서 사교육이 잡힐 것이라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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