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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손금 보듯 평양 감시‘U-2’機는 비행 중

전자적 침입 대북정보 수집 핵심전력 … 지상 20km 이상서 촬영 실시간 체크

손금 보듯 평양 감시‘U-2’機는 비행 중

손금 보듯 평양 감시‘U-2’機는 비행 중

한반도 상공을 감시하고 있는 U-2기.

스파이 항공기가 지대공 미사일 대대의 작전지역으로 들어섰다. 소련에서 가장 중요한 ‘티우라탐’ 미사일 시험기지의 레이더를 도청하며 카메라로 촬영한 항공기는 다음 임무를 위해 비행 중이었다. 지난 4년간 이 항공기가 레이더 네트워크를 도청해오면서 미 국가안보국(NSA)은 소련의 레이더 방어망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표적을 파괴하라.”

소련군 미사일 대대 지휘관이 명령했다. 4시간 동안 항공기를 추적해 항로를 파악하고 있던 소련은 24발의 SA-2 지대공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했다. 미사일은 2만1000m 고공에 뜬 항공기 근처에서 폭발해 파편이 꼬리와 날개를 때렸다.

“이런 세상에, 한 방 맞았군.”

조종사 프랜시스 개리 파워스가 충격으로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다. 1960년 5월 1일, 소련 영공을 24번째로 침투했던 스파이기는 이날 마지막 비행이 되었다.



비상 걸린 미군 정찰비행대대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미 중앙정보국(CIA) 작전센터에 전해졌다. CIA 국장 앨런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찾아가 “격추당했지만, 조종사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당시 ‘소련 영공 침범 프로젝트’는 아이젠하워가 승인해 시작됐다. CIA의 위장계획에 따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대변인은 TV 카메라 앞에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했다. “기상관측 중이던 NASA의 항공기 한 대가 실종됐습니다.”

이틀 후,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미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이 우리 영공을 침략했다. 조종사는 지금 우리 손에 있다.”

아이젠하워는 실패한 계획에 자신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숨겼고 흐루시초프가 기대한 공식사과도 하지 않았다.

조종사 파워스는 1962년 2월 동서 베를린을 연결하는 ‘글리니케(Glinicke)’ 다리로 끌려나와, 미 연방수사국(FBI)에 검거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과 교환되어 2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루돌프 아벨은 소련 첩보기관(KGB)의 대령인 거물급 스파이였고, 파워스는 CIA의 조종사였다. 그가 조종하던 기종은 CIA가 소련 영공을 침투하고자 비밀예산으로 개발한 고공 스파이 항공기 U-2였다. U-2는 1956년부터 소련과 동유럽의 하늘을 헤집고 다니며 스파이 비행을 시작했고, 개발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한반도에선 지금도 여전히 비행하고 있다.

기체가 온통 검은색으로 번뜩이는 항공기가 활주로 끝에서 엔진을 걸어 점화했다. 미 7공군사령부가 있는 오산 AB(Air Base)의 활주로에서, 특이하게도 양옆으로 자동차 2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질주하던 항공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마치 글라이더에 엔진을 단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길고 넓은 날개를 가진 고공정찰기 U-2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제 불과 10여 분이면 군사분계선에 도달해 전자적인 방법으로 평양을 침입하게 될 것이다.

손금 보듯 평양 감시‘U-2’機는 비행 중

2003년 1월 26일 주한미군 제5 정찰비행대대 소속 U-2기가 경기도 화성에 추락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7공군의 전략정찰기 U-2는 ‘제5 정찰비행대대’가 운용, 통제하고 있다. 제5 정찰비행대대는 미국 캘리포니아 빌 AFB(Air Force Base)에 주둔하는 제9 정찰비행단 소속의 파견부대다. 미 공군은 자국 기지는 AFB, 해외 기지는 AB로 표기한다. 한반도 대북정보 수집의 핵심전력인 정찰비행대대는 북한군을 공중 감시하고 정찰한 영상을 지상으로 실시간 전송하는 일이 주 임무다. 제5 정찰비행대대의 지휘관 스펜서 토머스 중령은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정찰과 전술정찰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U-2(U-2S Block 20)의 영상정보 탐지장치(SAR)는 고급 레이더 버전인 ‘레이시언’ ASARS-2다. 탐지거리가 160km 이상인 레이더는 그 거리 안의 모든 목표에 전자적으로 침입할 수 있다.

U-2는 전파를 쏘아 영상을 탐지하기에 기상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촬영은 레이더와 전자광학, 카메라 모두 가능하다. 지상 20km 이상의 고공에서 촬영한 북한군 관련 특급 영상정보는 케이코익(KCOIC)으로 불리는 7공군의 ‘한국전투작전정보본부’로 보내진다. 케이코익은 스파이 위성 키홀(keyhole), 전자정보 수집기 RC-135 등 숱한 정보 전력이 수집한 영상과 통신감청 정보, 레이더 정보를 받아 처리한다. 진공청소기로 통하는 RC-135는 어디를 비행하든 전자 데이터는 모조리 낚아채 빨아들인다.

U-2의 퇴역은 결정되지 않아

케이코익에서 분석한 정보는 한미연합사의 두뇌에 해당하는 지하벙커 ‘CC 서울(Command Center Seoul)’로 전송되며, 필요한 경우 용산 국방부 지하의 ‘B2 벙커’로 불리는 합참 지휘통제실로도 보내진다.

북한 잠수함이 서해 남포의 비파곶 기지를 떠나는 현장을 U-2가 촬영하면, CC 서울의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현재 한미연합사의 대북 감시 수준은 ‘워치콘 2’로 격상돼 있다. 워치콘(Watch Condition)은 북한군의 이동을 감시하는 수준을 나타내며, 평시 3단계에서 2단계로 상향 조정됐다. 이 때문에 제5 정찰비행대대는 비상이 걸린 상태라 U-2의 정찰임무도 늘어났고, 대대의 정보수집 능력도 강화된 상태다.

정찰대대는 7공군의 ‘디지털 근접항공지원’에도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파괴해야 할 표적을 찾아내 좌표를 설정하고 지상통제소와 교신해 정밀유도무기의 선택발사까지 불과 5분에 이루어지는 것이 디지털 근접항공지원이다. 미군의 이 정찰부대는 한반도의 긴장상황에 반드시 필요한 특별한 전력이다.

U-2는 조종하기가 힘들어 공군 조종사들이 ‘드래건 레이디(Dragon Lady)’라 부른다. 성격이 거칠어 사나운 여자처럼 다루기 쉽지 않은 탓에, 미 공군에서 U-2를 통제할 수 있는 조종사가 고작 50여 명이다.

조종이 까다로워서인지 한반도에서만 여러 번 추락했는데, 미군이 확인해준 자료에는 모두 6번으로 돼 있다. 1984년엔 오산 AB 부근이었고 1992년엔 동해에 추락했으며, 2003년 1월에는 엔진 고장으로 화성시 39번 국도에 떨어지면서 시골 카센터 하나를 날려버렸다.

미 국방부는 U-2를 2007년부터 연차적으로 퇴역시키려고 했다. 3대씩, 6대씩 2011년까지 31대를 모두 퇴역시켜 U-2 시대를 마감할 계획이었다. 주한미군의 U-2도 2008년을 전후해 퇴역시키고 ‘글로벌 호크’ 무인정찰기로 대체할 예정이었다. 나중에 미 국방부는 이 계획을 수정해 2012년에 퇴역시키는 것으로 바꿨다. 그러나 미 공군의 생각은 다르다.

손금 보듯 평양 감시‘U-2’機는 비행 중

2009년 6월 6일 평택시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뒤편에 보이는 것이 U-2기다.

7공군과 U-2 운용부대인 제5 정찰비행대대 관계자들은 “U-2의 퇴역시기에 관한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정찰대대의 관계자도 이런 답변서를 보내왔다. ‘미 공군은 2012년 이후에도 단독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군수회사는 의회에 로비를 하고, 의회는 국방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의회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방부는 무인정찰기로 대체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운용자인 미 공군은 U-2를 더 신뢰한다.

국가 안보를 위한 최전선은 정보력

50년이 넘도록 U-2가 미군의 주력정찰기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인정찰기가 해낼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U-2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2010년 3월 21일자는 아프간에서 U-2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9·11테러 발생 다음 달인 2001년 10월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현재 개전 8년 8개월째가 됐고, 베트남 전쟁보다 더 길어졌다.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은 1000명의 전사자를 냈고, 그중 80%는 급조폭발물(IED)에 당해 전사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는 처지였다.

아프간에서 U-2는 21km 이상의 고공에서도 도로의 먼지가 흐트러진 흔적까지 잡아내고 있다. U-2의 개량형인 ‘U-2S 블록 20’은 탐지장치의 센서 성능이 아주 뛰어나 이런 촬영이 가능하다. 미군은 이 정보를 통해 도로에 매설된 IED와 지뢰를 찾아낸다. 정찰비행에 나선 U-2는 지상의 야전군과 무선으로 통신하며 위험 가능성을 잡아내고, 아군 병력의 이동로를 탐색하면서 전투를 지원하고 있다. U-2의 전투지원으로 미군 ‘폭발물 처리반(EOD)’은 150여 개의 폭발물을 찾아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한편 U-2는 탈레반의 무선통신을 가로채 도청하며 위험지역의 정보를 수시로 야전군에 전송한다. 미군 정보부대는 U-2의 정보를 분석한 뒤 무인정찰기를 보내 확인하고, 명령이 내려오면 무인공격기로 목표를 폭격한다. 미군은 이런 방법으로 알 카에다의 3인자이자 아프간 최고지휘관인 ‘알 야지드’의 은신처를 폭격해 5월 21일 그를 암살했다.

지난 1999년 6월 서해에서 북한 해군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을 때, U-2는 그 시간에 북한을 감시하고 있었다. U-2가 잡아내는 영상은 한미연합사 ‘CC 서울’의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비쳤다. 평양의 관문인 남포 부근 초도에 있는 북한 해군 9전대의 함정들을 U-2가 비추기 시작했다. 9전대는 당시 한국 해군과 충돌한 8전대의 2배 전력을 지닌 부대였다. 9전대의 이동이 없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CC 서울의 근무자들은 서해상의 포격전이 더 확대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미국이 적대 국가를 탐색해 감시하는 방법에는 또 한 가지가 있다. 그들의 전자도청업체인 국립정찰국(NRO)의 80여 기나 되는 스파이 위성을 고공에 띄우는 것이다. 스파이 위성 KH-11은 1984년 흑해의 니콜라예프 해군기지에서 소련 최초로 건조 중이던 핵추진 항공모함을 800km의 고공에서도 선명하게 잡아냈다. 그뿐 아니라 코카서스에서 기동훈련 중인 러시아 전차부대 부대원 간의 교신도 모조리 도청하고 있다. CIA와 국방부가 공동 책임으로 운영하는 NRO는 미 국무부 전체 예산의 3배를 한 해에 쓰고 있다.

1996년 북한 잠수함이 동해를 지나 제주도 쪽으로 이동하며 사흘씩이나 한국 영해를 휘저었지만, 좌초당해 들킬 때까지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잠수함을 고공에서 3시간 간격으로 추적했던 것은 스파이 위성이었다.

정보 방위 수준 높이기 시급

손금 보듯 평양 감시‘U-2’機는 비행 중

미국 캘리포니아 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한 로켓. 여기에는 미국 국가정찰국의 스파이 위성이 실려 있다.

최근 천안함 격침사건은 북한의 현실적 위협을 확인해준 기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5월 13일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안보회의’를 열었다. 안보회의에서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의한 위협’이 재평가됐고, 군의 정보전력 강화를 위해 앞으로 5년간 국방예산을 늘리면, 대잠수함 음향탐지 장치인 소나(SONAR)와 레이더 성능이 개선되고, U-2 수준의 고공정찰기 도입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정보수집기를 미국에서 도입해 정보사령부에서 ‘금강정찰기’로 운용하며, 군사분계선에서 대략 80km까지 북한 지역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금강정찰기는 U-2에 비해 체공시간이 절반에 불과한 5시간 정도며, 탑재된 영상정보 탐지장치(SAR)의 성능도 약하고 탐지거리도 짧아 충분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군은 아직도 군사 정보의 상당 부분을 미군에 의지하는 형편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2012년 전시작전권 전환 결정’을 내린 뒤, 미군은 민감한 대북 정보에 대해 ‘US Only’로 구분해 한국 측 장교가 보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군이 대북 정보를 요청하면, 이미 한참 지난 정보를 전해준다. 따라서 실시간(real time) 사진 정보를 분석하기가 어렵다. 실시간 사진이 꼭 필요할 때도 미군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미 해군정보국(ONI)의 ‘컴퓨터 정보 분석관’이던 로버트 김은 19년간 군사기밀을 다루었다. 그는 특급정보들을 분석하면서, 미국이 우방인 영국과 캐나다 호주에 주는 대북정보를 한국에는 주지 않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과학적 정보수집 수단이 빈약한 한국군만 모르고 있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는 한국이 알고 있어야 할 ‘대북정보’를 아무런 대가없이 넘겨주었다가 미 연방수사국과 해군 범죄수사대(NCIS) 요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가 넘겨준 정보는 한국군과 한반도 평화유지에 유익한 정보였지, 미국의 안보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스파이 혐의로 기소돼 9년형을 선고받았고, 형무소에서 7년 반을 복역했다. 그는 수감 중 한국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혈맹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결정할 뿐입니다.”

유럽은 20세기 최후의 전쟁인 ‘코소보 전쟁’을 치르며,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하지만 미국에게 기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탄식했다. 유럽은 그 전쟁을 통해 자신들도 강력한 공군력과 함께 정찰위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다시 위기가 닥쳤을 때, 유럽의 독자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우리가 주한미군의 ‘감시와 정찰’이란 정보자산을 그들 수준으로 구축하려면 적어도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정보와 정보력의 가치다. 국가의 안전을 위한 최전선은 정보와 지식이며, 미리 아는 일은 적을 이길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는 모든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열쇠다. 보이지 않는 정보 전쟁이 앞으로 다가올 전쟁의 결과를 결정짓는 만큼, 우리 군도 방위 수준을 높여 미군에 덜 의존하고, 마침내는 그들과 대등해져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0.06.21 742호 (p50~53)

  •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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