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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뇌를 울리고 웃기는 ‘뉴로시네마’

영화 제작에 신경과학 활용 급증 … 미묘한 감정 판별 편집과 재촬영도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뇌를 울리고 웃기는 ‘뉴로시네마’

뇌를 울리고 웃기는 ‘뉴로시네마’

관객의 뇌 심리를 활용한 것이 영화 ‘아바타’의 성공을 가져왔다.

3차원(3D) 블록버스터 ‘아바타’는 국내에서만 약 13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역대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3D영화는 이전에도 수차례 시도됐지만 아바타가 성공의 주인공이 됐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제작진은 3D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알았을까.

영화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통해 3D영화가 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고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뇌 연구가 발전하면서 이처럼 영화 제작에 신경과학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화 마케팅에서부터 편집, 촬영까지 활용 범위도 넓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뉴로(neuro·신경)’와 ‘시네마(영화)’를 합친 ‘뉴로시네마(neurocinema)’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뇌는 3D에 더 끌린다

‘아바타’의 흥행 보증수표는 3D에 이끌린 관객의 뇌였다. 영화 ‘타이타닉’ 이후 완성도 높은 3D영화 제작에 매달린 캐머런 감독은 어느 날 신경과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의뢰했다. 영화 제작에 5년을 쏟은 그였지만,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3D영화의 흥행을 자신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연구진은 뇌를 손금 보듯 살피는 fMRI 장치를 이용해 기존 영상과 3D영상에 대한 관객의 뇌 심리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3D영상을 볼 때 뇌 안의 신경들이 더 많이 자극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 2D영화와 3D영화 가운데 뇌가 무의식적으로 3D에 더 끌린다는 것. 이로써 캐머런 감독과 제작진은 ‘아바타’의 흥행에 확신을 갖게 됐고, 결국 영화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뉴로시네마의 가능성이 상당 부분 입증된 셈이다.



뉴로시네마가 부상한 것은 전적으로 fMRI 장치 덕분이다. fMRI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동함에 따라 혈액이 모이는 현상을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보여준다. 원래 뇌 진단과 연구에 활용되던 fMRI는 2000년대 들어 마케팅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제품이나 광고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고 fMRI로 뇌를 촬영하면 소비자의 무의식적 반응을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심리와 욕망에 민감한 다임러 크라이슬러, 포드, GM 같은 자동차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켈로그, P·G 등 세계적인 소비재 회사까지 너도나도 뉴로마케팅을 도입했다. 자동차 광고가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연상시키고,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를 찾아내 개성을 불어넣는 것도 뉴로마케팅의 결과다. 기업들은 뇌 분석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며 제품 디자인을 바꾸거나 포장 또는 광고 시안을 제품 출시 전에 바꿀 수도 있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셈이다. 영화 제작자들도 최근 이 과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경과학은 소비자를 사로잡는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관객에게 ‘먹히는’ 참신하고 강력한 영상 콘텐츠를 찾는 수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관객의 뇌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을 순간순간 읽어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 뇌가 자극받는 부위와 실제 촬영한 영상을 본 뒤 뇌의 반응을 비교하면 의도한 효과를 얻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미국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허버드 박사는 “영화의 시퀀스나 신에 따라 뇌가 반응하는 부위를 분석하면 원래 의도에 가깝게 재편집하거나 서툰 연기를 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가장 슬픈 장면에서 슬픔을 관장하는 대뇌 변연계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면 감정을 몰입할 수 있게 재편집하거나 재촬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공포영화 제작자 가운데는 두려움, 공포를 관장하는 대뇌 편도체(아미그달라)의 변화를 참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마인드사인 뉴로마케팅사 연구진은 2007년 개봉한 공포영화 ‘팝 스컬(Pop skull)’을 독일 지멘스의 3T fMRI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24세 여대생들에게 영화의 주요 장면을 보여주고 fMRI로 뇌사진을 찍었다. 이 실험에서 감독이 공포심을 극대화하도록 의도한 부분에서 실험 참가자의 아미그달라 영역이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켜진 것으로 나타났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피터 카츠는 “첫 장면에서 가장 많은 공포심을 유발하고자 했는데, 실제로 공포심을 느끼는 뇌 영역이 반응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공포영화는 ‘디 아더스(The Others)’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등 초현실 스릴러와 ‘소(Saw)’ ‘호스텔(Hostel)’ 같은 본능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나뉘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은 “앞으로 공포물은 아미그달라를 자극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포물이나 액션물, 코미디물 등 장르에 상관없이 지루함은 관객을 멀어지게 하는 골칫덩어리. 허버드 박사는 “영화의 가장 큰 적인 지루함과의 전쟁에도 뉴로시네마가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회나 일부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 개봉 전에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볼 때와 관람 뒤의 반응은 다른 결과를 보이는 때가 많다. 제작자 피터 카츠는 “심지어 영화 관계자들조차 영화를 본 뒤 구체적인 감정을 기억해내는 데 애를 먹는다”며 “fMRI를 활용하면 매 순간 관객의 반응을 볼 수 있어 영화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축구광들도 로맨틱 코미디 즐겨

뉴로시네마는 공포영화 외에도 영화산업 곳곳에 응용되고 있다. 관객의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 기복을 판별하는 데 그만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마케팅 담당자들은 TV 스폿광고를 낼 때 영화 장르에 따라 어떤 장면을 어떤 각도로 내보낼지 고심한다. 시청자는 대개 무의식중에 헬리콥터가 폭발하는 장면보다는 커피숍에서 벌어지는 키스신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적용하면 장르에 따라 시청자에게 더 호소력 있는 광고 화면을 제공할 수 있다. 뉴로마케팅과 결합해 잠재 관객층을 알아내는 경우도 있다. 미국 과학자들은 남성 축구팬의 대부분이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를 은근히 즐긴다는 결과를 알아냈다. 이처럼 뇌 영상을 통해 천차만별인 관객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신경과학을 이용한 영화 제작과 마케팅이 인간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뉴로시네마 찬성론자들은 감독에게 신경과학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알아볼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반면 감독이 제작 과정에서 지나치게 관객의 눈치를 볼 수 있음을 우려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신경과학이나 뉴로마케팅은 관객과 소비자의 숨겨진 생각을 읽는 도구이지, 새로운 행동을 유발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주간동아 2010.05.17 737호 (p68~69)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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