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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갈팡질팡 그린정책 02

“3일 만에 의견 수렴 도대체 말이 됩니까?”

‘녹색법 시행령’ 기업들에 직격탄 … 이중규제 정리, 기밀 유출 규정은 없어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3일 만에 의견 수렴 도대체 말이 됩니까?”

■ 녹색법 시행 기업은 지금

“법 시행으로 기업이 사업장 환경개선 등에 100억 원을 투자한다고 칩시다. 제품 1개당 순이익을 5%로 잡으면, 2000억 원어치를 만들어 팔아야 그 돈이 나와요. 그러니 기업으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일 수밖에요.”(A기업 관계자)

“(정부의) 방향은 맞습니다만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답답하네요.”(B협회 관계자)

“MB가 저렇게 적극적인데 인터뷰하다가는 찍혀”

순탄치 않았다. 국내 각 기업과 업종별 협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말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할 말은 많지만 자신의 발언이 기사화되면 정부에 ‘밉보여 찍히게’ 될 것이고, 그 대가는 오래 치러야 한다는 ‘낙인 효과’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4월 14일 ‘저탄소 녹생성장기본법’(이하 녹색법) 시행을 앞두고 기자는 3월 22일~4월 5일 국내 10여 개 업체 및 업종별 협회 관계자들과 만나거나 전화 인터뷰를 했다. 지난 2월 녹색법 시행령안 입법예고 이후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와 언론에서는 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했다(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16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는 입법예고에 맞춰 두 차례 ‘산업계 건의문’을 냈다). 하지만 건의문 외에 어떤 곳에서도 법 시행에 따른 기업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서둘러 전화를 끊은 한 협회 관계자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업들은 그동안 수차례 모임을 갖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행령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했다. 그래서 경제단체 명의로 건의문을 낸 것이다. MB(이명박 대통령)께서 저렇게 앞장서서 해보겠다는 ‘녹색성장’ 아닌가. 개별 기업으로선 대놓고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경제단체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공동의견을 낸 것이다. (인터뷰를 거절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

녹색법은 여러 부처에서 각각 관리하는 환경 법률을 하나의 상위법으로 통합해 효율적으로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환경정책의 결정판이다. 2020년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20년 배출 전망치 대비 30% 감축한다는 대명제 아래 환경부 장관 소속 온실가스 종합정보센터를 두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을 지원하고 관리 체계를 운영하는 게 핵심. 대상 기업과 사업장은 5년 단위 및 연차별 목표와 이행계획, 그리고 에너지 사용량 등을 포함한 이행계획을 매년 12월 말까지 부문별 정부기관에 제출해야 하며 정부기관은 이를 정보센터에 제출해야 했다.

시간에 쫓겨 졸속제정 기업비밀 유출될라

“3일 만에 의견 수렴 도대체 말이 됩니까?”

사업장 주변 환경과 폐기물 관리에 치중해온 기업들은 녹색법 시행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며 사업장 환경관리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없음).

정부는 4월 6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시행령안을 심의, 의결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정부와 산업계의 표정은 다르다. 정부는 4월 14일 시행을 앞두고 모든 법적 절차를 끝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이지만, 산업계는 ‘녹색은 있는데 성장은 없는’ 급조된 시행령이 모습을 드러냈다며 암울해한다.

“주말에 재입법예고를 하고 3일 만에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4월 14일 시행을 앞두고 얼마나 급했으면 그러겠습니까. 목표는 정해놓고 따라오라는 건데, 그만큼 허술하게 시행령안을 만들었다는 방증 아닙니까.”

대기업 관계자 C씨의 말처럼 정부는 지난 2월 시행령 입법예고 후 각계의견 수렴에 나섰고, 3월 26일에는 재입법예고를 해 29일까지 의견을 수렴했다.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2월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업체 설정 및 관리를 지식경제부와 환경부가 공동관리(상호 협의)하게 돼 있어 이중규제 논란이 빚어졌기 때문. 주무부처 지정은 법으로 규정해야 할 기본 중 기본이지만 부처 간 이해충돌로 주무부처 대신 ‘정부’라는 ‘어정쩡한’ 발표를 했다.

이에 따라 재입법예고안은 총괄운영은 환경부, 산업·발전 부문은 지식경제부, 건물·교통 부문은 국토해양부, 농업·축산 분야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맡게 하는 등 소관 부문별 목표관리 업무를 조정했다.

산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였다지만, 여전히 부문별 관리기관이 목표관리를 담당하게 돼 있는 데다 동시에 환경부가 시정조치 요청 및 합동조사를 할 수 있어(재입법예고된 시행령안 제26조 4항) 이중규제 논란은 계속됐다. 여기에 “온실가스 목표 및 에너지 목표에 관한 이행실적을 ‘상호 인정’해 이중규제가 되지 않는 형태로 통합 운영하는 기준을 마련한다”고 돼 있어, 여전히 ‘상호 인정’에 따른 모호성이 남았다(제26조 2항). 결국 경제계에서는 2차 건의문을 통해 이 부분을 명확히 해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3일 만에 의견 수렴 도대체 말이 됩니까?”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각 업계 관계자가 모여 1, 2차 시행령안을 분석하고 다시 건의문을 만드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문제는 처음부터 주무 관장기관을 정하지 않고 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처마다 숟가락을 놓고 싶어 하는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주무기관도 없는 어정쩡한 시행령이 됐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바로잡으려고 매달렸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주무기관 논란은 정리됐다는 후문이다.

‘주간동아’가 법제처의 심사를 마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안’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최종 시행령안에는 ‘상호 인정’ 부분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가 산업계 이행 실적을 재평가하고 지식경제부 등과 합동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항목도 삭제했고, 합동조사 권한도 제한했다. 이중규제 비판이 제기된 조항을 손질한 것. 다만 관리대상 업체가 실적을 허위 보고하는 등 ‘중대한 문제’가 인정되는 경우 부문별 관장기관과 공동으로 관리업체의 실태를 조사할 수 있도록 구체화했다.

“인센티브 없이 페널티만 규정 너무했다”

“업계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간에 쫓기다 보니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나중에 덧대는 방식으로 진행돼 불만은 여전하다. 나머지 건의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법 시행으로 자칫 기업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의 말처럼 법제처 심사를 끝낸 시행령은 업체가 센터에 제출해야 할 공정목표 및 이행방법, 사업장별 생산설비 현황 및 가동률, 사용 에너지 종류 및 사용량 현황, 생산 공정별 온실가스 배출 현황 및 에너지 소비량 등을 부문별 관장기관과 센터에 제출하도록 했다(시행령 제30조 3항).

“사업장별 어떤 에너지를 쓰고 얼마나 소비했는지를 파악하면 제품 원가가 추정된다. 우리 기업이 얼마를 들여 어떤 공정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지 고스란히 공포하는 꼴이 된다. 공정별 상세자료는 생산성과 직결되는 기업비밀이다. 정보유출 시 징벌 규정도 없다. 유럽연합(EU)에서도 사업장 단위 총배출량에 대해서만 보고하고 하부 공정별 상세내역은 보고하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 업계에서는 평소 기준치보다 이산화탄소량을 적게 배출하기만 하면 그만큼을 배출권으로 인정해주는 원단위 방식 대신 감축량을 할당받고 이를 기준으로 배출권을 거래하는 총량제한 방식으로 제한한 점,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때 사업장마다 기기를 달아 계측하는 측정 방식을 택한 점 등은 오히려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반발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85%가 에너지 연소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가이드라인에도 배출량 실측보다는 연료소비량을 통한 계산이 더 정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배출량 실측은 문제가 있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동안 스스로 노력해온 기업에 대한 배려 부족과, 목표 초과달성에 대한 인센티브 없이 페널티만 규정한 것도 서운하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국내외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없음에도 자발적협약(VA)과 청정개발체제(CDM) 사업 참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시행해왔다고 주장한다.

“3일 만에 의견 수렴 도대체 말이 됩니까?”

녹색법 시행령안과 산업계에서 두 차례 마련해 제출한 건의문.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온 업체들의 노력도 인정해줘야 한다. 자발적으로 감축해온 업체는 상대적으로 감축 여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앞장서 노력한 기업에겐 큰 부담이다.”

실제 ‘온실가스배출 감축사업’에 참여한 기업은 1998년 15개 업체에서 2008년 1355개로 늘었으며, 그동안 총 489만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어쨌든 시행령 의결로 이제 기업들은 정해진 룰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완전 시행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배출허용량 할당방법과 관리방법, 거래소 설치 등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녹색법 제46조 4항)고 규정하고 있는 데다 “목표 설정 및 관리에 관한 기준도 정해야”(시행령안 제26조 2항)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도 강력한 법 시행으로 기업의 신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세계적인 이산화탄소 감축 압력을 미리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지녔음이 엿보인다. 다만 시행령 입안 과정에서 보인 모습을 놓고 얘기하자면, 녹색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주간동아 2010.04.20 732호 (p28~30)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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