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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왕상한의 ‘왕성한 책읽기’

돈과 개발의 추악한 뒷모습

‘고래의 눈’

돈과 개발의 추악한 뒷모습

돈과 개발의 추악한 뒷모습

게리 D. 슈미트 지음/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344쪽/ 1만1000원



새해가 밝았다. 100년 만의 폭설이라고 했나. 1월4일 시무식이 있던 날 내려 아직도 수북하게 쌓인 눈을 보고 있자니 동심이 그립다. ‘고래의 눈’(원제 : Lizzie Bright and the Buckminster Boy)은 표지가 어딘지 모르게 동화책 느낌이 난다. ‘큰 바위 얼굴’ ‘수요일의 전쟁’ 작가 게리 D. 슈미트의 장편소설. 미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상 ‘뉴베리 상’과 청소년문학상인 ‘마이클 L. 프린츠 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1912년, 열세 살 소년 터너 벅민스터는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보스턴에서 메인 주의 핍스버그라는 마을로 이사를 온다. 이사 온 첫날부터 보스턴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좋아하는 야구조차 규칙이 달라 마을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게다가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소한 잘못에도 간섭과 지적을 받고,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터너는 답답한 마음에 길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지다가 혼자 사는 콥 할머니네 울타리를 맞히고, 결국 여름 내내 콥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벌을 받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드 집사 아들인 윌리스와 싸우면서 셔츠에 묻은 피를 닦아내려다 다시 콥 할머니에게 걸려 오르간으로 찬송가를 연주하라는 벌까지 받는다.

한편 허드 집사와 엘웰 보안관, 스톤크롭 씨 등을 주축으로 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주 수입원인 선박 사업이 몰락해가자, 새로운 사업의 일환으로 호텔을 건설해 관광업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마을 앞 바다 건너에는 말라가라는 섬이 있고, 섬에는 마을 사람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흑인들과 부랑자들이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 사업에 방해가 된다며 이들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그들은 벅민스터 목사를 앞세워 섬으로 찾아가 섬의 지도자 격인 리지의 할아버지에게 가을까지 섬에서 떠나달라고 요구한다.



터너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은 마음에 바닷가로 갔다가 우연히 말라가 섬에 사는 흑인 소녀 리지 브라이트를 만난다. 둘은 자연스레 친구가 되고, 당당하고 쾌활하며 따뜻한 성품의 리지를 통해 터너는 따돌림과 외로움에서 오는 상처를 치유한다. 리지를 따라 말라가 섬에 간 터너는 섬 주민들이 소문과 달리 부랑자나 도둑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평범한 이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터너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들키고 아버지에게서 말라가 섬에 더 이상 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터너는 섬에 가지 않는 대신 바닷가에서 계속 리지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리지가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자, 터너는 리지를 배에 태워 말라가 섬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이전까지 한 번도 노를 저어본 적이 없던 터너는 바다를 표류하다 거대한 고래와 마주치게 된다. 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새하얗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셔츠를 입어야 했던 터너,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를 갈망했던 터너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리지를 만났기에. 그리고 고래의 눈을 들여다보았기에.

‘고래의 눈’은 미국 메인 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계기가 된 작품이다. 1912년 조선업이 몰락하기 시작하자, 핍스버그 사람들은 관광업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런데 마을 앞 바다 건너에는 말라가라는 섬이 있고, 섬에는 마을 사람들이 몹시 싫어하는 흑인들과 부랑자들이 살고 있었다. 핍스버그 사람들은 강제로 섬 주민들을 정신병원으로 이주시키고 집을 불태워, 평화롭게 살아가던 말라가 공동체를 파괴했다.

이 비극적이고 부끄러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 게리 D. 슈미트는 이 사건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말하고 싶었고, 단지 보존하거나 드러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말라가 섬 사건은 100여 년 전의 다른 나라 일이지만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곳곳에서 개발이냐, 공존이냐를 두고 충돌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또 하느님의 뜻을 빙자, 약자를 짓밟고 자신들의 욕심 챙기기에 급급한 핍스버그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상은 인간의 생명보다 돈과 물질을 숭상하고, 나 혼자 승리하고 성장하며 앞서가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또 쓰러지고 아픈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행복을 느낄 여유도 갖지 못하고 있다. 책 속 허드 집사의 말처럼 화형으로 생을 마감하는 성인이 될 각오가 없으면 지킬 수 없는 세상 앞에서 터너가 눈물을 흘렸듯,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와 감동을 남길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과 유머, 감동이 적절히 녹아 있다. 그러면서도 살이 에이도록 가슴 아픈 아픔이 있다.



주간동아 2010.01.26 721호 (p82~83)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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